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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aka Aug 30. 2024

나의 직장人生 (3)

- 개인의 성장과 조직의 한계 -


# 곪았던 게 터지다

2018년. 주요 프로젝트 2개를 동시에 진행하고 있었다. 어느 날 맨 위 상급자인 Y가 불러 프로젝트 하나를 내밀었다. 황당했다. 이미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은데, 일을 또 얹어 준 거다. 게다가 당시엔 보조로 같이 일할 서브 작가도 없었다. 어이없었지만 웃으며 말했다. “지금 A와 B 프로젝트를 진행 중입니다. 이것까지 동시 작업은 어렵습니다. C까지 제가 맡아야 된다면 일의 순서를 정해 주십시오.”


Y는 C를 먼저 하라고 말했다. 한창 A와 B 프로젝트에 열을 올리고 있었는데, 잠시 접어야 했다. 나중에 다시 A와 B를 이어가려면 리셋이다. C에 집중하는 동안 A와 B에 쏟았던 에너지는 휘발되기 때문이다. A와 B를 다시 시작할 때는 일의 끓는점을 끌어올리기까지 또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 에너지 낭비인 셈이다. 화가 났지만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라서 마음을 다잡고 C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났을까. Y가 내 자리로 오더니 A 프로젝트 어떻게 되고 있냐고 물어보는 거다. 마음이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다. 그때 돌기 직전이어서 뭐라고 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C 먼저 하는 동안 A는 뒤로 미뤄 주신다고 하시지 않았느냐고 말했던 것 같다. 이에 Y가 뭐라고 답했는지는도 기억나지 않는다. Y가 돌아가고 나서 마음이 펄쩍펄쩍 뛰었다. 소리를 꽥 지르며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이를 눈치챈 선배 작가가 다가와 나를 끌고 회의실로 들어갔다. 회의실에 들어가자마자 눈물을 터트렸다. 감정이 너무 격해져서 뭐라고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선배가 내 상황을 Y에게 보고했고 Y를 마주하게 된 나는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글 써 보셔서 아시잖아요. 글 작업이 인형 눈깔 달기 같은 단순 작업이 아니잖아요. 이게 단순 노동이면 A도 하고 B도 하고 C도 하죠. 글쓰기란 게, A 할 때는 오롯이 A만 집중해서 해야 되는 거잖아요.”


그때 그 순간, 지난 일이 떠올랐다. 탕비실에 컵을 씻으러 갔다가 탕비실 한 켠에 마련된 회의실에서 내 이름이 흘러나왔다. Y와 내 직속 과장이 나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조용히 귀를 대보았다. 과장은 대체 Y가 나에게 일을 왜 많이 주냐는 식으로 물었다. Y가 나에게 따로 주문하는 일 때문에 과에서 해야 될 일이 잘 진행되고 있지 않다는 거였다. Y는 내가 일을 빨리 잘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Y는 그런 사람이었다는 게 새삼 다시 확인되면서 내 앞에 있는 Y에게 단호히 말했다.


저 지금 일 못하겠습니다! 
지금 이 상태론 도저히 일이 안돼요.


일이주를 쉬면서 불안했다. Y에게 처음 내지른 반항이 어떤 결과로 초래될지, 앞으로 나는 어떻게 직장 생활을 해야 될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심 기대도 했다. Y의 태도가 바뀌어서 작업자의 고충을 더 이해하고 효율적인 조직 개편을 단행하길 바랐다. 하지만 허황된 꿈이었다. 


나는 과를 옮겼지만, 내가 맡은 과 업무 외에도 Y는 따로 내게 일을 주문했다. 그 프로젝트에 내가 제일 최적화되어 있어 과장도 하라 마라 터치할 순 없었다. 하지만 나의 태도가 바뀌었다. 거부권 행사를 하기 시작한 거다. Y는 처음엔 똥 씹은 표정을 하더니, 이후로 내게 일을 의뢰할 때면 현재 하고 있는 일의 진행 상황을 먼저 물었고, 일이 가능한지도 물어보기 시작했다.



# 성장을 방해하는 엉성한 조직력

나는 비합리적인 일에는 ‘아니오’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Y가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키는 일만 하는 게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프로젝트를 기획해서 진행하는 주도적 실무자가 되었다. 회사에서도 내가 낸 기획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도록 독려했다. 기획 소재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도 참신했고, 내용 구성도 탄탄했다. 하지만 직원의 성장을 제대로 써먹을 줄 모르는 조직력이 문제였다. 이는 리더의 무능에서 비롯됐다는 걸 Y 자신만 모르고 있다. 대표적인 사건을 거론할 필요도 없다. 거의 모든 프로젝트 운영이 이 때문에 원활하지 않으니까.


가령 어느 과에서 파트별 실무자들이 모여 회의를 거듭하고 한창 열을 올리고 있다. 그런데 중간에 Y가 더 급한 프로젝트를 물고 들어온다. 그럼 그 프로젝트는 올 스탑이 되고 뒤로 미뤄진다. 연초에 과별로 일 년치 프로젝트는 대체 왜 계획하는 건가? 전체 계획 중 3분의 1도 완수한 적 없는 허수아비 계획들이다. Y가 상부에 연간 계획을 발표할 때 과시하기 위한 플랜에 불과하다. 하긴 상부에서도 결과에 대해 냉정한 피드백이 없으니, Y는 결과에 책임을 안 져도 되는 플랜들을 마구잡이로 제시할 수 있는 거다.


Y의 문제 행동은 이뿐만이 아니다. 자신의 필요에 따라 직위 체계를 무시하고 일을 지시한다. 가령 과장을 건너 뛰고 팀원에게 일을 직접 지시하는 바람에 팀원이 난처해진다. 이에 대해 몇몇 과장들이 문제 제기를 하자 이후론 과장을 통해서 특정 팀원에게 특정 일을 맡긴다. 하지만 이것도 웃긴 일이지 않는가. Y가 차라리 과장을 하면 되지 않는가. 실상 Y는 두서없이 조직에 개입하며 과장도 했다가 팀장도 했다가 조직 체계 질서를 흔들고 있다.


열 명 남짓으로 시작했던 회사가 지금은 직원 백 명이라는 큰 규모로 성장했는데도, 구멍가게 운영하듯 대형 마트를 운영하고 있다. 회사 덩치가 커져서 그에 맞는 관리 직위를 세웠지만, 어떻게 운용할지 모르는 Y의 리더십 부재를 어찌하면 좋겠는가. 그 자신은 모든 포지션을 다 소화하며 열심히 회사를 위해 뛰고 있다고 생각할 텐데, 실상은 각 관리자가 자기 직무에 대한 역할과 책임을 다하지 못하게 막고 있는 꼴이다.



# 밀실 행정으로 권위가 실추된 조직 사회

최근 도마 위에 오른 대한축구협회의 졸속 행정과 대한배드민턴협회의 낡은 관행과 불합리한 시스템을 보니 자연스레 나의 직장이 떠올랐다. 선수들과 국민들의 날선 비판에도 협회 지도자들은 자기 반성과 책임 지는 행동이 아니라 변명과 합리화로 대응했다. 그런데 그들 입장에선 합리화가 아닌 정당한 이유였다. 그들의 입장을 표명하는 태도나 그 내용을 보면, 정말 옳다고 여기는 것을 나름의 논리로 이행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쉽게 고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구나



직장에서 느낀 문제점은 나만의 생각이 아니었다. 문제 인식을 가진 이들이 저마다 자기 상황과 위치에서 문제 제기를 했지만 별반 개선된 것은 없다. 얼마 동안은 시정하는 듯 보이나 원래대로 돌아가기 일쑤다. 해왔던 습관대로 일하는 리더는 지금의 관행에 최적화되어 버렸다. 축구협회나 배드민턴협회, 유도협회의 경우 주위에서 수년간 문제 제기를 해왔지만, 심지어 언론에서 그걸 꼬집어도 좀처럼 동요되지 않는다. 


어떠한 사고방식과 가치 체계가 신념이 되면 진실 공방을 통한 정의 구현은 의미가 없다. 이미 그렇게 믿어버리게 된 관료나 조직을 돌이키기란 사이비 종교에 빠진 가족을 돌이키려는 거나 마찬가지다. 결국 그 피해와 손실은 그 자신에게 돌아갈 것이 자명하다.


무능한 체육계 조직에서 재능 있는 선수들을 놓쳐버린 사례가 얼마나 많은가. 그 밖의 조직 사회에서 놓친 유능한 인재들은 또 얼마나 많겠는가. 이는 나 역시 현장에서 느낀 조직의 한계다. 나는 여기서 더 성장하고 앞으로 나아가고 싶지만, 비합리적이고 비효율적인 조직 관행이 그 앞을 가로막고 있다. 내가 얼마나 답답했으면 Y의 입장과 처지를 분석하기 시작했을까. 내 상식에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으니 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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