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표를 달고 입장할 수 있는 문은 없. 습. 니. 다.
우리나라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간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그전까지는 너무나 당연하게 느끼고 누리고 지냈던 모든 것들이 한층 더 어려워지는 게 바로
이방인들의 삶이 아닐까?
대학생이라면 당연히 학교를 가고 수업을 듣고 실습하고 졸업하는 이런 과정들이
복수전공자들에게는 너무 버거운 일이었다.
원 전공자들이 아스팔트 포장도로로 걷는다면,
복수전공자들은 소똥이 가득한 비포장도로를 걷는다고 하면 너무 비약일까.
두 가지의 전공을 공부하면서 동기들과 겨우 껄끄러움 없이 수업을 들을 수 있는 산을 넘자마자
실습이라는 더 높은 산이 나타났다.
졸업을 하기 위해서는 여름방학, 겨울방학 총 2번의 실습을 해야 하는데
보통 한 번은 종합사회복지관에서, 한 번은 단종복지관이나 본인이 관심 있었던 분야에서
실습을 하게 된다.
이때만 해도 정신보건 분야에 관심이 있었던 나는
종합사회복지관에서 전체적인 사회복지 현장을 경험하고,
겨울에는 정신보건센터나 정신병원에서 정신보건분야의 사회복지를 경험해 봐야겠다는
당연한 계획을 세우고 있었는데.
실습조차 못하게 될 줄은 정말 생각도 못했다.
실습도 면접으로 뽑는 거 알고 있었어?
여름방학을 앞두고 실습을 어디서 할지 고르고 있던 내게, 같은 복수전공자였던 사학과 언니가 물었다.
이 복지관은 종교색이 너무 강해서 싫고, 여긴 실습생을 너무 막대한다 해서 싫고,
내가 진짜 실습해 보고 싶은 기관을 찾기 위해 한 군데씩 제외해 가던 내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생각해 보니 면접을 볼만도 하다. 학생은 많은데 복지기관은 많지 않으니.
그래도, 학교에서 졸업하기 위한 필수 과목으로 지정된 과목이 ‘사회복지현장실습’인데,
실습할 곳을 찾지 못해서 과목 이수를 못한다면??
그럼 졸업을 못하는 건가??
면접은 어떻게 보는 거지??
근처 복지관에서 안 받아주면 타 지역까지 가서라도 실습을 해야 한다는 걸까??
머릿속이 한참 복잡해졌다.
실습 기관 하나 정하는데도 이렇게 산이 많은데, 내가 졸업을 한들 복지관에서 일할 수 있을까?
점점 자신이 없어졌지만 그래도 나 하나 실습할 기관이 없을까 하는 생각으로 차근차근 지원서를 보냈다.
당시, 실습지원, 취업지원순위 1위였던 어린이재단에서 운영하는 복지관은 면접 보기도 전에 서류탈락.
면접이 곧 취업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았기 때문에
마치 직원 면접을 보듯 서류도, 인터뷰도 깐깐할 거라 예상했지만 서류에서 탈락할 줄이야.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오히려 나 같은 복수전공자들은 서류전형 통과하기가 면접보다 훨씬 훨씬 백배 천배 오만 배쯤 더 힘들다. 이유는 없다. 그냥 복수전공 자니까.
믿고 거르는 복수전공자라고나 할까.
어린이재단을 시작으로 다들 알만한 사회복지재단에서 운영하는 복지관에 거의 다 지원했지만
정말 단 한 번의 면접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다.
다급해진 나는 점점 지원 범위를 넓혀 거의 전국에 있는 큰 복지관의 문을 두드렸다.
돌이켜보면 이것도 참 욕심이다.
이름 있는 복지관, 재단이나 법인이 큰 복지관에서 실습하는 게 뭐가 그리 중요하다고
메인 기관에만 지원서를 보냈던 걸까?
내 위치와 상황을 먼저 생각하고, 1번이 안되면 빠르게 차선책을 찾았어야 했는데
그 ‘이름’에 매달려서 굳이 혼자서 좌절을 맛보고 있었다.
결국 취업시장의 쓴맛을 미리 체험하고 다행히 집 근처의 직원 3명이 전부였던 작은 종합사회복지관에
부탁 아닌 부탁, 애원 아닌 애원을 하고서야 실습을 할 수 있었다.
인사를 하고 실습비를 내고 돌아오면서 뭔가 내가 너무 작아진 기분에 서러웠다.
종합복지관의 4주간의 실습과 정신병원에서의 4주간의 실습이 끝난 후 막연히 책으로만 배웠던 사회복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불쌍하고 측은한 마음으로만 사업을 할 수 없다는 것,
사회복지 분야가 굉장히 세분화되어 있는 만큼 사회복지사는 만능이어야 한다는 것,
사회복지사는 좋은 일 하는 사람이 아니라 전문지식을 발휘해야 하는 전문직이라는 것,
그리고 실습처 구하기도 이렇게 어려운데 과연 내가 취업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까지.
아... 나 앞으로 사회복지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