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박또박 신혼여행기 4부.
발리에서의 첫 일정은 해양스포츠팩 체험하기! 바나나보트, 땅콩보트, 스킨 스쿠버와 제트스키까지 야무지게 물위를 가르며 시원하게 즐긴 우리 부부. 두근대는 마음으로 처음 받아보는 마사지 샵에서 프로의 손길에 감동까지 받아버린다. 흥성흥성한 스미냑의 번화가에서 흥겨운 분위기의 나이트 투어까지 마치고서야 삼빠띠로 돌아오고, 마트에서 사온 컵 미고렝과 빙땅 캔맥주로 하루를 돌아본다. 어느덧 저물어버린 삼빠띠에서의 마지막 하루. 하지만 아쉬움보다 더 큰 것은 기대감이었다. 새롭게 떠오르는 태양이 머무르는 동안 우리는 또 무엇을 보고 경험하게 될까?
다시 발리의 아침이 찾아왔다. 언제 봐도 아름다운 발리의 아침이었다. 밝은 태양이 하늘 위로 솟아오르면 드넓은 창공은 기다렸다는 듯 파란색으로 빛난다. 그 아래 하늘빛을 잔뜩 머금은 이 곳에서 나는 아내와 함께 잠에서 깼다.
수영장 위에 떠있는 흔들침대에 올라가서 수건으로 햇빛을 가리고 누워있으면 소리가 고운 새들의 지저귐과 가벼운 바람이 파초를 흔드는 소리에 자연히 흐뭇해진다. 파초를 흔들던 바람은 나에게도 내려앉아 머물다가 어린아이들같이 떠들썩하게 뛰어간다. 슬쩍 보이는 파란 하늘을 마치 이불인 것처럼 덮은 나는 오늘 하루를 이대로 보내도 좋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오늘은 바쁜 날이었다. 오늘은 들러야 할 곳이 많았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오전에는 절경을 자랑하는 울루와뚜 사원에 가야했고, 그 이후에는 서퍼들의 성지인 꾸따 해변 근처의 싱글핀 비치 클럽도 가야했다. 또한 마사지를 받고 짐바란 씨푸드에서 저녁을 먹은 후 그토록 고대하던 물리아 빌라스로 가는 것이 우리의 일정이었다.
바쁘게 움직이기 위해선 역시 아침을 잘 먹어야하는 법. 삼빠띠에서 제공하는 아침을 먹으며 시원하게 뚫려있는 식당에서 아침의 경치를 만끽했다. 어딜 봐도 푸른 잎이 반겨주는 곳이어서 그런지 항상 기분이 좋은 곳이다.
그리고 우리 여행 중에 테마곡이 생겼다. 폴블랑코의 'summer'였다. 우연찮게 유투브를 통해서 듣게 되었는데 트로피컬한 사운드가 발리와 아주 잘 어울려서 남은 일정 내내 듣게 되었다. 그러고나니 한국으로 돌아온 후 이 노래를 들으면 발리의 시원한 바람과 푸른 파초잎, 넓은 하늘이 눈앞에 있는 것 같이 아주 자세하게 기억나게 되었다. 사람의 인지 과정을 컴퓨터의 정보처리 과정에 빗대어 설명하는 정보처리이론에 따르면 어떤 경험을 복합적인 감각으로 기억하고 있으면 인지구조 내에서 심상화가 잘 이루어져 장기기억으로 저장되기가 좋다. 여행 중에 테마곡을 정해서 반복적으로 듣는 것은 그 여행의 추억을 상세히 기억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므로 추천한다.
각설, 우리는 바쁘게 울루와뚜 사원으로 이동했다. 거리가 좀 있는 관계로 우리는 남길과 많은 대화를 할 수 있었다. 남길은 대화를 하면 할수록 참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회사에 다니면서 가이드가 되기 위해 퇴근 후에 따로 한국어를 배워가며 수년간 공부했다고 한다. 남길을 보면 열심히 사는 좋은 사람들이 축복받는 세상이기를 바라게 된다. 아내는 궁금한게 많았는지 여러가지를 물어보았는데 친절하고 자세히 발리에 대해 알려주었다.
어쩌다가 꿈 이야기가 나왔는데 남길은 한국에 와서 일하는게 꿈이라고 했다. 아쉽게도 한국에 와본 적은 없다고 한다. 언젠가 경력을 이어가다가 제주도의 호텔에서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 말 속에는 한 사람의 강한 의지와 영혼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누군가를 이렇게 진심으로 응원하게 되는 것이 자주 있는 일은 아니다. 진심으로 그가 그의 가족들과 한국에 와서 바라는 삶을 누릴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남길과 여러 대화를 하는 동안 울루와뚜 사원에 도착했다. 사실 울루와뚜 사원에 오기까지는 다소 우여곡절이 있었다. 이곳의 절경을 일찍부터 연모하고 있었는데, 이곳은 무려 원숭이 서식지이며 발리에서는 원숭이를 신성한 존재로 여겨서 함부로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원숭이의 포악함은 익히 지인들이 얘기해주고 있었다. 특히 애용하는 바(BAR)인 '혼미'의 사장님 부부가 발리의 원숭이에게 호되게 당한 일을 얘기해주신 뒤로 원숭이는 되도록 마주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울루와뚜 사원에 대한 마음을 접어야하나 라고 생각하던 중 남길이 원숭이는 본인 선에서 정리해주겠다고 하자 나는 다시 욕심이 생겨났다. 그래서 아내를 열심히 설득하고서 이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 사원은 성지라서 맨다리가 보이면 안된다고 한다. 그래서 남자도 저렇게 보라색 치마를 입어야 하고 허리에 띠를 둘러야 한다.
실제로 원숭이가 정말 많았다. 정말 재밌는 점은 조그만 아기원숭이들은 아주 활력이 넘치는지 여기저기 뛰어다니고 난리를 치는데 커다란 어른 원숭이들은 한 자리에 콕 박혀서 만사 귀찮다는 듯 움직이지도 않았다. 특히 길 한가운데 저렇게 박혀있으면 알아서 피해가라는 마인드인 데다가 눈을 3초 이상 마주치면 뜨거운 사나이맹키로 싸우자고 덤빈다고 한다. 정말 놀라운 싹바가지가 아닐 수 없다. 또 원숭이가 물을 마시는 모습을 보았는데 수돗가에서 수도꼭지를 돌려서 물을 마신 다음엔 수도꼭지를 잠그는 모습이 너무나 신기했다. 원숭이들이 반짝이는 물건들을 좋아해서 휙 낚아채버린다고 하니 조심해야했다. 나와 아내는 원숭이가 무서워 다가가지 못했고 가까이서 찍은 사진은 모두 남길이 찍어준 것이다.
남길은 우리의 커플 사진 찍어주기에 우리보다도 더 진심이었다. 실제로 사진을 정말 잘 찍었고 연출도 매우 훌륭했다. 구도도 잘 잡았으며 포토 스팟도 매우 많이 알고 있어서 좋은 사진을 많이 남겨주었다. 우리 부부는 발리에서 스냅을 찍어볼까 고민을 했었는데 남길 덕분에 스냅이 필요없어졌다.
그리고 이곳의 바다는 정말 절경이었다. 귀부로 깎아지른듯한 절벽에 드넓은 바다의 외침이 계속해서 부딪쳐왔다. 저 넓은 바다는 시선이 닿는 마지막의 장소에서 하늘과 합쳐졌고 수평선은 하늘과 바다의 경계를 모르게 만드는 듯했다. 바다는 사실 저 멀리서 하늘이 흘러내려 온 것이 아닐까 싶을 만큼 하늘과 같은 푸른색이었다. 마치 하늘 한방울같은 아내가 원래 있어야 했던 곳이려나 하는 동양 판타지의 적강 모티프를 생각하게 된다.
야무지게 울루와뚜 사원 탐방을 마친 우리는 서퍼들의 성지인 싱글핀 비치 클럽으로 이동했다. 발리의 파도는 정말이지 멀리서 부서지는 것이 참 신기했는데 덕분에 해안가에서는 바다가 잠잠하지만 조금 멀리 나가면 서핑하기에 너무나도 좋은 파도가 계속해서 왔다. 서핑을 좋아하는 나도 가서 서핑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차올랐지만 아내와 함께하는 여행인 만큼 개인적인 욕심은 접어두는 것이 좋겠다.
정말 규모가 큰 곳이었다.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곳이어서 자리가 없을 지경이었다. 야외 수영장도 가지고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서핑을 하는 사람들을 지켜볼 수 있었다.
남길의 안내에 따라 카페의 2층 건물로 올라가서 서퍼들의 모습을 보았다. 정말 먼곳에서 최대한 줌을 당겨 찍은 것이다. 실력이 좋은 서퍼들이 화려한 몸짓으로 파도를 타며 즐기는 모습을 보니 나도 함께 도전해보고 싶었다. 다음엔 꼭 아내와 함께 서핑을 하러 가야겠다. 싱글핀 비치 클럽에서 한적하게 휴식을 취하다가 우리는 곧 마사지를 받으러 이동했다.
오늘도 역시 어둡고 차분한 분위기의 마사지 룸이 기다리고 있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핫스톤 마사지라는 점이었는데 직접 받아보기 전까지는 그 실체에 대해서 정확히 알기 어려웠다. 나는 침상에 누워 눈을 감고 마사지 프로의 손을 차분히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나의 여린 피부에 느껴진 것은 아주 뜨겁고 단단한 감촉이었다. 그리고 곧 딱딱한 무언가가 부딪히는 소리. 정말 뜨겁게 달군 돌을 이용한 마사지를 하는 것이었다.
뜨거운 것에 취약한 나는 갑자기 한우마냥 품질 인증 마크를 몸에 새기는 듯한 고통을 느꼈지만 여기서 앗 뜨거따시! 해버리면 창피할 테니 끙... 하면서 참을 수밖에 없었다. 마사지 자체는 매우 시원했으나 유난히 뜨겁게 달궈진 돌이 왼쪽 팔꿈치 아래로 들어왔는데 화상을 입으면 어쩌나 걱정할 정도였다. 다행히 붉은 자국은 수 분 후 없어졌으므로 나의 엄살로 판명났다.
마사지까지 마친 우리는 이제 저녁을 먹으러 짐바란 씨푸드로 이동했다. 정말 넓은 해안가에 야외 해물 구이집이 아주 빼곡히 늘어서있는 곳이었다. 정말 테마파크가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로 사람이 많았는데 이곳의 노을을 보며 식사를 하는 것이 그만큼 로맨틱한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짐바란 씨푸드에서 저녁을 먹을 때는 무엇보다도 시간이 중요했다. 석양이 지기 시작할 때부터 식사를 해야 멋진 경치를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사진을 찍어주는 데에 누구보다 진심인 남길이 정말 사진을 예쁘게 많이 찍어주었다. 그러다가 문득 남길은 이곳에서 사진을 찍어보았을까 궁금했다. 이를 물어보자 남길은 자신의 핸드폰으로는 사진이 어둡게만 나와서 찍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너무나 의외였다. 누구보다 여기에 많이 왔을텐데 이 아름다운 곳을 배경으로 사진을 남겨보지 못했다니. 나와 아내는 남길에게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했고 석양을 배경으로 남길의 사진을 예쁘게 찍어주었다. 사진을 보내주자 남길은 정말 환하게 웃었고 곧 그의 카톡 프로필 사진이 바뀌었다. 정말 마음이 좋은 순간이었다.
노을이 진다. 그리고 그림처럼 아내가 서있다. 아내는 먼 하늘을 닮았다. 하늘 한 방울이 똑 떨어져 나에게 스며드는 것인가. 붉은 태양이 점차 바다에 잠기어 가는 풍경을 아내와 나란히 앉아 바라본다. 우리는 이제 부부가 되었음이 더욱 실감이 나는 순간이다. 이렇게 늘 붙어있고 한 순간도 서로에게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한 몸인 것처럼 자연스럽고 편했다. 나는 왠지 부부가 무엇인지 알 것만 같았다. 부부는 항상 함께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러니까 나와 아내는 이제 부부인 것이다. 태양이 바다에 잠기어 가더라도 먼 수평선에서는 항상 태양과 하늘이 함께하는 것처럼 나와 아내 역시 어디에 있어도 이제 우리는 함께인 부부다. 그리고 서로가 서로를 통해 온전해지는 우리의 관계가 이 세상에서 흔적으로만 남을 때까지 충만하기를 바랐다. 그렇게 짐바란의 노을은 점차 반원을 그리며 잠겼다.
"이 망고스틴이 그렇게 맛있단 말이야?"
"여기는 정말... 정말 다른 세상이네..."
"어느 수영장을 먼저 가봐야 하는거야 대체!!!"
"이대로 하늘만 바라보고 있어도 행복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