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라는 감정 덕분
20년 동안 수필을 쓰고 있는 중이다. 글쓰기를 좋아하면서도 그동안, 블로그나 SNS에서 활동할 여력이 없었다. 지인들은 내가 글 쓰는 법 등을 인스타에 올리면 좋을 텐데, 그러면 글을 쓰고 싶지만 어떻게 시작해야 될지 모르겠다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왜 시작을 하지 않느냐고 아쉬워했다. 그럴 때마다 강의를 하기 위해 자료를 준비해야 하고, 몇 개의 독서회를 진행하기 위해 책을 읽고 발췌를 해야 하며, 수필을 써서 발표를 해야 하는 곳이 있어, 여유가 없다고 변명을 늘어놓기 일쑤였다.
드디어 나에게도 때가 왔나? 올해 아르코 문학창작기금에 선정되었다. 그 덕분에 아르코 산하 문장웹진에는 내 글이 자동으로 올라간다. 그런데 브런치스토리에 글을 쓸 기회가 주어지기는 하지만, 나의 선택에 달렸다는 메일을 아르코 담당자에게 받았다. 브런치에 글을 쓰려면 작가 승인이 필요한데, 선정 작가는 별다른 절차가 필요 없단다. 여러 날에 걸쳐 고민을 하다가 결정을 내렸다. 자꾸 미루기만 하고 새로운 영역에 도전할 기회를 놓친다면, 다시는 ‘플랫폼’에 정착하지 못할 것만 같았다.
브런치라는 세상은 어떤 곳인가? 나는 처음에 글 내용에 맞는 사진을 찾아 첨부하는 법을 알지 못해 많은 시간을 헤맸다. 그래서 브런치라는 숲속을 부지런히 돌아다녔다. 브런치는 마치 한 마리 새가 둥지를 틀듯 작가들이 각자 개성 넘치는 이야기를 펼치는 공간이었다. 다른 작가들은 사진을 어느 곳에 배치해 이미지화를 극대화시켰는지,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그렇게 여러 날을 고군분투한 끝에 아르코에서 지정해준 기한과 기준에 맞춰 브런치북을 발간했다. 그러나 내 글을 읽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도대체 이게 맞는 걸까? 브런치에서의 글쓰기는 수필과 다른 방식이 존재했다. 나는 수필로 등단했을 때 스스로에게 약속한 것이 있었다. 내 글에 아름다운 우리말을 넣어 나름대로 우리말이 사라지지 않게 노력하기, 시적인 문장을 쓰고, 소설의 구성을 차용해 서사적인 글을 써 보려고 했다. 간혹, 북 콘서트에서 독자들과 질의응답을 할 때면, 내가 애 쓰는 부분으로 인해 글이 술술 읽혀지지 않고 멈춰서 사전을 찾는 경우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어휘를 알게 되는 기쁨이었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힘이 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럴 때 내 의도를 말씀드리면 대부분 고개를 끄덕여 주시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모바일을 이용해 글을 읽는 브런치에서는 독자와의 공감을 빠르게 이끌어 낼 필요가 있었다. 제목이나 내용에 있어 현재의 트렌드나 사회적 이슈를 다루는 것도 관심을 끌 수 있는 방법이었다. 머리로는 알고 있었으나, 나의 몸에 밴 습관이 금방 고쳐지지 않았다.
끝없이 펼쳐진 우주 공간을 떠다니는 기분이었다. 사방이 고요로 둘러싸인 곳에서 나는 나만의 길을 찾아야만 했다. 오랜 기간 수필가로서 걸어왔던 익숙한 길이 아니라, 새로운 길을 찾으려니, 막막했다. 문득,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인터스텔라(Interstellar, 2014)’가 떠올랐다.
주인공 쿠퍼가 웜홀을 넘어 미지의 세계로 뛰어들었던 것처럼, 나도 브런치라는 낯선 세계로 발을 내디뎠다. 쿠퍼가 시간이라는 개념 속에서 자신이 얼마나 미미한 존재인지를 깨닫는 순간이 있었다. 하지만 그 미미함 속에 가장 중요한 무언가가 숨겨져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나도 어렴풋이 깨달았다. 글쓰기 여정 속에서 내 존재는 아주 작지만, 나만의 이야기를 꾸준히 써나간다면 고유한 영역을 확보해 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쿠퍼가 블랙홀에서 탈출할 수 있었던 것은 과학적 지식 때문만이 아니었다. ‘사랑’이라는 감정 덕분이었다. 딸 머피에게 돌아가겠다고 약속했던 것을 지키겠다는 강렬함이 그를 이끌었다. 브런치스토리에 글을 쓴 지 정확히 4주가 되었다. 나도 글쓰기를 사랑한다. 오랫동안 글을 쓰겠다는 나와의 약속이 굳건히 지켜질 수 있도록 ‘브런치’라는 블랙홀에서 살아남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