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녀 쪽진 머리와 고무치마

이순연의 Identity

by 칠오이

모두 우리 할머니를 보면 하나같이 말했다.

' 천생여자시네.'

꽤 많이 큰 키와 체격이라, 키다리 할매라는 별명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할머니가 천생 여자 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건,

90 평생 하셨던, 비녀 쪽진 머리와 고무치마 때문이었다.

대부분의 K할머니들은 뽀글뽀글 파마 커트 머리지만

우리 할머니의 시그니처는 5:5 가르마를 곱게 타서

참빗으로 빗고 빗고 또 빗어 망안에 가발뭉치를 넣고 U자 핀으로 빠짐없이 꼽아 넣는

비녀 쪽진 머리였다.


늘 까만 머리를 유지하기 위해 꾸준한 염색은 필수였고,

' 뽕시리하게 보이야 참하다. ' 하시며 머리숱이 많아 보이고 싶으셔서 망안에 가발도 꼭 채워넣으셨다.

음식쓰레기 하나를 버리러 나가시더라도,

꼭 단정히 머리를 다시 빗으셨다. 촘촘한 빗모양이 머리카락 사이사이를 가르기를 몇 차례..

빗고 또 빗어 한 오라기의 삐짐도 허락하지 않았다.

또 하나는 평생 입으신 치마였다.


여름이면 바스락 거리는 지지미 천을 좋아하셨고,

겨울이면 벨벳 융단같이 도톰한 천이었다.

검은색 미싱이 있었을 때는 종종 만들어 입기도 하셨다.

그 안에는 항아리 바지처럼 펑퍼짐한 ' 고쟁이 '를 꼭 입으셨다.

큰 이모가 몇 번이나 바지를 입어 보라고 해도 고집을 꺽지 못했다.

상의는 옥색, 푸른빛을 좋아하셨는데, 패턴이 화려하고, 약간 반짝이가 섞여있으면 참하다. 하셨다.

' 에리 ' 카라가 예쁜 옷을 좋아하셨고, 카라가 없는 티는 입지 않으셨다.

나름 멋쟁이였던 할머니는 옷 잘 입는 우리 엄마를 흐뭇하게 바라보고 엄마가 예쁘게 입은 날은

무척이나 좋아하셨다.


코로나시절 요양병원에 들어가신 할머니가..

고인이 되신 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이 나에게 끝까지 낯설게 느껴진 것은

아마 이 두 가지가 없어서였겠지..

댕강댕강 아무렇게나 잘린 머리, 새하얗게 변한 머리카락,

그리고 환자복 바지까지..

90 평생 할머니가 지켜온 아이덴티티 (identity)가 사라진 것 같아 슬펐고

그 모습은 마지막까지 나에게 낯설었다.

하지만 내 기억속에 할머니의 모습은 마지막에 본 모습이 아니라,

늘 쪽지고 있던 머리와 고무치마,

주름진 얼굴이렸다.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영원히 마음속에 기억속에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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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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