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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지 Aug 21. 2024

발코니를 사수하라!

비둘기가 우리 생활에 천덕꾸러기가 되어버렸어요.

이른 아침 창문 너머 푸드덕 거리는 소리에 눈이 번쩍 귀가 솔깃해진다. 잠시 방심했다가는 나의 영역을 침범하고 민폐를 끼치는 저들이 나는 싫다.

어쩔 수 없이 미워할 수밖에 없는 쟁탈전이 벌어진다.

     

어느 해 늦가을 그들은 에어컨 실외기 근처에 둥지를 틀었다. 하필이면 점점 추워지고 있는 이때 전선으로 만든 허접한 곳에 하얀 알 2개를 덩그러니 낳았다. 다른 애들은 따뜻한 봄날부터 부지런히 나뭇가지도 물어다가 둥지도 만들고 했는데 이번 녀석들은 게으른 건지 욕심을 부려서 인지 아주 부실하기 짝이 없다. 

     

과연 부화가 될까 신기해하면서 동정을 살피고 있는데 드디어 부화를 했다. 새끼는 추워서 벌벌 떨고 있었고 눈 발 날리던 날, 어미들은 늦은 밤 에도 둥지에 나타나지 않았다. 추우니까 먹이도 잡기 힘든 거 같다. 걱정스러움에 곡식을 몇 알 던져 주기도 했다. 

    

“추운데 집안으로 데리고 오면 어떨까?” 

그런데 그건 자연의 순리를 벗어나는 거라며 가족들은 절대 반대했다.  

   

그리고 천적 황조롱이의 습격을 받아 찢긴 새끼의 잔해를 보게 되었다.

추워서 떨던 새끼들의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진작에 안으로 들여놓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미안함으로 그 후 그들이 둥지를 트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아파트 6층에 남향인 우리 집이 있다. 앞 상가는 5층, 가까운 거리는 비행을 하기에  좋다.  상가 옥상은  놀이터, 사방이 트였고 명당 중에 베스트였다. 그들에겐 우리 집이 펜트하우스.  


봄이면 새집 둥지에 알을 낳고 새끼들 자라는 모습을 보면서 행복했던 적이 있었다. 

문제는 배설물이 쌓여가면서 해충과 악취로 창문을 열지 못하고  10여 년을 양보하며 살아온 것이다.

      

'이제 우리도 창문 열고 살아봤으면 해’  

   

그때부터 이들이 둥지를 틀기 전에 완전봉쇄 해야 하는 임무를 같고 매일 아침 일찍 보초를 섰다.  

짝짓기 전에 유튜브의 도움을 받아 황조롱이 소리를 몇 시간씩 틀기도 했다.

 ‘여기 사람 있어요’를 보여주기 위해 자주 창문으로 머리를 쑥 내밀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태풍이 온다는 뉴스가 한 참 일 때 바람 불고 비 내리던 밤.     

남편은 몇 년 동안 쌓이고 마르고 찌들었던 배설물들을 한꺼번에 치워버리기로 작정했던 거 같다. 태풍 바람과 잠시 폭우가 솟아지던 날밤.      

‘아빠가 창문에 물 뿌리고 난리 났어요’하는 아이들의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때 드라마 속 남자 배우에 빠져있었다. 


그때 말리지 못한 후회는 다음날 터지고 말았다.     

우리 집 아래층으로 5.. 4.. 3.. 2.. 1층 창문마다 비둘기 배설물로 초토화된 상황. 관리실 직원들은 원인 제공자를 색출하기 위해 각 세대에 전화를 걸었고 아니라고 오리발 내밀기에는 우리 집 발코니는 너무 깨끗했다.  

        

웬만하면 내가 청소를 해주겠다고 했지만, 창틀과 방충망 사이사이 꼼꼼히도 퇴적물이 쌓인 대형사고였다.

울고 싶은 심정으로 바닥까지 코가 닿을 만큼 고개를 숙였다. 결국 청소용역에 의뢰를 했고 30만 원의 비용을 내고 사다리차까지 불렀다. 

이후 버릇처럼 발코니를 사수하기 위해 수시로 창문을 열고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다.  

         

올해 봄에도 수없이 많은 새로운 그들이 보금차리를 차지하려고 날아왔다. 잠깐의 방심으로 한쌍이 어느새 

주인행세를 했다. 쫓아도 안되니 극단의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사고 친 남편대신 그들에게 대걸레의 장대 맛을  따끔하게 보여주었다.

     

상가 앞으로 도망치듯 날아가는 그들 뒤로 하얀 솜털이 흩날린다. 이후로  다시 오지 않았다. 

그들은 그 후 바로 윗집 7층에 둥지를 틀었다. 가끔 보라는 듯 우리 집 창문에 굵은 똥줄기로 직격탄을 날리는 거 빼곤 평화롭다.  

   

아침마다 매일 내다보지 않아도 이젠 오지 않는다. 매일 창문을 열어 놓아도 안심이 된다. 

그런데 오늘은 왠지 허전한 마음이 드는 건 왜일까?  

   

그들의 세계에서 나는 블랙리스트에 올라가 있을 것 같다. 놀부처럼... 

그들이 모여있는 길거리를 지나갈 때면 '저 인간은 아주 못된 인간이야. 비상 비상 모두 조심해~'하고 

지들끼리 얘기하고 있는 것만 같다.    

그렇게 냉정하게 밖에 할 수 없는 나의 마음을 그들은 알까? 

    

따끔한 맛의 유효기간은  언제까지일까?

     

그들과 일 년 동안 불편해지는 것과 그들에게 못된 짓하고 마음 편해지는 것 중 후자가 나는 더 힘들었던 것 같다. 안 좋은 일 생겨도 그것 때문인 것 같고 벌 받는 것 같고 박 씨 물고 온 제비가 있으면 원수 갚은 비둘기도 있을지 모른다. 

    

내년 봄엔 기쁜 마음으로 환영해 봐야겠다.

‘그럼 우리 집에도 좋은 일 생길까’ 기대해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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