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꿈찬민들레 Oct 25. 2024

이방인으로 살아남기 (전공 편)

너구나? 우리 학점 뺏어가는 복수전공자.

지금 돌이켜보면 아무것도 아닌데 그땐 왜 그렇게 눈치를 보고 다녔는지 모르겠다.

사회복지를 복수 전공하면서 다시 스무 살 새내기가 된 기분이었다.

다른 과 학생들과 같이 전공 수업을 듣고, 과제를 하고, 시험을 치르면서 

이유 없는 눈칫밥을 스스로 먹고 있었다. 



원 전공자들의 입장에선 느닷없이 전공 수업에 들어온 낯선 복수전공자들이 의아했을 것이고

제한된 A+학점을 따기 위해서 경쟁해야 하는 경쟁자가 더 늘어 억울하고 분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들의 입장도 이해되지만 어쩔 수 없다. 

복수전공자의 길을 선택한 이상, 대충대충 설렁설렁할 수 없었다. 

졸업하기 위해 꼭 수강해야 하는 전공필수 과목을 듣고 그 외에 원어수업, 그룹수업과 과제까지,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철판 깔고 바삐 강의실을 돌아다녔다. 

본 전공인 국문과 전공강의실보다 사회복지과 전공강의실에서 보내는 시간이 오히려 많았을 정도.





강의를 듣는 건 어려워도 할 만했다. 스스로 노력한 만큼 결과를 낼 수 있으니. 

정말 어려운 건 바로 그룹수업이었다. 

학과의 특성상 강의식 수업만큼 그룹수업과 과제가 많았는데 그때마다 조를 짜는 것이 너무 어려웠다. 

아무도 복수전공자들과는 같은 조를 하려고 하지 않았고, 

항상 자투리로 인원이 모자라는 조가 복수전공자를 끼. 워. 주. 는. 분위기.      



3학년쯤이었나.

행정론 수업을 들었을 때 일이다.

한 학기 수업 전체가 그룹 과제를 하고 발표 후 피드백을 받는 식으로 이루어졌는데 

그날도 역시, 나에게는 선택권이 없어 교수님이 나를 어느 조에 넣어 주실까 기다리고 있었다. 

어느 정도 그룹이 정해졌을 때쯤, 멀뚱히 앉아있는 나에게 누군가 말을 걸었다.     



너구나우리 학점 뺏어가는 복수전공자.     


순간 너무나 당황해 얼굴이 빨개져 아무 말 못 하고 쳐다만 보고 있었다. 

아니, 이렇게 대놓고 거부감을 드러낸다고? 

순식간에 모든 학생들의 이목이 집중되었고 나는 더더욱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는 멍하게 쳐다보고 있는 나에게 덧붙였다.     


아닌가어차피 우린 전공이 같으니까 그냥 내 후배네너희들과는 동기구나?     


당시 3학년 과대표를 맡고 있던 복학생 A는 한 번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했다. 

동기들이 직접 꺼내진 못하지만 마음속에 담아둔 복수전공자들에 대한 거부감을 

오히려 한 번은 터트려야 앞으로의 학교 생활이 서로 편해질 것 같았다고. 

불쾌하고 무례한 시비라고 생각했는데 속마음은 날 위한 배려임을 알게 되고 너무나 고마웠다.      

본인들의 불편한 마음을 타인의 입을 통해 해소해서였을까?

그날 이후로 A의 말처럼 나의 학교 생활은 한결 편해졌다. 

극적으로 반전되어 절친이 되거나 하하 호호 함께 수업을 듣진 않았지만 

적어도 은근한 불편함은 완전히 해소되어 더 이상 강의실 문을 여는 것이 불편하지 않았다.  

   

A와 한 조가 되고 한 학기 동안 함께 공부하고 대화하면서 나는 혼자 학습했던 사회복지를 함께 나눌 수 있게 되었고 그때부터 이 일을 직업으로 평생 하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 하게 되었던 것 같다. 



친구 말 한마디에 얼렁뚱땅 복수전공을 선택한 ‘학점 도둑’에서 

관계를 파악하고 그 속에서 참신한 해결책을 찾아낼 수 있는 

예비 사회복지사로 한걸음 더 성장했다고나 할까.

이전 01화 스무 살에 마주한 먹고사는 문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