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지하철 인질목록 3장: 하차
#사마천파X형제캐피탈
조사실에서 류기태의 사연이 마구잡이로 쏟아지고 있을 무렵, 문도현 경사는 사무실로 향한다.
“어! 도현이!”
기다리고 있던 고종한 경위가 불쑥 말을 건다.
“이제 왔네? 나는 아침부터 이렇게 개고생하고 있는데?”
문도현 경사가 딱딱하게 굳어있는 어깨를 두드린다.
“나도 정신없었잖아. 이해 좀 해주라. 응급실까지 다녀오려니까 죽겠다.”
“이 사람들이야?”
문도현 경사는 고종한 경위가 데려온 두 남자를 본다.
“응, 근데 도통 말을 안 해. 누가 대가리인지.”
고종한 경위는 이제 질렸다는 듯 고개를 내젓는다.
“일단 유치장에 넣어놓고 이따가 조사해보자고.”
“저, 형사님! 밥은 안 먹습니까? 세상에 점심을 거르는 공무원이 어디 있어요! 제가 공무원들이랑 이것저것 많이 해봐서 잘 알아요!”
도상길 사장이 본인 경험을 들먹이며 당당히 식사를 요구한다.
“기왕 이렇게 된 거 못 먹고 지나간 점심은 잊어버리고, 이따 저녁 더 맛있게 먹으면 되겠네.”
문도현 경사가 시끄럽다는 얼굴로 말한다.
“저녁은 꼭 줄게. 그러니까 입 다물고 있자? 자, 들어가.”
점심과 저녁 사이엔 하등의 상관관계가 없다는 사실을 도상길 사장은 학창시절부터 알고 있었지만, 저녁식사는 틀림없이 제공해줄 거라는 경찰의 다정한 말에 그는 조용히 입을 다물고 어기적어기적 유치장으로 들어간다.
반면, 그 옆에 나란히 서있던 조광필 사장은 친구인 듯 친구 같지 않은 직장동료를 따라 별 말없이 유치장에 들어선다.
“오, 형님!” 가장 먼저 문지성이 반긴다.
“오오, 형님!” 다음은 한재천이다.
“…….” 아직은 유치장이 적응되지 않은 정성도는 말이 없다.
“형!” 마지막으로 진짜 가족을 상봉한 도상준 전무가 친형을 얼싸안는다.
“오, 뭐야? 다들 여기 있었어?” 큰형님 조광필의 표정이 금세 밝아진다. “마침 찾고 있었는데! 진작 연락하지 그랬어, 그럼 나도 바로 여기로 왔지!”
“호오, 이렇게 다들 모인 김에 이따가 회식하면 되겠네. 회식비는 경찰에서 지원해줄 거야. 방금 내가 약속도 받았어.” 도상길 사장이 동료들의 사기를 끌어올린다.
“오오오! 회식!”
문지성이 즐겁다는 듯 박수를 치기 시작한다.
그렇게 [사마천X형제캐피탈] 모든 임직원은 하나가 된다.
비교적 단순한 사고체계를 가진 사람들을 미소 짓게 하는데 그리 많은 것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친구와 가족이면 충분하다.
거기에 약간의 음식만 있다면 더 바랄게 없다.
최병기 순경이 진술조사를 이어간다.
최병기: 그동안 하신 말씀을 정리하자면……, 모든 승객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신 거네요?
류기태: 정확해! 경찰이라고 해도 믿겠어!
최병기: ……제가 경찰인 건 알고 계신 거죠?
류기태: 지금 상황에서 그게 중요한가? 뭐 아무튼, 아까 열차에서 나 한 명 없었다고 생각해봐. 큰일이야 그거.
최병기: 이를테면 어떤 큰일이 났을까요?
류기태: 11명에서 10명이 되는 거니까, 축구팀 하나 못 만들 거 아니야!
최병기: 오호, 정말 그렇겠네요. 그건 정말 큰일이죠.
류기태: 그렇게 어찌어찌 내가 도움을 좀 줬지. 앞으로도 줄 예정이고.
최병기: 예컨대 앞으로 어떤 도움을 주실 예정이신가요?
류기태: 내가 그 선하나 학생한테 생활비를 지원해주기로 했어. 아무 걱정 말고 공부만 열심히 하라는 의미로다가.
최병기: 이야……, 진짜 대단하세요. 그리고 부럽네요. 저도 생활비 지원 좀 받아봤으면 좋겠어요. 경찰 월급 엄청 짠 거 아시죠?
류기태: 알고말고! 나한테 생활비 지원 받고 싶으면 나랑 같이 지하철 인질이 되면 돼. 언젠가 또 서울에서 인질극이 벌어지게 되면 그때는 꼭 같이 있어보자고!
최병기: ……경찰이 인질로 잡히면 아무래도 모양새가 이상할 거 같은데요?
류기태: 인질범이 되는 것보다는 그럴싸하잖아! ……어? 아까 그 경찰 양반 왔는데?
최병기: 아, 그럼 어르신, 다음에 뵙겠습니다.
류기태: 그래그래. 같이 인질 되려거든 2호선 많이 타. 나는 2호선만 타니까.
문도현: 그게 무슨 소립니까? 같이 인질이 돼요?
류기태: 그건 수사상 기밀이니까 알 필요 없고. 어쨌든 최 순경, 자네는 잘 가.
최병기: ……저, 선배님?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문도현: ……진술조사 속행하겠습니다.
류기태: 그러자고!
문도현: 다른 목격자들 말을 들어보면, 류기태 씨와 김선범 씨가 열차에서 가장 늦게 내렸다던데, 맞나요?
류기태: 으엥? 그거 아닌데……. 범인이 가장 마지막에 내렸겠지? 조금만 생각해보면 답이 나오는 건데 그걸 헷갈려하나?
문도현: ……제 말은 인질 중 가장 늦게까지 열차에 남아있었다는 의미였습니다.
류기태: 그런 질문은 오늘 처음 들어보는데? 아까 그렇게 물어봤으면 내가 바로 정답이라고 했을 거야.
문도현: ……네, 아무튼 대답해주시죠. 마지막에 두 분, 어떤 대화를 나누셨나요?
류기태: 별 말 없었는데? 그냥 잘 살라고 했지. 건강하게. 친구랑 헤어질 때 다들 그러는 거 아니야? 난 그렇게 알고 있는데?
하차 직전, 열차 내 스피커에서 김선범의 목소리가 들린다.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지하철 기관사의 배웅에 승객들이 저마다 큰소리로 인사한다.
“아저씨도 안녕히 가세요! 덕분에 지각이에요!”
“꼭 아드님 데리고 내원해주세요.”
“일자리 필요하면 연락 줘요!”
“나중에라도 인질범하려거든 더 분발하세요.”
“안전, 운전.”
“아저씨, 힘내세요!”
“아까 철교 위에서 한강 내려다본 거 예뻤어요.”
“칼 쓸 때 항상 조심하세요.”
“…….”
다음 승강장으로 진입할 때, HYH-8981열차의 브레이크가 작동한다.
정지선에 딱 맞게 열차가 정차하고 출입문이 열린다.
승객들이 열차에서 무사히 하차한다.
긴 교통체증에서 해방된 운전자처럼 승강장에 선 사람들은 각자 기지개를 켠다.
매뉴얼에 따라 일정시간이 지난 후 열차 출입문이 닫힌다.
열차가 다시 몸을 부르르 떨고 출발한다.
열차에서 내린 승객들이 승강장을 벗어나자 기다리고 있던 경찰들이 그들의 신변을 보호한다.
“괜찮으십니까?” 경찰이 다급한 목소리로 묻는다.
“괜찮아요. 멀쩡해요. 근데 혹시 먹을 거 있어요?”
인질들은 하나같이 그렇게 대답한다.
점심을 거른 채 많은 대화를 나눈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렇듯.
그들은 정말이지 많은 대화를 나눴다.
HYH-8981열차에는 마지막으로 김선범과 류기태 그리고 꾸리가 남는다.
류기태가 조심스레 조종실 문을 연다.
김선범이 의아한 표정으로 묻는다.
“왜 안 내리셨어요?”
“난 다음 역에서 내리려고.” 류기태가 김선범의 어깨 위에 손을 얹는다. “그나저나, 어째, 오랜만에 열차 운전해보니까 어떤가? 이제 미련이 좀 가셔?”
“아뇨?”
기관사가 씨익 웃는다.
어느 때보다 자연스러운 웃음이다.
“전혀요!”
류기태도 소탈하게 웃으며 화답한다. “그치? 이게 그렇다니까! 미련이라는 게 생각대로 지울 수 있는 게 아니야.”
“그런가 봐요.”
“그건 그렇고, 자, 받아.”
류기태가 수첩을 부욱 찢어 기관사에게 건넨다. 여태 작성한 친구 목록이다.
“가끔 연락해. 뒷면에 핸드폰 번호도 적혀있어. 그렇다고 너무 자주 하면 경찰에 신고해버릴 거야. 오늘 있었던 지하철 폭탄테러사건 진범이 당신이라고.”
“인질범에서 폭탄테러범 되는 건 너무 가혹한 거 아니에요?”
김선범이 종이를 받아든다.
입가에는 미소를 내걸고 촉촉한 눈으로 종이를 내려다본다.
“가끔, ……정말 가끔이라도 만났으면 좋겠네요.”
류기태가 그의 어깨를 톡톡 가볍게 두드린다.
위로의 손길처럼 친밀하지는 않았으나 그 점이 오히려 진심처럼 보인다.
“……자, 기관사 양반, 마지막 승객이 다음 역에서 내리겠다는데?”
“……안녕히 가세요.”
조종실을 나가려던 류기태가 갑자기 든 생각인지 불쑥 말을 꺼낸다.
“그나저나 생각해보니까 빌어먹을 교통카드 찍으면 교통요금 왕창 찍히는 거 아니야? 거의 한나절을 지하철에 있었는데!”
“영감님, 65세라고 하시지 않았어요? 그러면 지하철 승차요금 무료일 텐데요?”
“……그런 거야?”
꼬박꼬박 교통비를 지불하고 있던 마지막 승객이 하차한다.
꾸리라는 이름의 강아지도 새로운 주인의 뒤를 따라 폴짝 뛰어내린다.
덜컹― 덜컹―
지하철이 어둠을 가른다.
“…….”
열차에 혼자 남은 김선범이 친구 목록을 살핀다.
이름과 나이, 성별, 직업, 외관상 특징이나 성격, 연락처까지 적혀있는 매우 친절한 목록이 아닐 수 없다.
그는 승객들이 빠짐없이 빠져나간 열차의 조종석 의자에 자세를 고쳐 앉는다.
덜커덩― 덜커덩―
빛과 어둠을 가로지르는 열차의 움직임이 들려온다.
열차의 숨소리. 잠시간 정면 유리창 너머로부터 들이닥치는 어둠의 저편을 응시한다.
언제나 부지런히 정해진 시간에 어둠을 가르며 나아가는 열차가 더없이 믿음직스럽다.
그는 은색레버를 다시 원상태로 돌려놓는다.
그것으로 열차는 본래 모습으로 돌아간다.
인간의 섬세한 판단이 실린 손길 없이도 제때 제 장소에 정차할 것이다.
정해진 시간, 정해진 자리에 멈추어 승객들의 뒷모습을 끝까지 배웅하고 또 다른 승객들을 마중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는 조종실 곳곳을 마른 손수건으로 닦아내며 지문을 지운다.
열차 내 CCTV 영상도 삭제한다. 이제 조종실 안에 그의 흔적은 없다.
김선범이 조종실 출입문을 닫고 빠져나온다.
다시 승객이 된다. 그리곤 열차를 가로질러 걷는다.
첫 번째 칸에 탑승한 승객이 되었다가 두 번째 칸 승객이 된다.
계속 걷는다.
세 번째, 네 번째 칸까지 넘어가서야 그는 좌석에 앉는다.
다섯 번째 칸―마지막 칸은 누군가 화장실로 사용해버렸으므로―은 생략한다.
그러고 보니 지하철 승객용 좌석에 앉아보는 건 철도기관사라는 직업을 가지게 된 이후로 처음이다.
지난 17년간 이 열차에서 그의 자리는 오직 조종석이었다.
곧 다음 역에 도착할 예정이라는 객실 내 안내방송이 흘러나온다.
자리에서 일어난 김선범이 하차를 준비한다.
열차가 서서히 느려진다.
힘차게 구르던 발을 멈추고 정차한다.
출입문이 열린다. 마지막 승객이자 기관사였던 이가 하차한다.
사전에 약속된 시간만큼 자리를 지킨 뒤, 열차는 출입문을 닫고 유유히 떠난다.
망설임 같은 건 없다.
HYH-8981열차 조종실에는 김선범의 친구 목록이 남아있다.
그에게 그 목록은 최고의 선물이자 오늘 하루 새로운 인연을 만들었다는 보증서나 다름없지만, 챙기지 않는다.
이것이 친구들을 지키기 위해 그가 스스로 생각해낸 나름의 계획이다.
사실, 그 목록의 내용은 이미 김선범의 머릿속에 들어있다.
서울지하철 노선도를 달달 외우고 있는 사람이 은인이나 다름없는 친구들의 인적 사항을 못 외울 리가 없지 않은가.
그의 마지막 행동으로 경찰은 그야말로 대혼란에 빠지게 된다.
지하철, 그중 어떤 이유에선가 조종실만을 점거하고 있던 범인이 보다 원활한 상황통제를 위해 작성한 것으로 추측되는 인질 목록이 발견된 것이다.
인질은 총 11명에 강아지 한 마리. 그중에는 당연히 김선범의 이름이 포함되어 있다.
경찰은 끝내 범인을 검거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아무도 인질 목록에 범인의 이름이 포함되어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본래의 움직임을 되찾은 HYH-8981열차는 다시 자율주행모드로 운행된다.
중앙관제센터에서 이를 가장 먼저 알아채고 김선범이 하차한 다음 역에 바로 정차시킨다.
이후 경찰병력이 투입되고 대대적인 열차 수색 작업이 시작된다.
수색 결과, 인질 목록에 포함된 사람들의 지문과 머리카락이 첫 번째 칸―1224호―에서 대거 발견되고, 마지막 칸―1229호―에서는 용변의 흔적이 발견된다.
더 이상의 상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이제 곧 저녁식사 시간이기 때문이다.
#강승호
문도현 경사가 사건현장에서 발견된 종이를 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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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기태: 男, 65세, 백수, 하버드 졸업생
// 채소윤: 女, 36세, 중학교 영어 선생, 졸린 눈, 정이 많음
// 고재성: 男, 40세, 항문 외과 의사, 무테안경, 사람이 매사 뻑뻑하지만 철저함
// 선하나: 女, 15세, 여자 중학교 학생, 까만 눈, 화가 많음, 기특함
// 홍지선: 女, 55세. 주부, 까칠함, 예민함
// 손준겸: 男, 43세, 지하철 광고업자, 사각턱, 본인 직업에 대한 자부심 과다
// 김선범: 男, 44세, 지하철 기관사, 물러설 줄 아는 남자
// 정성도: 男, 30세, 조직폭력배, 더듬이, 노란색에 환장
// 장석기: 男, 30세, 래퍼(지망), 낮고 힘 있는 목소리
// 이한성: 男, 30세, 일식요리사, 본인 물건을 잘 간수할 필요가 있음
// 강승호: 男, 17세, 복싱선수, 말이 없음, 표정도 없음
// 꾸리: 男, 4세, 포메라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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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뭔지 아니?”
“아니요.”
소년이 대답한다.
표정 변화가 거의 없다시피 한 그의 습관이 거짓말에 힘을 보태준다.
“어디 다친 곳은 없고?” 조사관의 눈이 재빠르게 소년의 몸 이곳저곳을 살핀다. “어깨는? 손도 괜찮아? 허리도 괜찮은 거지?”
“어깨, 손, 허리, 다 괜찮아요. ……근데 제가 누군지 아세요?”
소년은 단순한 경찰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칠 정도로 신체 컨디션을 걱정하는 문도현 경사의 모습에 의문을 가진다.
“……아.”
조사관은 고민한다.
경찰이 된 이후로 섣불리 누군가를 알고 있다고 말하기가 껄끄럽다.
그래도 그는 사실대로 말한다.
“학생을 알고 있다기보다 부친을 알고 있어. 강재훈 선수……, 맞지?”
소년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조금은 놀란 얼굴을 짓는다.
선수 시절 아버지를 알고 있는 사람은 처음이다.
아들이 아닌 같은 운동선수의 눈으로 본 강재훈은 그리 기억에 남을 만한 선수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소년의 당혹스러운 눈을 읽어낸 문도현 경사가 황급히 수습하려 입을 연다.
“아아, 이상하게 생각할 거 없어. 내가 개인적으로 강재훈 선수 경기를 좋아했어.”
영웅이나 다름없었다는 말까지 하려다 그는 입을 다문다.
“네.”
그 대답을 듣고서야 소년의 얼굴이 평상시로 돌아온다.
“……정말 괜찮은 거 맞지?” 이번엔 경찰이 아닌 어른으로서 묻는다.
“네, 정말 괜찮아요.”
문도현 경사는 한결같은 표정으로 같은 대답만 뱉는 소년이 퍽 걱정된다.
과할 정도로 감정이 정제되어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복싱의 세계에서는 강점으로 발휘되는 요소인지도 모르겠다.
“그럼 조사 바로 시작해도 될까? 앞에 사람들이 했던 진술을 다시 확인하는 식으로 진행할 거야.”
“네.”
“오늘 지하철은 어떤 용무로 이용한 거니?”
“병원에 가려고 했어요. 두 달에 한 번씩 가서 정밀검사를 받거든요. 주로 근육이랑 뼈 상태를 확인해요. ……아, 제가 운동선수라는 건 말씀드렸나요?”
문도현 경사는 알고 있다고 답한다.
사실 열차에 탑승하기 전 흉기를 가진 문지성을 제압한 CCTV 영상도 몇 번씩이나 돌려봤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이번에도 꾹 참는다.
소년이 이어 말한다.
“어쨌든 그래서 병원에 가려고 탔던 거였어요. 평소에는 아버지가 차로 데려다주시는데, 정비소 가신다고해서 오늘은 지하철역까지만 데려다주셨어요.”
강재훈에게 이미 들었던 내용이다.
문도현 경사는 그렇다면 지하철에 탑승한 이후 시간대로 넘어가보자고 말한 뒤, 범인의 인상착의에 대해 묻는다.
다른 목격자들과는 비교가 불가할 정도로 예리하고 정확한 눈을 가진 소년이라면 새로운 정보를 기대해볼만 하다.
소년은 본인이 본 것을 그대로 읊는다.
진술의 진실여부는 오직 10명의 사람과 한 마리의 강아지만 알고 있다.
“사실, 제가 범인에 대해 기억하는 건 극히 일부분이에요. 당시 열차 내부 상황부터 설명해드리면, 지하철의 첫 번째 칸, 그러니까 조종실과 연결된 칸에 승객이 총 12명 있었어요. 저까지 포함해서요. 거기에 강아지가 한 마리 있었죠. 류기태 할아버지가 키우는 강아지였어요. 그러다 오전 11시 20분 전후로 기억하는데, 그때 승객 중 한 명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조종실로 들어갔어요. 어떻게 들어갔는지는 모르겠어요. 처음부터 열려있었는지도 모르죠. 그때 본 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에요. 이후에는 조종실에서 나온 적이 없어요. 그 사람이 범인이었던 거죠.”
문도현 경사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여태 들었던 진술과 동일하다.
“그래, 범인 인상착의는 어땠는지 기억하니?”
“키가 한 180정도? 리치는 190쯤 돼보였어요. 체중은 72에서 77사이? 꽤 마른 체형이었어요. 흰색 셔츠에 검정색 바지를 입고 있던 걸로 기억해요. 셔츠를 바지에 집어넣어서 입고 있었어요. 머리는 짧게 쳐서 이마가 드러나게 올린 스타일이고요.”
소년은 더 기억나는 것이 있지만, 거기까지만 말한다.
사실, 하차하기 전 다 같이 봤던 광고판의 배경까지 빠짐없이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소년은 순간적인 시각적 기억력이 뛰어나다.
“범인이 조종실로 들어간 이후부터 열차 출입문이 잠겼고 열차가 멈추지 않고 달리기 시작했다?”
문도현 경사가 다음에 이어질 진술을 대신 말한다.
“네, 무슨 일인지 핸드폰도 작동을 안 했어요. 그래서 아버지한테 보낸 그 문자가 마지막이었던 거예요. 지하철에 그런 장치도 있나요? 사실, 오늘 지하철을 처음 타보거든요.”
“글쎄……. 그런 것까지는 잘 모르겠다. 범인이 설치했는지도 모르지.”
“다른 사람들도 똑같이 말했겠지만, 열차 내에서 어떤 위험한 상황이 벌어진 건 아니었어요.”
소년이 말을 잇는다.
“폭탄만 빼면요.”
“그렇지……. 사실, 그게 가장 큰 문제지. 정말 큰일 날 뻔했어. 대한민국에서 폭탄이라니.”
문도현 경사가 눈썹을 문지르기 시작한다. 지하철과 폭탄. 두 단어가 한 문장에 엮이는 것만큼 큼직한 일은 없을 것이다.
“그나저나 폭탄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기억하니? 다른 사람들이 네가 한강으로 던졌다던데.”
“제가 던진 거 맞아요. 원래 들어있던 가방 통째로 던져버렸어요. 그리고……, 폭탄 생김새요? 특별할 건 없었는데, 그냥 네모난 모양에 이런저런 줄 같은 게 막 연결되어 있고…….”
소년은 초등학생 시절 봤던 만화 속 폭탄을 어렵사리 생각해낸다.
“한가운데에는 빨간색 글씨로 된 디지털시계가 박혀있었어요.”
“시간이 서서히 줄어들고?”
조사관이 목격자의 거짓진술에 도움을 준다. 친절하기 그지없다.
“네네네, 맞아요.”
“……정말 무서웠겠구나. 고생했다.”
어린 소년의 노고를 치하하며 문도현 경사가 돌연 속삭인다.
“근데, 열차 마지막 칸에 있던 그거, 있잖아. 진짜 강아지가 싼 거 맞니?”
“그게, 뭔데요 그거?”
소년은 부러 모른 척 되묻는다.
“……대변, 그러니까 똥.”
조사관은 오랜 형사생활로 끔찍한 시체와 낭자한 피에는 익숙해졌지만, 똥만큼은 친해지지 못했다.
적어도 이틀에 한 번 꼴로 만나는 사이임에도 마주칠 때마다 어색한 사이다.
“아, 그거요? 네, 강아지가 싼 거 맞아요.”
소년은 하차하기 전, 류기태가 따로 일러준 그대로 진술한다.
“쓰읍, 그래? 아무리 봐도 그 조그만 강아지한테 나올 수 있는 사이즈가 아니던데……. 무엇보다 그 모양이…….”
“강아지가 워낙 급하게 달려가서 아무도 직접 본 사람은 없지만 분명해요. 그리고 모양은……, 저도 잘 모르겠네요. 강아지를 키워본 적이 없어서.” 소년이 고개를 갸우뚱한다.
“일단 알았다.” 조사관이 할 수 없다는 듯 말한다.
“이제 다 끝난 건가요?”
“그래, 오늘은 이만 하면 된 거 같아.”
문도현 경사가 수첩과 노트북을 덮고는 이내 뭔가 갑자기 생각난 듯 고개를 쑥 내민다.
“……근데 밥은 먹었니?”
선수의 영양상태를 확인하는 코치나 다름없는 걱정스런 얼굴이다.
소년은 아직 안 먹었다고 대답하면서도 속으로는 어떻게 된 사고방식이면 대변 얘기를 하다가 바로 밥 얘기를 할 수 있을까 생각한다.
소년을 끝으로 서울 2호선 지하철 인질(폭탄테러) 사건의 목격자 진술서 작성이 완료된다.
여기에는 총 두 명의 조사관이 조사를 진행했고, 11명의 목격자가 조사에 임했다.
그 외에도 한 마리의 포메라니안 강아지가 있었지만, 아직 대한민국에는 강아지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통역사가 없었기에 그 부분에 해당하는 진술은 누락되었다.
각자 작성한 진술서를 대조한 결과, 특이점이 발견되었다.
그건 다름 아닌 이번 사건의 현장, 즉 HYH-8981열차의 마지막 칸(1229호)에서 발견된 용변에 관련된 사항인데, 목격자들의 진술이 일치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목격자들은 열차에 같이 있던 ‘꾸리’ 라는 이름을 가진 류기태의 반려견 소행이라고 진술한 반면, 한 명의 목격자, 고재성은 본인의 피치 못할 실수라고 진술했다.
정말 수상……하다기보다 의아한 점이라고 두 조사관은 생각했다.
공공장소에서 다 큰 성인이 용변 실수를, 그것도 [큰] 실수를 저지른 점을 차치하고서라도, 진술이 어긋난다는 점이 무척이나 의아한 부분이 아닐 수 없었다.
열차에 있던 용변의 크기나 모양을 근거로 판단했을 때 성인의 것이 분명했지만, 목격자 다수의 공통된 진술에 경찰은 결국 강아지의 소행으로 결론지었다.
다수결의 원칙이 힘을 발휘한 까닭에 본인의 치명적이고 더러운 실수를 진실 된 태도로 고했음에도 고재성은 사회적 지탄과 멸시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이 모든 것이 류기태의 계획이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고재성은 류기태의 치밀성과 다른 이들의 배려에 진심으로 감사해하며 훗날 항문질환이 의심된다면 언제든지 병원에 방문하라며 무료진료를 약속한다.
경찰당국은 이번 사태를 어떤 각도로 볼지 골머리를 앓고 있다.
잔혹한 인질극이라고 판단하기에는 외려 그런 판단을 내린 쪽이 잔혹하게 비춰질 판이다.
어떠한 범죄가 성립되는 가장 주요한 요인이라고 할 수 있는 ‘범행피해’ 부분이 모호하다.
인질범이 5시간 남짓한 시간동안 탈취한 HYH-8981열차는 그저 원래 경로대로 운행됐을 뿐이다.
열차에 탑승해있던 승객들 중에 발생한 인명피해도 없고 흔한 찰과상 하나 입은 사람도 없다.
본인은 극심한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며 피해보상을 요구하는 인질(류기태)도 있지만, 이는 곧바로 기각되었다.
굳이 이번 사태로 발생한 피해를 손꼽자면, 유동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금요일 오전 시간대에 2호선 열차가 11명의 승객과 한 마리의 강아지만을 위해 움직였다는 점이고, 무엇보다 심각한 피해는 열차 마지막 칸 바닥에 큼직한 대변이 있다는 것이다.
아주 바람직하고 우람한 그 용변을 처음 발견한 사람은 서울교통공사 전동차관리부서 소속 직원이었는데, 그는 그것을 보자마자 이렇게 속삭였다고 한다.
“……부럽다.”
그는 지독한 변비에 시달리고 있던 참이었다.
결국 서울 2호선 열차 인질(폭탄테러) 사건은 미제사건으로 기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