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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미영 Sep 16. 2024

블랙홀 생존기

사랑이라는 감정 덕분

  20년 동안 수필을 쓰고 있는 중이다. 글쓰기를 좋아하면서도 그동안, 블로그나 SNS에서 활동할 여력이 없었다. 지인들은 내가 인스타를 하면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왜 시작을 하지 않느냐고 아쉬워했다. 

  그럴 때마다 변명을 늘어놓기 일쑤였다. 프리랜서인 나에게 강의가 주어지면 감사히 받아들여 맡은 일에 충실해야 한다는 둥, 연년생 아들에 이어 10년 터울의 늦둥이 딸이 태어난 덕분에 육아기간이 길었다는 둥….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드디어 나에게도 때가 왔나? 올해 아르코 문학창작기금에 선정된 덕분에, 아르코 산하 문장웹진에는 내 글이 자동으로 올라간다. 그런데 브런치스토리에 글을 쓸 기회가 주어지기는 하지만, 나의 선택에 달렸다는 메일을 아르코 담당자에게 받았다. 여러 날에 걸쳐 고민을 하다가 결정을 내렸다. 자꾸 미루기만 하고 새로운 영역에 도전할 기회를 놓친다면, 다시는 ‘플랫폼’에 정착하지 못할 것만 같았다.

  브런치라는 세상은 어떤 곳인가? 처음에는 글을 올리는 방식이나 적절한 사진을 찾지 못해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그래서 나는 며칠간 브런치라는 숲속을 부지런히 돌아다녔다. 다른 작가들은 어떤 글씨체로 꾸몄는지, 어떻게 사진을 활용했는지, 들여다보았다. 마치 이곳은 한 마리 새가 둥지를 틀듯 작가들이 각자 개성 넘치는 이야기를 펼치는 공간이었다. 


  아르코에서 지정해준 브런치북 만드는 기한이 있었다.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아르코 선정 작품을 포함한 글 10편을 묶어 브런치북을 발간했다. 그러나 내 글을 읽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문장웹진에 올려 졌던 글은 그런 대로 많은 작가들이 읽어주었는데, 브런치에서는 구독률이 현저히 저조했다. 

  나는 이미 수필과 다른 글쓰기 방식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수필에서는 내 경험을 삶의 보편성으로 바꾸는 문장이 필요하다. 그런 문장을 독자가 읽고 한참을 생각하며 내 글을 음미할 여유가 있었다. 하지만 대체로 모바일을 이용해 글을 읽는 브런치에서는 독자와의 공감을 빠르게 이끌어 낼 필요가 있었다. 제목이나 내용에 있어 현재의 트렌드나 사회적 이슈를 다루는 것도 관심을 끌 수 있는 방법이었다. 머리로는 알고 있었으나, 나의 몸에 밴 습관이 금방 고쳐지지 않았다. 

  도대체 이게 맞는 걸까? 끝없이 펼쳐진 우주 공간을 떠다니는 기분이었다. 사방이 고요와 어둠으로 둘러싸인 곳에서 나는 나만의 길을 찾아야만 했다. 오랜 기간 수필가로서 걸어왔던 익숙한 길이 아니라, 새로운 길을 찾으려니, 막막했다. 문득,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인터스텔라(Interstellar, 2014)’가 떠올랐다. 

출처:네이버 영화


  주인공 쿠퍼가 웜홀을 넘어 미지의 세계로 뛰어들었던 것처럼, 나도 브런치라는 낯선 세계로 발을 내디뎠다. 쿠퍼가 시간이라는 개념 속에서 자신이 얼마나 미미한 존재인지를 깨닫는 순간이 있었다. 하지만 그 미미함 속에 가장 중요한 무언가가 숨겨져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나도 어렴풋이 깨달았다. 글쓰기 여정 속에서 내 존재는 아주 작지만, 나만의 이야기를 꾸준히 써나간다면 고유한 영역을 확보해 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쿠퍼가 블랙홀에서 탈출할 수 있었던 것은 과학적 지식 때문만이 아니었다. 사랑이라는 감정 덕분이었다. 딸 머피에게 돌아가겠다고 약속했던 것을 지키겠다는 강렬함이 그를 이끌었다. 브런치스토리에 글을 쓴 지 정확히 4주가 되었다. 나도 글쓰기를 사랑한다. 오랫동안 글을 쓰겠다는 나와의 약속이 굳건히 지켜질 수 있도록 ‘브런치’라는 블랙홀에서 살아남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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