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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영임 Oct 27. 2024

나, 삐뚤어질 테야

#일탈 #자유인 #버킷리스트  #혼술 #품위 #퇴직 #여행


           난 휴식이 필요해      


23일 속초로 여행을 떠났다. 

"강원도까지 왔으니 설악산은 가야지?" 산을 좋아하는 남편은 당연한 듯 말한다. 나는 10년 전이지만 지리산 종주길에서 발목 골절로 119 헬기를 타고 이송되었던 경험이 있어 등산은 내키지 않았다. 무엇보다 남편은 퇴직 이후라 여유로운 편이지만 나는 지지고 볶는 일상에서 잠시 빠져나온 금쪽같은 휴가다. 직장에서 일하는 것도 힘든데 놀러 와서까지 힘들고 싶진 않다. 휴식이 필요하다. 아니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다.     





보호자가 필요한 나이도 아니고 다 큰 어른데….

"당신은 설악산으로 가고, 나는 영랑호로 갈게요." 각자 가고 싶은 곳으로 가자고 제안했다. “모처럼 둘이 온 여행인데 무슨 소리.” 남편은 서운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럼 자기가 설악산 등산을 포기하고 함께 영랑호를 걷겠다는 것이다. ‘어쩜, 저렇게 눈치가 없을까?’ 진정 아내가 원하는 것이 지도 모른다니까. “무슨 소리~, 내가 미안해서 안 되지. 절대로!”      


빡빡 우긴 끝에 각자의 길을 가기로 했다. 

남편은 설악산 등산을 위해 양양 쪽으로 떠나고, 나는 영랑호수 윗길로 길을 잡았다. 평일 아침나절이라 호젓하니 걷기 딱, 안성맞춤이다. 낯선 지역이지만 영랑호수 곁을 따라 걸으니 길을 잘못 들어설 염려도 없다. 걷다가 힘들면 중간중간 놓인 의자에 앉아 다리 쉼 한다. 호수에 은근히 피어 오른 물안개 보며 "좋으네~" 소리가 절로 나온다.

이때 빠질 수 없는 것이 커피다. 텀블러에 담아 온 따끈한 커피를 따라 마시며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는다. "아~, 이것이 힐링이지.  더 바래." 지금 이 순간 얼마나 행복한지 사진에 담아두고 싶을 정도다. 혼자라서 좋지만, 옆에 사진 찍어줄 사람이 없다는 건 다. 그래도 혼자 오길 참, 잘했다 싶다.    

  

출출하니 뭐 좀 먹을까

2시간 정도 걸으니 지치고, 슬슬 배도 고프다. 둘레를 살펴보니 식당 두 군데가 보인다. 어디로 갈까? 살짝 고민하다가 주차장에 차 없는 으로 들어섰다. 손님이 한 명도 없이 나 혼자다. ‘일단 좋았어.’ 속으로 쾌재를 부른다. 창가 자리에 앉아 여유롭게 실내를 둘러본다. 그저 그렇고 그런 조촐한 분위기다. 그때 어? 확, 눈길 끄는 게 있. 물속에서 나온 후드득~ 물기 털듯 근육질 잘 생긴 남자가 땀에 젖은 머리칼 휘릭- 날린다. "꿀떡꿀떡" 목울대 울리며 생맥주 마신다. 그리고 반쯤 남은 맥주잔을 척! 든다. "캬~!" 소리까지 들리는 듯하다. 맞은편 벽면에 붙어있는 광고포스터.

   

, 저 맛은…. 끝내주겠지? 

오래 걷고 난 후라 목도 컬컬하니 저절로 꿀꺽, 침이 넘어간다. 딱, 한 모금 마셔봤으면…. 간절하다. 에이~ 무슨 소리야. 처음 와본 낯선 타지 아닌가. 그것도 벌건 대낮 여자 혼자 낮술을? '당치도 않는 소리.마음은 그랬다. 그런데 주문한 음식이 나왔을 때 대뜸 “생맥주 있나요?” 묻는다. 마침 여자 주인 다행이다. “아, 그럼요. 당연하죠.” 흔쾌히 대답한다. 지금  을 따서 맥주 맛이 더 신선할 거라며 한잔 내온다.  


그렇고 그런(?) 여자로 보면 어쩌나.

대낮에 혼자 술을 주문하는 나란 여자를 어떻게 볼까? 은근히 신경 쓰였다. “낮에 술 마시기는 태어나 처음이에요. 한참 걸었더니 너무 목이 말라서….” 묻지도 않았는데 주절주절 변명을 늘어놓는다. “낮에 술 마시는 게 뭐 어때서요?” 의아한 표정을 짓더니 “저는 종종 혼자 마셔요.” 씽긋, 웃어주는 것으로 ‘낮술 마시는 여자’에 대한 면죄부를 준다.  

“캬~, 이 맛이야. 이 맛!” 그렇게 맛난 맥주는 처음이다. 그 사이 옆 테이블에 손님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도 아랑곳 않고 한 잔 더 주문해서 ‘홀짝, 홀짝’ 제대로 혼술을 즐긴다. 그다음 뜨거운 아메리카노까지 시켜 입가심하듯 마시고 일어났다.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여행이다. 부끄럽고 창피하기보다 어른이 된 듯 흐뭇하니 대견스러운 경험이었다.           


비 오는 날 낮술 마셔보기’  

일생일대 해보고 싶은 리스트 중 하나다. ‘주룩주룩’ 비 오는 날에  빗소리 들으며 낮술부터 마셔보다. 아니, 소리 없는 이슬비면 또 어떠랴. 혼술도 좋고, 말이 통하는 술벗과 함께여도 좋다. 아, 물론 여자끼리다. 속치마 콘셉트로 마시다가 그 자리에 쓰러지듯 잠이 들어도 뒷말 나지 않는 술벗이면 좋겠다.



아, 조타~

나이 60살 되어 한풀이한 셈이다. 

혼자 낮술 한 번 마시는 게 뭐 그리 어려운 일이라고. 사회 요직에 있어 일거수일투족이 가십거리인 대단한 사람도 아니고, 19세 넘은 성인이 그깟 맥주 한잔 마신다고 누가 뭐래. 남에게 술을 사달래. 고성방가로 주변에 피해를 주겠어. 안 그래? 나 스스로 ‘이건 된다, 저건 안 된다.’고 정한 율법 같은 규율 때문이지. 한 마디로 남들 눈치 보고, 거기다가 내 눈치까지 얹어 이날, 이때까지 살아온 셈이다.     


공무원에겐 '품위 유지 의무'가 있다. 

거기다 학생 가르치는 교사라니 더 엄격한 도덕적 잣대가 적용된다. 짧은 치마를 입어도, 야한 화장을 해도, 회식 자리에서 남자 보고 웃는 것까지 입방아에 오르내릴 수 있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고리’라고 얼마든지 트집 잡다. 정도의 경중에 따라 징계까지 받 수 있다. 그러니 늘 자기 검열을 한다. 이제 퇴직하고 나면 이 나라 공무원이 아닌 나를 누가 ‘품위 손상’ 죄목으로 징계위원회에 회부하겠는가?


      



국가보안법에 걸리는 일 아니면  

남편의 말이다. “점퍼 말고 카디건 입는 게 점잖아 보여요. 목 춥지 않게 목도리 매는 게 어때요.” 한두 마디 하면 "또또, 저 잔소리" 질색이다. 이제 나도 "내 맘대로 하게 놔둬요!" 맞받아 칠지 모른다. 그러고 보니 우리 집엔 10대 사춘기보다 더 무서운 60대 ‘육춘기’ 반항아가 두 명 있는 셈이다. 말끝마다 한 마디도 져주는 법이 없다. 사사건건 “챙! 챙!”소리 나도록 싸우게 생겼다.   

 

 나, 삐뚤어질 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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