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 지긋지긋해
‘지긋지긋’ 이란 단어에는 독특한 맛이 있다.
"지긋지긋하다" 말할 때 서서히 미간이 좁혀지다가 인상 쓱- 구겨진다. 질긴 문어다리 씹듯 웬만해선 끊어질 것 같지 않다. "으~, 지·긋·지·긋·해!" 한 음절씩 꼭꼭 씹어 발음하고 나면 입안에 싸한 쇳내가 오랫동안 뒤끝처럼 남는다.
60살 넘게 살면서 "룰루랄라♬" 콧노래만 불렀을까?
어쩜 기쁜 일은 순간순간 찰나였을 뿐 지긋지긋한 것들을 지긋지긋하게 견뎌야 했다. 하루 중 좋게 기억되는 일 9가지가 끝나고 지긋지긋한 일 1가지가 남아도 뒤가 묵지근하다. 끝나도 끝난 게 아니다. 그 1가지가 제대로 풀리지 않으면 그날은 꽝! 인 거다. 60살 넘도록 이 지긋지긋한 것들이 줄기차게 따라오고 있다. 뒷다리 물고 늘어지듯 나를 꼼짝 못 하게 하는 그것들 말이야. 지금까지 견딘 것도 끔찍한데 앞으로도 계속 겪으며 살아야 하나? "도대체 그게 뭔데?"
뭐 먹지?
| 삼시 세끼 |
아침 먹고 돌아서면 “점심엔 뭐 먹지?” 점심 숟가락 놓기도 전에 “저녁 반찬은 뭐 하지?” 설거지 끝내기도 전에 “내일 아침 국거리는 또 뭐로 한담?” 늘 뾰족한 수가 없다. "먹는 것에 목숨 거냐?"라고 말하지만 '뭐 해 먹지?'가 우리나라 여자들 평생 화두 아닌가. ‘삼시 세끼’ 해결이 난제 중 난제다. 주부 경력 35년이지만 아직도 답을 못 찾았다. 남편에게 “뭘 해 먹을까?” 물어보면 “아무거나 먹으면 됐지.” 대수롭지 않게 대꾸한다. 도대체 그 ‘아무거나’는 어떤 메뉴인지 따져 묻고 싶다. 그렇다고 신경 쓴 만큼 '잘 차려 먹느냐?' 그건 또 아니다. 내가 차린 식탁을 내려다봐도 슬그머니 민망할 때가 많다.
앞서 퇴직한 남편이 1년 제주살이를 떠나 나 혼자 지낸 적이 있다. 대충 끼니 해결하고 삼시 세끼 걱정 안 하니 할 일 없는 듯 홀가분했다. 그렇게 1년이 지나고 집으로 컴백한다니 반갑기보다는 '또 밥은 어쩐다?' 이게 더 걱정이다. 심란한 속내를 눈치챘는지 “당신이 평생 밥했으니 이제부터는 내가 식사 준비할게.” 중대 선언이다. 뜬금없는 발표에 어리둥절했지만 잘했든 못했든 내가 30년 이상 해왔지 않나. 이제 남편이 하는 게 공평한 노릇이겠지. 더구나 난 아직 현직에 있으니 당연한 듯도 하다. 그래도 이런 기특한 생각을 하다니 고마울 따름이다. 해방이다. 해방! 홀가분한 자유를 찔끔, 맛보기나 했을까?
퇴근 무렵이면 전화가 온다. “오늘 저녁은 뭐 해 먹지?” 남편이 내게 그랬듯 “아무거나 알아서 해요.” 대꾸한다. 역할이 바뀌었을 뿐 대화 내용은 달라진 게 없다. "그냥 대충 김치찌개 끓여요." 일러준다. 또다시 전화가 온다. “소금, 간장 중 뭘 넣는 거야?”, “두부도 넣어?” 질문에 질문이 이어진다. “그냥 놔둬요. 내가 가서 할게.” 결국 한 달도 못 채우고 그 지긋지긋한 공은 다시 내게로 넘어왔다. "백종원 님 도와주세요!" 이 개미지옥에서 벗어날 방법 없을까요?
도대체 언제까지 학교 다니는겨?
| 학교 가는 길 |
다음은 학교 가는 것이다. 도대체 난 몇 년을 학교에 다니는 걸까? 8살에 국민학교 입학해서 6년 다녔고,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대학교 4년, 남들은 보통 여기까지 다니면 학교 문턱을 빠져나올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게 끝이 아니다. 60살 환갑이 넘도록 학교를 다니고 있다. 퇴직할 때까지 계산해 보니 도합 56년 학교를 다니는 셈이다. 거기다가 방학 틈틈이 대학원 2년까지 다녔으니 "으~, 학교 다니기 지긋지긋해." 소리가 나올만하지 않은가.
학생들은 아무리 학교에서 잘해주어도 학교 안 다니는 것이 소원이란다. 졸업식 날 학교를 떠나며 "안 가면 안 돼요?" 눈물짓는 녀석들에게 "그래? 그럼 학교 남아서 더 다니자." 하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것이다. 졸업하는 그날! 모든 억압과 구속에서 벗어나 자기 마음대로 살 수 있는 자유라도 얻을 듯 벼르고 벼른다. 그런데 말이야, 나는 그 지겨운 학교를 쭈욱~ 계속 다닌다. 졸업식 날 학교장 인사말 중에 빠지지 않는 한 대목이 있다. “졸업생 여러분! 여러분은 오늘부터 더 넓은 바다,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가는 겁니다.” 학교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나는 도대체 언제쯤 더 넓은 바다, 더 큰 세상으로 나가는 걸까? 그저 길고 긴 강을 따라 무한정 흘러만 가는 건 아닌가. 그 긴 강줄기를 따라 흘러 흘러간 것이 ‘내 인생’이 된 것이다.
교장이 되었어도 학교 가는 것이 재미있는 것만은 아니다. 책임이라는 무게로 늘 어깨가 무겁다. '질풍노도의 시기', 한 명 한 명이 시한폭탄 같은 사춘기 중학교 학생들이 내 고객님이시다. 출근할 때는 '오늘도 무사히' 주문을 건다. 하루를 끝내고 학교를 나설 때는 비듬 털 듯 양어깨를 툭툭, 쓸어내린다. 별다른 사고 없이 무사히 하루를 마쳐서 다행이라는 내 나름의 안도와 감사 의식인 셈이다. 나에게 정년퇴직은 '학교 졸업'인 것이다. 퇴직이면 이제 학교를 안 가도 된단다. 드디어 더 넓은 바다, 더 큰 세상으로 떠나는 것이다.
빨리빨리
| 시간 |
살면서 가장 허덕허덕 쫓긴 것은 시간이다. 아침 눈뜨는 순간부터 하루 종일 시간에 쫓고 쫓긴다. 돈에 쪼들리기보다 시간에 쪼들린 기억이 더 많다. 특히 아침에 눈떠서 학교 교문에 들어서는 동안은 1초 1분을 다투는 것 같은 시간전쟁이다. 내 수명이 평균수명보다 단축된다면 이 놈의 '시간' 때문일 것이다.
아들, 딸 키우면서 아침 눈뜨고 잘 때까지 ‘빨리빨리!’ 들볶는 소리다. “빨리빨리 일어나!”, “빨리빨리 가방 챙겨.” 국그릇에 밥 말아 주며 “늦었으니 빨리빨리 먹어.” 재촉이다. 유치원 등원시킬 때는 아이 손 잡아끌며 “엄마 늦어. 빨리빨리!" 내 보폭대로 뛰다시피 걷는다. 학교 출근시간 맞추는 것이 더 중요한 거다. 그리고 눈 말똥거리며 책 읽어달라는 아이들에게 "일찍 일어나야지. 빨리빨리 자." 참, 못된 엄마였다.
나는 업무 처리가 신속하기보다는 확인하고, 또 확인하여 완벽하다 싶을 때 손 터는 타입이다. 교육청에서 장학사로 일할 때 단순 실수로 공문을 내보내면 초·중·고 모든 학교로 파급되기에 그야말로 대형사고다. 신경을 바짝 곤두세우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늘 일이 벼락치기다. 매 순간 "재깍! 재깍!" 초시계로 카운트 다운당한다. 장학관님이나 과장님은 “노장학사! 시간 없다니까, 뭘 꾸물거려요.” 독촉이다. 그리고 오류를 찾아내고는 꼼꼼하지 못하다고 질타한다. '시간 맞추랴'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간다. 피 한 종지씩 줄어드는 기분이었다.
중학교 국어책에 나오는 <소설 동의보감> 한 대목이 생각난다. 허준이 과거 보러 한양 길을 나섰다가 아픈 아이를 돌봐주게 된다. 그러자 허준이 용한 의원이라는 소문이 돌고 환자들은 구름 떼처럼 몰려든다. 더 늦기 전에 과거 길을 나서야 하는 이때 해지는 석양 바라보며 “조금만, 조금만 더….” 시간이 늦게 가기를 간절히 외친다. 내 심정이 그 심정이었다.
정년퇴직을 앞두고 있다. 먼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시침! 분침! 초침! 을 충직하게 돌리던 '시곗바늘지기' 넌 이제 해고다. 해고!
이제부터 내 시간은 내가 알아서 쓴다. 고무줄 시계처럼 지겨운 시간은 후딱, 빨리 돌려버리고, 음악 들으며 커피마실 때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슬로비디오로 시곗바늘 돌리겠다. 나뭇가지에 새가 내려앉아 다 놀다가 날아갈 때까지 한없이 기다리겠다. 일벌이 제 배 다 채우도록 "윙윙"거리며 꿀 빨 때까지 느긋하게 기다려주겠다.
난 이제 시간 부자다. 느긋하게 가진 자의 여유를 누려보자. 비발디의 ‘사계’를 봄부터 겨울까지 전 악장을 들어볼까? 봄 1악장 들어갈 때 수동그라인더에 커피콩을 넣는다. 여름 악장이 끝나갈 때까지 천천히 돌리고 돌려 원두를 간다. 가을 악장에 핸드드립 커피를 내린다. 겨울 악장 넘어갈 때 음미하듯 커피 한 모금 마신다.
으음, 이 맛이야. 이 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