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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aka Aug 29. 2024

나의 직장人生 (2)

- 열정 유형과 성장기 -

# 직장을 떠나지 않은 이유

직장이 나와 맞지 않는다고 하면 이직하면 될 일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 있다. 물론 퇴사를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니다. 하지만 내가 맡고 있는 프로젝트는 내게 너무 가치 있는 일이었다. 조직의 무능함도 견딜 수 있을 만큼 내 일을 사랑했다. 의미 없고 가치 없는 일이라고 여겼다면 뒤도 안 돌아보고 직장을 나갔을 거다. 인지 심리학자 김경일 교수의 말을 빌리자면 나는 맞는 일을 찾아야만 열정이 발생하는 ‘Fit theorist’ 타입이다.


열정 유형

[Fit theorist 적합 이론가형]
자신에게 적합한 일을 만나야만 열정이 발생

[Develop theorist 개발 이론가형]
어떤 일이든 열정과 의미가 점차 증가


단순히 내 커리어에 도움이 되는 프로젝트가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의식을 깨우고 이로움을 줄 수 있는 프로젝트의 가치가 내겐 너무 소중했다. 이것이 내 열정의 원천이 되어 아무리 체력이 부치고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일을 멈추지 않을 수 있었다. 이런 인고의 세월이 있었기에 아무 것도 몰라 시키는 것만 했던 새내기가 이제는 기획을 하고 나만의 색깔을 가진 인력으로 자라게 되었다. 이젠 나름의 노하우를 후배들에게 전수해줄 수도 있게 됐으니, 직장이란 게 내 성장의 토대가 되어준 것만은 분명하다. 일에 대한 애착으로 15년 세월을 버틸 수 있었다.



# 한계 지점을 극복 지점으로

내 일을 사랑하지 않았다면 직장을 떠나야 될 이유는 많았다. 어렸을 때부터 글쓰기에 소질 있다는 말을 들었지만 글쓰기가 전공은 아니었다. 집안 사정 때문에 가방끈도 짧았다. 학벌이 중요한 대한민국 사회에서 이는 아킬레스건일 수밖에 없다. 국어국문학과나 문예창작과, 방송작가를 전공한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초라했다. 이런 내게 상급자들도 무슨 일을 줘야 될지 모르니, 이것저것 종류 없이 일을 맡겼다. 간단한 녹취나 글 정리 등 메인 작가가 진행 중인 일을 뒤치다꺼리하는 걸로 일을 시작했다.


글의 장르도 만화 시나리오나 동화, 카피 등 출판 글부터 뉴스나 다큐 등 영상 글까지 대중없었다. 장르가 확확 바뀔 때마다 정신이 없었다. 글은 장르마다 특성이 있어 내용을 풀어 가는 방식에 저마다 차이가 있다. 예컨대 출판 글의 문법을 가감 없이 영상에 적용하면 글 따로 영상 따로가 될 수 있다. 영상 글은 화면이 지나가면 끝이기 때문에 문장 호흡이 길어선 안 된다. 그리고 시각적으로 많은 걸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출판 글처럼 지나치게 세부적인 묘사를 할 필요도 없다. 


그때 입사 시절, 글의 장르적 특성을 알리 없는 내가 얼마나 헤매었겠는가. 순수한 아이 감성으로 동화를 쓰고 있는데, 갑자기 세월호 관련 다큐를 쓰라는 식이었다. 동화 작업을 위해 말랑말랑하게 만들어 놓은 젤리 감성을 싹 다 지우고, 다큐를 위한 다른 감성의 옷으로 얼른 갈아 입어야 했다.


문제는 아직 빠른 전환 태세를 갖추지 못한 나에게 있었다. 일이 정신없이 돌아가는 곳이니 사수에게 따로 교육을 받기도 어려운 상황. 일을 해 나가는 속에서 스스로 배워야 했다.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모사와 모방이었다. 갑자기 영상 글로 노선 변경을 해야 될 경우, 비슷한 주제의 다큐나 콘텐츠를 골라 처음부터 끝까지 내용을 타이핑했다. 초 단위로 내레이션이 언제 나오고, 내레이션에 따라 어떤 그림이 나오는지 영상의 모든 걸 기록했다. 그리고 영상마다 내레이션 어투가 다른데, 내가 작업하려는 영상에 맞는 내레이션 어투를 찾아서 문장을 분석하고, 그 문장 구조와 어투를 빌려 글 작업을 했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공식을 따른 거다.



# 득과 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뭘 모르니 무작정 덤벼들었다. 그 일이 얼마나 어려운 줄 모르고 덥석 받아 시작했다가, 하면서 어려운 일이란 걸 알았다. 다시 물릴 수도 없고 진퇴양난에 빠져 울면서 작업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나도 이해 못하고 있는 걸 이해시키는 작업을 하자니 여간 폭폭한 게 아니었다. 


그래도 그걸 꾸역꾸역 해냈다. 여러 장르를 오가는 작업이 너무 힘들었지만 장르 간의 경계를 넘나드는 크로스오버적인 작업이 재미도 있어 버틸 수 있었다. 어려운 프로젝트였지만 일을 진행하는 속에서 세상을 보는 시야가 넓어지고 고비를 헤쳐 나가는 지혜도 얻게 됐다. 그렇게 한고비 한고비 넘기며 성장해갔다. 점차 색깔 있는 작업자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커리어가 쌓여갈수록 내 영혼은 병들어 가고 있었다. 병들고 있다는 것조차 인지 못하고 있었다. 지나고 보니 전조 증상들이 있었다. 점점 짜증과 화가 많아지고 쉬고 있으면 불안했다. 명절에도 본가에 가지 않고 집에서 일을 했다. 대체 뭐가 그리 불안해서 사람으로서 해야 할 도리도 저버리면서까지 일만 했을까. 인정 욕구였을까? 학벌 콤플렉스였을까? 무엇이 삶의 기준이 되고 있었던 걸까? 


그저 바쁘게 일하고 성과를 얻는 게, 잘 살고 있는 증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2018년에 번아웃이 오고 나서야 많은 것들이 분명히 보였다. 내가 무엇을 얻었고, 무엇을 잃게 되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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