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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찬민들레 Oct 25. 2024

이방인으로 살아남기 (취업 편)

입사보다 중요한 건 그 후의 문제.

나에게는 큰 꿈이 있었다.

사실 성적에 맞춰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했지만 뒤늦게 사회복지를 전공했다. 

생각해 보니 어렸을 때 나는 유난히 소외된 친구들에게 친절했고, 약자에 마음이 더 쓰였다. 

물론 이런 감정과 성향이 모든 사회복지사들에게 일반화되진 않지만 복수전공을 하게 되면서 마치 잃어버렸던 신데렐라의 신발을 찾은 것처럼 운명을 되찾은 것 같은 느낌이 든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학교 생활이 녹록지 않았던 것만큼 아니 그보다 훨씬 더 취업의 길은 멀고도 험했다. 


‘취업난’이 없던 해가 없었다지만 당사자인 나에게는 더 혹독하게 느껴졌던 2009년의 겨울이었다.


졸업시험과 국가고시를 단번에 패스하고 당연히 순차적으로 취업을 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취업 준비를 하면서 또 수많은 좌절을 경험했다. 진짜 나를 찾아주는 곳이 있다면 어디라도 가겠다는 의지로 전국 방방곡곡의 수많은 기관에 이력서를 넣었지만 회신 오는 곳은 거의 없었다.      



점차 지원하는 기관의 종류가 달라졌다. 

처음엔 그래도 사회복지사라면 종합복지관이지!라는 생각에 복지관에서 근무하고 싶었다. 

종합사회복지관, 노인종합복지관, 장애인종합복지관.

첫 취업인 만큼 내가 가고 싶은 곳에서 일을 해 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지만, 

취업 준비기간이 늘어나는 만큼 점점 자신감도 없어지고, 내가 지원하는 복지기관 종류도 달라졌다.


국가에서 운영하는 치매지원센터나 정신보건센터도 괜찮지 않을까?

그래, 이 정도면 연락이 오겠지 

그러다가 점점 더 비인기 분야인 생활시설까지 지원서를 넣었다.

단기보호시설부터 주간보호센터,,,, 

진짜 100곳 넘게 지원을 하다못해 이력서를 뿌리던 시기.

아직 졸업식도 하기 전인 재학생 신분이었지만 무엇이 그리도 조급했는지 

빨리 취업이 되지 않아 불안함에 잠 못 들던 그런 날들이었다.  

    




처음으로 면접 제의를 받았던 곳은 금천구에 위치한 종합복지관 부설 장애인 주간보호센터였다.

낮시간동안 장애인들을 돌보고 다양한 사회활동을 함께하는, 쉽게 말해 유치원이나 학교 같은 곳이었다. 첫 면접이니만큼 최대한 나의 강점을 부각해야 한다는 생각에 

프레젠테이션까지 준비하며 열과 성을 다한 결과

11:1의 경쟁률을 뚫고 당당히 최종합격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최종 합격을 축하드립니다.

혹시, 출근 전 인수인계도 그렇고, 기관장님께 인사드릴 겸 하루 전에 나와주실 수 있나요?   

  

그동안 면접 연락이 오지 않은 이유가 있었구나.

첫 면접에서 한 번에 최종합격이라니!! 너무 좋아!! 

날아갈 듯한 기분을 만끽한 것은 채 반나절이 지나지 않아 끝났다. 마음속에 걱정 인형을 품고 사는 나는 내가 과연 잘할 수 있을까? 한 시간 넘는 출퇴근 거리를 잘 버틸 수 있을까? 졸업도 하기 전에 너무 조급하게 첫 직장을 결정한 건 아닐까?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지만, 첫 출근 전 오리엔테이션 차 방문하라는 말에 일단 가 보기로 했다.     


한 시간 지하철을 타고 다시 도착한 복지관은 뭔가 거대해 보였다. 본관과 분관으로 나누어진 규모는 나를 압도했고, 사실 복지관의 실체보다 ‘사회생활’을 시작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더욱 위축되었다.

모두들 친절하게 인사하고 환영해 주셨지만 23세의 졸업예정자의 눈엔 모든 것이 걱정스럽고 낯설었다. 무엇보다 장애인주간보호센터라는 곳이 주는 보이지 않는 벽이 생각보다 너무 높았다.

대화가 원활하지 않고,

신체활동 역시 제약이 많은 장애인을 내가 잘 이해하고 케어할 수 있을까.

갑자기 가슴속에 사이렌이 번쩍번쩍 발동하면서 취준생의 조급함에 가려져 내가 지금 

아주 중요한 무언가를 놓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멍하게 지하철을 타고 돌아온 집.

마음속을 가득 채워버린 두려움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단순히 장애인이라는 분야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나의 지식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사회복지사로서의 자질이 부족했던 걸까?

안절부절못하다가 결국 휴대폰을 들었다.     


죄송한데요 선생님,, 저 출근 못 할 것 같아요,,

제가 너무 준비가 안된 것 같아서요..

찾아뵙고 말씀드려야 하지만,,, 그것도 자신이 없어요.. 죄송해요....     


얼마나 어리석고 무례한 행동이었는지..

지금 생각해도 얼굴이 화끈거린다. 

그래도 당시 담당 선생님은 한숨을 한번 쉬고는 

‘다음부터는 전화로 이렇게 통보하면 안 돼요~ 알겠죠? 

라고 말씀하시고는 마음을 토닥여 주셨다.     


취업이라는 허들을 넘는 데만 급급해서 

진짜 내가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시간을 간과했다.  

   


진짜 내가 하고 싶은 분야가 어디인지 깊이 생각하고 최종합격 후 그 기관의 직원으로서 일을 할 각오를 다졌어야 했는데 당시에는 ’ 최종합격‘에 목말라 일단 합격, 닥치는 대로 입사가 목표였다.

합격하고 나서야 그 뒤의 일을 생각하니 너무 두려웠고 부족했음을 알게 되었다. 

애초에 목표가 최종합격이 아니라 사회복지사로 근무하는 것이었어야 했는데 초점을 잘못 두었다는 걸 깨닫고 다시 준비를 시작했다.

내가 진짜 하고 싶은 분야를 찾고, 기관 종류를 찾고, 다시 처음부터 차근차근 도전해 보기로 했다.

수십, 수백 곳의 문을 두드리고 면접을 보고, 불합격, 불합격, 불합격을 반복하다가 드디어 신입 사회복지사가 되었다.

그렇게 노인복지시설에서 사회복지사로서의 첫걸음을 내디뎠고, 그 발걸음이 나를 노인복지 분야로 이끄는 계기가 되었다.     


아,,,, 이래서 다들 첫 직장이 중요하다고 하는 거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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