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강. 글의 구성
수필은 다음과 같은 순서대로 글을 쓰면 좋습니다.
첫째, 글감 정하기 : 자신의 삶과 경험 중 다른 사람과 공유하고 싶은 의미 있는 경험을 선정합니다.
둘째, 내용 마련하기 : 선정한 경험과 관련된 구체적인 내용을 떠올려 보며 글로 쓸 내용 마련합니다.
셋째, 개요 작성하기 : 마련한 내용 중 글에 담기에 적절한 내용을 골라 개요 작성합니다.
넷째, 초고쓰기 : 삶과 경험이 생생하고 진솔하게 드러나도록 표현합니다.
다섯째, 퇴고하기 : 작가가 전달하려는 내용과 의도를 고려하여 고쳐 씁니다.
이 중에서 개요를 작성을 하는 것이 곧 글 구성하기입니다.
건물을 짓기 전에 필수적으로 설계도를 그리지요. 설계도를 통해 집의 구조와 공간 배치, 크기 등을 구체적으로 계획할 수 있습니다. 각 방이나 창문 위치 등을 미리 결정하여 실용성과 편리성을 높일 수 있어요.
글을 쓰기 전에 개요를 짜면 주제와 내용이 체계적으로 흐르도록 도와줍니다. 이를 통해 글을 쓸 때 통일성을 유지할 수 있고 논리적인 흐름을 유지할 수 있겠지요.
또한, 개요를 먼저 작성하면 글 쓰기 과정에서 생각이 산만해지거나 불필요한 부분에 시간을 소비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어 효율적으로 글을 완성할 수 있어요.
개요 단계에서 추가할 부분과 삭제할 부분을 미리 재배치할 수 있어, 초고 단계에서 큰 수정 없이 글을 완성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 개요를 작성할 때 고려 할 점
-제목: 경험과 깨달음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제목, 독자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제목으로 정합니다.
-배치, 선정: 앞서 떠올린 내용 중 주제를 전달하기에 알맞은 내용 선정, 배치
-추가, 삭제: 주제와 글의 흐름을 고려해서 내용을 추가하거나 삭제합니다.
<개요짜기 예>
제목 : 투덜이 여학생이 긍정적인 소녀로 바뀐 것은
처음 : 수목원에 간 경험
- 나무들과의 만남
- 어렸을 때 묘목을 심었던 기억을 떠올림
중간 : 내가 나무를 심게 된 이유
1. 담임 선생님의 권유
- 우리 반만의 추억 만들기
- 각자 꽃씨나 묘목을 들고 옴
2. 선생님의 가르침
- 돌을 줍는 이유
- 나무 이름표
3. 나무와의 추억
끝 : 나의 깨달음
- 투덜이 여학생이 긍정적인 소녀로 바뀐 것은 내나무 덕분이었다.
<실전 글쓰기> 정미영 산문집 『사계』 70쪽
투덜이 여학생이 긍정적인 소녀로 바뀐 것은
초여름 기운이 완연한 내연산 수목원을 걷는다. 싱그러운 나뭇가지들이 연초록 바람을 일으키며 눈인사를 건넨다. 나뭇잎 속에 담겨 있는 바람의 지문을 열심히 정독하는데, 묘목을 심느라 애썼던 어릴 적 추억이 찰랑거리는 바람결에 실려 온다.
초등학교 오 학년 때였다. 집 가까이에 새로 학교가 지어져서 나는 친구들과 그곳으로 등교했다. 전에 다녔던 학교까지는 걸어서 꼬박 한 시간이 걸렸다. 나는 늘 뭉쳐 있던 다리를 만지며, 앞으로 다리 고생은 줄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다리 대신 손 고생이 시작되었다. 새로 지은 학교라 운동장에 돌이 많았다. 매주 월요일 조회 때나 체육 시간은 물론, 틈만 나면 돌을 주워 화단 한쪽에 돌무더기를 쌓았다.
그 해 어느 날, 담임 선생님은 우리 반만의 추억 만들기를 하자고 하셨다. 집에서 꽃씨나 묘목을 가지고 오라고 당부하셨다. 친구들 대부분은 구하기 쉬운 꽃씨를 가지고 왔다. 우리 집에는 마침 아버지가 마당에 심으려고 했던 동백나무 묘목이 있었다. 나는 뿌리를 신문지에 둘둘 말고는 비닐봉지에 넣고 조심스레 학교에 들고 갔다. 묘목을 들고 온 아이는 나밖에 없었다.
반 친구들은 나무에 관심을 보였다. 우리들은 나무 심을 장소를 물색하고 학교 창고에서 삽이며 호미를 들고 와서 구덩이를 팠다. 선생님의 지시대로 알맞게 땅을 팠는지 삼십 센티미터 자를 가지고 재어 보는 친구도 있었다. 뿌리가 상하지 않게 흙을 덮고 손으로 발로 다지며 잘 자라기를 빌었다.
추억 만들기는 선생님의 나직한 가르침이었다. 선생님은 평소에 우리가 주워 나른 돌멩이를 가지고 오셨다. 나무와 일정한 간격을 두고 빙 둘러싸면서, 이제 묘목은 작달비에도 끄떡없을 거라고 말씀하셨다. 그동안 쓸모없다고 생각했던 돌들이 고마웠다. 짜증스럽던 돌 줍기가 보람으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돌을 줍는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혹시나 학생들이 운동장에서 놀다가 넘어졌을 때 돌이 있으면 위험하므로 안전을 위한 선생님들의 조치였다. 학교 측은 돌과 시멘트를 섞어 낮은 울타리를 만들기도 했다. 울타리를 둘로 나누어 닭과 토끼를 풀어놓고 키웠다.
선생님은 나에게 이름표를 만들라고 하셨다. 나는 나무 이름과 소망하는 것을 빼곡히 적었다. 내가 만든 이름표를 보고 선생님은 빙그레 웃으셨다. 동백나무가 ‘내나무’라고 말씀하시며, 내나무에 얽힌 이야기를 해주셨다.
우리 조상들은 예부터 아이가 태어나면 나무를 심는 풍속이 있었다. 아이를 족보에 올리면서 집 주위나 논두렁에 몇 그루의 나무를 심었다. 딸 앞으로는 오동나무를 심고, 아들을 위해서는 소나무와 잣나무를 심었다. 딸이 커서 시집갈 날을 받으면 그 나무로 장롱을 만들어 주었다. 아들의 경우는 관을 짜는 데 사용되었다.
‘내나무, 내나무’ 입안에서 굴려보았다. 부를 때마다 동백나무는 소중한 의미로 마음에 담겼다. 날마다 키 재기를 했다. 자주 들여다보며 물을 주고 말을 걸었다. 걱정이 있거나 비밀이 있을 때 친구들 몰래 찾아가 내 속마음을 내비치기도 했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답답했던 머릿속이 홀가분해졌다.
나만의 작은 나무가 있어 생활이 즐거웠다. 학교는 점점 신나는 곳이 되었다. 나는 누구보다 일찍 학교에 갔다. 무릎을 굽히고 내 키를 낮춰 악수하듯 이슬 맺힌 동백나무를 살며시 잡으며 속삭였다. 꽃망울을 맺어주어 고맙다고.
시간이 흘러 꽃송이가 붉게 터졌다. 꽃봉오리에 코를 박고 향기를 맡으면 가슴이 찌르르 떨렸다. 지금 생각해도 그때의 감동이 전해지는 것만 같아 기분이 벅차다. 투덜이 여학생이 긍정적인 소녀로 바뀐 것은 모두 내나무 덕분이었다.
나무 계단을 올라 수목원 전망대에 오른다. 드넓게 펼쳐진 숲이 바다가 되어 일렁인다. 초록 물결이 출렁대자 어릴 적 교정에 심었던 내나무가 떠밀려와 품에 안긴다. 동백나무와의 추억이 여물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