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깃꼬깃 접혀진 비상금으로 사주신 군것질감
햇살이 씨줄날줄 엮여 고르게 쏟아지는 화창한 날이었다. 경주시 전통명주전시관에 다녀왔다. 우리 일행은 명주 제조 과정을 직접 보기 위해 일부러 일정을 맞췄다. 시연은 매주 화, 목, 토, 일요일 오전 10시에 한다.
솥에 고치를 넣고 삶아 실을 빼내었다. 누에가 성충이 되려면 고치를 뚫고 나와야 하는데, 우화시킨 뒤에 남은 고치로 실을 얻으면 중간에 계속 끊어진다고 했다. 그래서 우수한 품질의 견직물을 얻기 위해 번데기째 삶는단다.
점심때가 되어 식당에 갔다. 일행 중 한 분이 학창 시절 추억담을 풀어놓으셨다. 산에 가서 뽕잎을 따다가 누에를 기르는 것은 본인의 몫이었고, 명주실을 뽑아 베틀에서 베를 짜 옷을 만드는 것은 어머님의 몫이었다며 눈시울을 붉히셨다.
모두가 경험담에 몰입해 있던 순간, 밑반찬으로 번데기가 나왔다. 스스럼없이 먹는 내 모습을 보고, 번데기를 먹을 줄 아느냐며 몇몇 일행이 깜짝 놀라셨다. 평소 나의 식성을 아는 분들이라 의외였던 것이다. 번데기를 입에 넣으니 입 안 가득 짭짤한 맛이 나며 고소한 냄새가 퍼졌다.
그 냄새는 오랫동안 마음속에 저장되어 있던 낯익은 것이었다. 그리움이었다. 나에게 있어 추억이 그리움이 되려면 내면의 심상이 따뜻해야 한다. 번데기를 보는 순간, 내 그리움의 심연 깊이 드리워져 있던 아버지에 대한 따뜻한 기억이 윤슬처럼 반짝였다.
나는 대여섯 살 무렵부터 아버지의 손을 잡고 시내 영화관에 다녔다. 영화 광고 전단지가 덕지덕지 붙은 길모퉁이를 돌아서면 영화관이 우뚝 서 있었다. 주위 건물에 비해 컸으므로 그것이 영화관이라는 것은 멀리서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시각이 아닌 후각으로 먼저 느꼈다. 골목길에 흠씬 배어 풍겨오는 번데기 삶는 냄새 때문에 영화관에 도착했다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내가 어렸을 적에는 영화관 앞 노점상에서 번데기를 팔았다. 찌그러진 양푼에 수북이 담긴 번데기는 모락모락 김을 내며 간식거리를 찾는 이들의 군침을 돌게 했다. 번데기는 그 어떤 그릇에 담아 먹는 것보다 돌돌 말린 소라 모양의 신문지에 먹는 맛이 최고였다. 종이 속 가득 담겨 있던 번데기는 신문지 냄새와 섞여 내 코를 자극했던 것 같다. 아니, 모처럼 함께 한 아버지와의 나들이 길에 꼬깃꼬깃 접혀진 비상금으로 사주신 군것질감이라 더 감칠맛 났던 것이리라.
요즘 영화관에서 팝콘을 먹듯 그 시절에는 번데기를 먹었다. 불 꺼진 영화관에 앉아 모두가 화면을 응시할 때, 조심스럽게 번데기를 먹었던 그 맛을 아직도 나는 잊을 수 없다. 꿀꺽 소리가 옆 사람에게 들릴까 봐 눈치를 보며 천천히 삼켰던 일은 나에게 영화의 긴장감 못지않았다. 성룡의 ‘취권’과 숀 코넬리, 로저 무어의 ‘007 시리즈’를 보면서도 번데기를 먹었고, 시한부 인생을 그린 ‘스잔나’를 보면서 울고 웃는 가운데에서도 내 손은 번데기를 집어 입 안에 넣고 있었다. 그것이 나에게 영화를 더 재미나게 볼 수 있는 조미료가 되어 주었던 것 같다.
프루스트 효과라는 말이 있다. 프랑스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유래한 명칭이다. 특정한 냄새, 소리, 이미지 또는 다른 감각적 자극을 통해 과거의 기억과 감정이 생생하게 떠오르는 현상을 뜻한다. 번데기를 보고 어린 시절에 갔던 영화관과 돌아가신 아버지와의 추억이 떠올랐으니, 나에게도 프루스트 효과가 적용된 셈이다.
지금, 누에의 한살이를 생각해 본다. 누에는 자기의 모든 것을 내주는 존재다. 고치 속에서 날고 싶다는 꿈을 꾸었을 텐데도 사람들에게 실을 주고 식용이 된다. 나는 왠지 누에가 아낌없이 나눠 준다는 점에서 부성애가 강한 내 주변의 아버지들과 닮은 것 같다. 자식을 위해 헌신하는 아버지들. 내 아버지도, 아버지의 꿈이 있었을 텐데 나를 위해 매순간 가슴으로 삭혔을 것이다.
아버지가 무던히도 그리운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