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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영임 Oct 20. 2024

뭐 하고 놀까? 맘껏, 실컷, 짜릿하게

#퇴직 #제2의 인생 #자유 #해방 #놀기 #여행

으~ 일어나야지

아침 5시 정각. 1차 알람이 울린다. 

5시 10분. 2차 알람이 울려서야 겨우겨우 눈을 뜬다. 세면대 거울 앞에서 입안에 치약 거품 문 채 오늘 하루를 그려본다. '후우~ 오늘 하루도 피곤하겠구먼.' 생각을 지우기라도 하듯 "빡빡!" 소리 나게 양치질한다. 방학과 주말을 빼면 하루 시작은 보통 이런 식이다. 일요일 오후 3시부터는 “끙~” 신음소리 나는 월요병 시작이다. 39년이 지나도 고질병처럼 낫지 않고, 익숙해지지도 않는다.


      


잠이나 실컷 잤으면….


“퇴직하면 뭐 할 거예요?” 무조건 늦잠자기란다. 

일단 늦잠이나 실컷 자보고, 뭐 할지는 그다음에 생각해 보겠단다. 그러고 보면 나뿐만 아니라 시간에 일어나야 하는 모든 직장인들의 공통된 고충인가 보다. 이제 일어나고 싶을 때까지 실컷 자면 된다. 시간 맞추어 달려갈 학교도 없으니 알람 맞출 일도 없겠지. “해방이다!” 소리 높여 외쳐보자.


그런데 이 헛헛함은 뭐지?

나 홀로 무인도 떨어져 망망대해 향한 외침 같다. 기대한 것처럼 후련할까? 룰룰랄랄♬ 콧노래가 저절로 나오지 않을까? 아니야. 아닐지도 모른다. 어쩌면, 아침 눈뜨면서 “오늘은 뭐 하지?” 하루 보낼 일이 난감할지 모른다. 늦잠 자고 싶어도 허리가 배겨서 더 버티지 못하고 일어날지 모른다. 어영부영 오후 3시가 되면 별 볼 일 없이 시간 보낸 내가 싫어서, 그런 하루가 마뜩잖아 "에라, 모르겠다." 다시 낮잠을 청할지도 모른다. 소설《어린 왕자》에서 술꾼이 술에 취한 자기 모습을 잊고 싶어서 또 술 마시는 것과 뭐가 다를까?   

  

맘껏 놀라는데 왜 걱정이지? 

언제는 "약 먹고 죽을 시간도 없다." 투덜거리더니 맘껏 시간이 주어져도 걱정이란다. 나도 내 마음이 왜 이 모양인지, 어느 장단에 춤추어야 할지 모르겠다. 그동안 놀아보지 않아서 놀 줄을 모르는 건가. 자의든 타의든 주어진 대로만 살아왔기 때문에 ‘놀기’와 ‘자유’의 기회가 두려운지도 모르겠다.





이제 내게 남는 건 시간뿐이다

그냥 놔두면 관성의 법칙대로 편한 것, 익숙한 것으로 몸이 또 흘러갈 것이다. 해 본 것, 잘하는 것, 먹어 본 것, 가본 곳만 찾을 것이다. 나는 권태기가 3년이 아닌, 3개월짜리다. 그런데 60년 동안 당연한 듯 반복해 왔고 또 앞으로도 어제와 똑같다면 그건 너무 재미없지 않을까. 

체질 바꾸듯 세팅을 다시 하자. 이왕이면 안 해 본 것, 못하는 것, 안 먹어 본 것, 안 가본 곳을 찾아보자. 그리고 일부러 시도해 보는 거다. 안 해 본 일은 잘하지는 못해도 새로워서 신나지 않을까? 그리고 늘 기죽어 살란 법 없지. 다른 사람보다 잘 못했던 것이 있으면 그것도 한번 덤벼보는 거야. "까불고들 있어!" 큰소리치면서…. 


무조건 떠나리라

‘놀기’와 ‘자유’의 합성어라도 되듯 이 두 단어를 충족시켜 주는 것이 해외여행일 것이다. 빈센트 반 고흐가 그린 <밤의 카페 테라스> 를 떠올려본다. 그림 전면에 빈 테이블은 분명 나를 위하여 비워둔 것이다. 저 카페가 있는 프랑스 '아를의 포룸 광장'을 찾아가는 거야. 

파란 밤하늘에 쏟아지는 별빛 아래 오렌지빛 조명받으며 앉아 보자. 목욕탕 따뜻한 탕 속에 몸 담글 때처럼 "아, 좋다~" 탄성이 절로 나오지 않을까. 저 그림 속 카페가 아니더라도 어느 노천카페에 앉아 읽지도 못하는 영자신문 펼쳐 놓고 에스프레소 홀짝거리기, 바쁘게 지나치는 이들에게 손 흔들어주기…. 상상만으로도 기분 좋다.

                                               출처:https://blog.naver.com


많은 사람들이 해외여행에서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고역이란다. 고추장이나 깻잎장아찌라도 바리바리 챙겨가야 한단다. 나는 아니다. 웬만한 것은 가리지 않는 글로벌한 입맛이다. 그러니 해외여행에 최적화인 셈이다. 세계는 넓고, 갈 곳은 많다. 평생 돌아다녀도 가보지 못할 나라들이 얼마나 많은가. 두 다리에 힘 있을 때 다녀야지. 우선 먼 나라부터 시작해서 가까운 이웃 나라로 좁혀오자. 퇴직 이후 확실하게 정해진 건 2025년 8월 31일 퇴직이니 그다음 날인 9월 1일. 나는 <크로아티아>행 비행기를 타고 있을 것이다. 그동안 고생한 나에게 퇴직 선물을 주자. 평생 못 앉아본 비즈니스석으로….   


소소한 일상에서 쏠쏠한 재미 찾기

해외여행도 일 년에 한두 번이지 맨날 쏘다닐 수야 없지. 소소한 일상이 되는 재미거리. 뭐 없을까? 이어폰으로 음악 들으며 천천히 무심천을 산책하자. 우리 아파트를 숲세권 요지로 만들어준 뒷산도 올라가자. 해외가 아니면 어떤가. 동네 카페 창가 앉아 멍 때리듯 하염없이 창밖을 바라보자. 관객 없는 조조 영화도 보러 가자. 혼자서 영화관을 통째로 전세 낸 기분 아닐까. 옆 사람 눈치 보느라 훌쩍거리지 말고 콧물 팽! 풀어가며 시원스레 울어주자.


어디서 놀까? 공간 이동도 해보는 거야. 

남편처럼 제주살이도 떠나자. 애월 쪽에서 한 달, 성산 일출봉이 보이는 바닷가 근처에서 한 달, 한라산 중산간 지역에서도 한 달 살아보자. 서귀포 쪽에서도 한 달쯤 살며 이중섭 화가의 고독과 외로움도 절절히 느껴보자. 꼭 제주도여야만 할까. 강원도와 전라도에서 살아도 좋겠다. 강원도는 강릉보다 속초가 더 당긴다. 호수가 있어 이국적인 맛도 있고 중앙시장 닭강정과 아바이순대도 은근 구미가 당긴다. 전라도라면 구례에 터 잡고 지리산 둘레길도 걷다 쉬다 걷다 쉬다 해보고 싶다.


같이 놀아주지 않는다고 입 삐죽거리지 말고 혼자 즐기자.

세상 시끄러운 소리 안 들으려면 당분간은 혼자이고 싶다. ‘멍 때리기’는 혼자가 더 좋지. “여기, 맥주요!” 동네 선술집에서 회덮밥 시켜놓고 알딸딸할 정도의 혼술도 괜찮겠지. 혼자서도 잘 노는 ‘솔리튜드 훈련’을 해야겠다. 갑자기 혼자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 신난다. 어쩜 혼자라서 더 좋은지도 모르지.





100세 시대란다. 아니, 120세가 도래한단다. 아무리 세상이 좋아졌다지만 늙음에 순응할 줄도 알아야지. 80대까지 팔팔한 할머니를 기대하지 않는다. 오히려 보톡스나 필러로 빵빵하게 얼굴 부풀린 것처럼 그악스러워 보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70살, 아니 79살까지는 내 인생의 ‘골든타임’ 아닐까? 일단 그때까지만 생각하고 즐길 준비를 하자. 무엇을 해야 내 입꼬리가 슬쩍, 올라가고 가슴이 바운스, 바운스 뛸까?  


                맘껏, 실컷, 짜릿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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