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박또박 신혼여행기 2부.
드디어 고대하던 신혼여행 당일! 다사다난했지만 이른 새벽 짐을 챙겨 집을 나선 우리 부부. 인천공항에서 설레는 면세점 쇼핑까지 마친 우리는 비행기에 오르게 되었다. 생각보다 맛 좋은 기내식에 감탄하고 게임도 즐기는 사이 어느새 발리 응우라라이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하지만 설레는 마음과는 달리 난관에 봉착하게 된다. 생각보다 너무 많은 사람들과 착오였던 환전 계획! 뼈아픈 실패를 맛 본 후 이번 발리 여행을 인도해줄 가이드를 만나게 되는데...
현지 가이드가 오른손을 내밀며 인사를 건넸다. 정말 어안이 벙벙했다. 외국인이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모습을 실제로 처음 봐서 그런 것 같다. '헬로~'라고 말했던 나의 말이 쏙 들어가는 것 같았다. 현지인 가이드의 이름은 아스타완. 한국 이름은 남길이라고 했다. 배우 김남길을 닮아서라고 하는데 묘하게 닮아서 부정하기 어려웠다. 그렇게 우리는 남길과 반가운 첫만남을 가졌다.
남길에게 먼저 실패로 그쳤던 달러 환전에 대해 물었는데, 남길은 발리에서 달러를 뽑는 것은 어려우며 달러를 쓰는 일도 별로 없을 것이라고 했다. 처음 생각과는 달랐지만 발리에서 달러가 없어도 된다는 이야기는 오히려 좋은 이야기였다. 간단하게 자국 화폐인 루피아만 있으면 되니까 말이다. 본래 달러는 팁을 주는 용도로 뽑으려고 했던 것이기 때문에 달러가 없어도 크게 문제될 것은 없었다. 팁도 루피아로 주면 그만아닌가. 그렇게 우리는 남길과 반갑게 인사를 하고 이번 여행을 함께 할 차량과 운전 기사인 페릭와 만나게 되었다.
페릭은 2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청년이었는데 매우 훤칠하고 용모가 수려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또 놀란 점은 우리가 차에 타고 내릴 때마다 페릭과 남길은 차에서 내려서 문을 열어주고 닫아주는 것이었다. 이러한 대접은 뭔가 받을 때마다 뭔가 황송하고 감사한 마음이 들어서 차에 타고 내릴 때마다 '감사합니다.' 했다.
차에 타서 발리의 밤거리를 보는데 처음에는 뭔가 무섭다는 생각이 컸다. 밤의 발리는 불빛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주변이 어떤지 인식할 수 없었다. 첫 느낌은 아버지 어머니의 고향인 전북 부안의 용출리의 밤처럼 깜깜하다는 것이었다. 해외에 처음 나와서 심리적으로 상당히 위축된 상태였던 데다가 공항에서 그런 혼란을 겪은 직후라 신혼여행의 설레고 즐거운 마음과는 조금 거리가 생겼다. 밤거리는 어둡고 조명은 많지 않고, 차와 오토바이는 또 얼마나 많은지 당황스러웠다. 발리에서 운전을 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차선이라는 개념 없이 달리는 느낌?
한동안 밖을 걱정되는 마음으로 바라보다가 문득 저녁을 아직 먹지 못했다는 것이 생각났다. 또 일정표에 도착한 날 식사 일정이 없었던 것이 생각났다. 순간 너무 계획 없이 무작정 온 것이 아닌가 조금 후회가 되던 중에 남길이 입을 열었다.
"지금 저녁 식사하러 식당에 갈 거예요."
알고 보니 여행사에서 가이드와 함께 일정을 하는 중에는 모든 식사가 포함된 것이었다. 패키지 여행이 이래서 야무지구나 싶은 순간이었다. 차로 한 10여분을 달리자 식당에 도착했다. 야외에 테이블이 놓인 한적한 식당이었다. 식당에 앉자 그제서야 조금은 긴장이 풀리게 되었다. 당시 신기했던 건 발리에 높은 건물이 한 채도 없었다는 것이었는데, 야외 테이블에 앉아 높은 건물 하나 없이 트인 밤하늘이 생경하게 느껴졌다. '아 여기가 발리구나!'라는 느낌은 아니었고 한적한 시골에 온 듯한 느낌이었다. 또 시원한 바람이 건물을 넘어 계속해서 불어오는 것이 기분이 좋았다.
수영장을 끼고 있는 식당이었다. 메인메뉴는 사실 인상적이지 않아서 자세히는 기억나지 않지만(아마 나시고랭이었던 듯) 반찬마냥 나온 시금치 무침은 정말 맛이 좋았다. 그리고 빙땅을 한 잔 마셨는데 고소한 맛이 언제 마셔도 야무졌다. 사실 이때까지도 식사비는 우리가 내야하는 것인 줄 알았다. 그래서 식사를 마친 후 계산을 하려 나서 지갑을 꺼냈는데...
"어라?"
"왜 그래?"
"없어."
"뭐가?"
"신용카드..."
없다. 신용카드가 없다. 지갑에 없다면 가방에 있나? 주머니? 그럴리가 없는데. 나는 다급히 지난 나의 행적을 되짚어보았다. 생각보다 금방 신용카드의 행방을 떠올릴 수 있었다. 가장 당황스러웠던 현장이었던 공항, 환전을 위해 고군분투하던 ATM... 나의 작고 소중한 신용카드가 ATM에 꽂힌 채 주인을 애타게 기다릴 것이 떠올랐다. 신용카드를 분실했다는 것을 너무 늦게 떠올랐다는 것 자체도 당혹스러웠지만 평소 물건을 잃어버리는 일이 잘 없는 내가 해외에 도착하자마자 정말 까맣게 잊고 신용카드를 잃어버렸다는 것이 적잖이 충격적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크게 자책이 되거나 큰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유비무환이라는 말이 있다. 나에게는 세컨드 카드인 엘지 비자 카드가 있었던 것이다. 애용하던 국민카드를 잃어버린 것은 슬픈 일이긴 하지만 안량을 잃었다면 문추를 선봉으로 세우면 될 일이었다.
여행의 첫걸음부터 다소 삐걱거림이 있었지만 어쨌든 우리는 발리에 무사히 왔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그렇게 우린 첫번째 숙소인 삼빠띠 빌라스에 도착했다. 삼빠디 빌라는 이번 우리가 갈 숙소 중에는 가장 저렴한 곳이었다. 우리는 총 세 곳의 숙소를 잡았다. 첫번째로 삼빠띠 빌라스, 둘째로 물리아 빌라스, 셋째로 주마나 발리였다. 첫번째 숙소는 여행사의 야외 관광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시내에 위치하며 가격이 저렴한 가성비가 좋은 숙소를 고른 것이다.
그동안 신혼여행에서 가장 기대해 온 것은 모두 숙소였다. 항상 시간이 있을 때마다 숙소 사진을 찾아보고 설렜는데 첫 번째 숙소인 삼빠띠에 오니 신기한 느낌이었다.
삼빠띠에 도착하자 남길은 호텔 직원과 대화를 하며 체크인에 필요한 정보를 안내해주고 다음날 일정에 대해 안내해주었다. 그렇게 우리는 발리에서의 첫날을 보낼 숙소로 들어오게 되었다. 내심 검색할 때 보았던 수영장이 가운데 있는 객실로 배정 받길 원했지만 세상일이 어디 바라는 대로만 되는 법이 있던가. 아쉬움은 뒤로 하고 긴장을 풀게 되었다.
그런데 밝을 때의 발리를 아직 보지 못해 모든 것이 미지로 느껴졌다. 어디선가 처음 들어보는 동물의 소리가 나고, 특이한 모양으로 날아다니는 새가 틈틈히 보여 박쥐가 아닌가 하는 무서움이 들었다. 숙소 밖은 너무 어둡고 조명이 없어 산책 삼아라도 나가는 것이 두려웠다. 발리에서의 첫날밤은 그런 두려움이 많은 밤이었다. 기대하고 상상해오기만 했던 설레는 여행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밝은 아침을 빨리 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잠을 청했다.
발리 여행 2일차. 다음날 5시 반 경 잠에서 깼는데, 발리는 남반구기 때문에 시기상 겨울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한국이었다면 해가 뜨기 시작했을텐데 아직 깜깜한 새벽인 점이 생소하게 느껴졌다. 빨리 밝은 발리를 보고 싶었기 때문에 조급하게 아침을 기다렸다. 그렇게 서서히 햇빛이 비치기 시작했다.
그렇게 고대하던 발리의 아침은 기대 이상이었다. 푸른 하늘, 가벼운 구름과 시원한 바람이 있었다. 가장 기분 좋았던 것은 개인풀 위에 흔들 침대가 떠있는 구조였는데 흔들 침대에 베개를 가져다 놓고 누워서 보는 하늘은 정말 아름다웠다. 발리의 하늘은 정말정말 파란 색이었다. 선명하고 밝은 빛이 온 하늘에 퍼져 있었는데, 큰 구름이 지나가는 일도 잘 없었다. 힌두교의 태양신 수리야가 자신의 영역임을 위시하기 위해 온 하늘을 비워두고 여유롭게 유영하는 공간이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천상의 유아독존인 밝은 안광이 점차 크게 떠지자 지상에 있는 모든 것들이 그 빛에 조응하여 생경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넓은 파초잎들은 조명판과 같이 푸른 생기를 더해갔고, 어제까진 무섭게 느껴지던 새소리들은 마치 빛의 축제의 흥취에 음률을 더하는 듯했다. 불과 몇시간 전까지 발리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고 있던 내 마음도 강렬한 태양빛에 맑게 정화되었다. 나는 단숨에 알 수 있었다. 이곳의 아침을, 이곳의 모든 것을 사랑하게 되리라는 것을.
삼빠띠 수영장의 물은 다소 차가웠다. 이곳이 비싼 곳이 아니라서 온수 풀이 아닌건가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발리에 있는 모든 풀빌라는 온수풀이 아니었다. 하긴 현실적으로 그 많은 객실의 풀을 모두 관리할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자 납득이 되었다. 그렇게 수영도 즐기고 침대에서 햇빛을 맞는 사이 조식이 왔다. 조식은 바로 플로팅 조식이었다. 식사를 물에 띄워놓고 먹는 것이 특이하고 감성은 있었으나 보기 좋은 것일뿐 역시 편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충분히 사진을 남긴 뒤 물에 띄워놓은 음식들을 다시 건져 올려 식사를 시작했다. 큰 기대는 안 했으나 아침식사는 생각보다 훌륭했다. 특히 에그 베네딕트가 야무졌다.
발리에서 아침을 맞이하고서야 나는 온전히 여행을 왔다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발리의 아침은 너무나 산뜻해서 얼른 밝은 모습의 바깥을 보고 느껴보고 싶었다. 앞으로의 일정이 매우 기대되는 아침이었다.
"와!!! 이건 너무 높잖아!!!"
"으그그그극! 꽉 잡아 누나!!"
"음... 끙... 좋당..."
"처음이라 긴장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