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페이 기본장착! 연줄 없이 혈혈단신 개관 복지관으로
누구에게나 그렇듯 처음은 소중하다. 수많은 경험 중 '처음'이 들어가면 설렘과 긴장, 떨림과 기대가 자연스럽게 떠오르니 말이다.
나의 첫 직장 실버인력뱅크에서의 경험은 단 몇 자로는 풀어낼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더 이상 나의 자리가 아님을 깨닫고는 과감히 퇴사를 결정했다.
꽤 오랜 시간 근무했고, 그만큼 지역 내 다른 복지기관과, 시청의 담당 부서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던 터라 퇴사를 결심하고도 오래 고민하고, 결정하고 나서도 꽤 길게 아쉬운 작별의 인사를 했었다.
그렇게 퇴사하고 난 한동안 허탈감에 허우적거렸다.
열심히 일했던 만큼, 단시간에 빨리 소진되었고, 막상 일을 그만두고 나니 뭘 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해외로 장기 여행을 떠나기도 했고, 베이킹을 배우며 새로운 취미를 만들어보기도 했지만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역시 나는 성취지향형 인간이었던 걸까.
결국은 나를 위한 생산적인 일이 필요했다. 지난 5년간의 경험을 살려 다시 나를 필요로 하는 기관에서 일하고 싶었다.
이전 기관이 '노인'이라는 인구학적 특성과 '자원봉사'라는 사업 분야의 결합이었다면, 이제는 좀 더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는 곳으로 이직을 해 보고 싶었다.
이왕이면 새로운 곳, 새로운 지역, 새로운 사람들과 함께.
또다시 목적지를 찾기 위한 여장이 시작되었다. 이전 취업 준비와 달라진 건 경력직 중간관리자로 입사지원을 해야 하는 터라 내가 얼마나 준비가 되었는지 더 증명해야 했고, 지난 5년의 시간이 헛되지 않았음을 문서로 확인할 수 있어야 했다는 것이다.
언제나 느끼는 사실이지만 나를 증명한다는 것은 어렵고 힘든 일이다.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 나를 어필한다는 것은 너무 어려웠고, 첫 취업 준비때와 마찬가지로 꽤 많이 불합격 통보를 받았다.
그러던 중 받은 한 통의 문자.
새로 개관하는 복지관이 있는데 이곳에 한번 지원해 보라는 시청 담당자의 문자였다.
또다시 불합격의 화살을 맞고 있는 내게 너무나 감동적인 문자.
합격 여부를 떠나 아직 나를 이렇게 인정해 주고 생각해 주는 사람이 있다니... 목마른 자존감에 생명수를 조금 얻은 기분이었고 지난 5년이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에 뿌듯했다.
(그곳에 지원했지만 불합격했으니, 절대 청탁이나 취업비리는 아니다.)
불합격의 고배를 몇 차례 마시면서 다시 전략을 세웠다.
신규 개관 복지관으로 가야겠다.
아무래도 경력직으로 이직하기엔 텃세 없는 신규 복지관이 낫지.
그중에서도 기존 경력을 살릴 수 있는 노인복지관으로 가야겠다.
복지관 사업팀 정도면 내 경력도 살릴 수 있고, 종합복지관 입사라는 애초의 목표를 달성할 수도 있었다.
그렇게 찾아낸 기관은 바로 개관 준비 중인 노인 종합복지관.
어떻게 딱 그 시기에 맞게 개관 복지관이 있었는지 지금 생각해도 너무나 신기하다.
지난 5년간의 직장생활에 대한 간략한 포트폴리오를 이력서와 함께 제출했고, 서류전형 합격 통보를 받았다. 법인사무실에서 면접을 보고 드디어 최종합격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퇴사한 지 3개월 만의 일이었다.
나중에야 알게 되었지만 보통 개관 복지관은 근무할 직원이 내정되어 있다고 했다. 법인 산하 다른 기관에서 근무하던 직원 중 일 잘하는 직원들을 모아 모아 새 팀을 꾸리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아무래도 새로 개관한 복지관은 시설부터, 사업, 회계까지 전반적인 기초 공사를 다시 다지는 일이 보통이 아니기도 하고, 말 그대로 빡센 일정이기 때문에 검증된 직원을 먼저 배치한다고 했다.
내가 그 내정자는 아니었지만 지원했던 복지관 역시 내정자가 있었다고 했다. (실은 나를 뺀 모두가 내정자였다.)
최종합격자 명단을 발표하기 전, 법인 대표님은 '똑 부러지는 직원 하나는 외부인력이어도 괜찮다'며 내정 직원은 다음 채용을 기약하자고 하셨단다. 그날 전체 직원
채용 면접 대상자 중 면접 점수 최고득점자가 바로 나였다.
끝까지 아슬아슬하게 내정자까지 제치고 최종 합격의 문턱을 넘어, 첫 출근했던 그날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아직 준공 허가가 떨어지지도 않은 채 말 그대로 건물만 서 있던 복지관.
사무실에 들어갔더니 앉을 의자도, 마실 물도, 컵도, 아무것도 없었다.
누군가는 책상을 구입해야 사무실에 책상이 있고, 숟가락과 젓가락을 사야 급식실에 수저세트가 생긴다.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복지관이라 하면 당연히 있던 것들이 없으니 황당하기도 했다. 회원 한 명 없이 인부들만 왔다 갔다 하는 노인복지관이라니.
이 빈 공간을 채워나가는 게 내가 할 일이다. 사무실부터, 프로그램실까지.
물건뿐만 아니라 사람들도.
관장님 이하 부장 1명과 나 포함 사업팀원 2명, 행정직원 3명, 영양사와 시설관리인 각 1명으로 10명이 채 안 되는 개관멤버가 완성되었다.
기관 규모 대비 적은 인원이었지만 2차, 3차 채용이 예정되어 있었으므로 크게 문제 될 것 없다 생각했다.
무엇보다 개관복지관 아닌가.
내가 첫 번째로 목표했던 노인복지관, 두 번째로 목표했던 새로 시작하는 개관기관.
이렇게 내가 말하는 대로, 원하는 대로, 꿈꾸는 대로 이루어지다니!
이곳이 나의 사회복지사 인생의 종착지구나!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사실, 어느 직종이나 텃세 없는 곳이 없고,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보이지 않는 암투와 권력, 세력 싸움이 존재한다. 복지관도 예외는 아닌데 '개관멤버'라는 타이틀은 그 모든 암투와 세력싸움에서 한 발 뺄 수 있는, 말하자면 태풍의 눈처럼 고요한 중심을 차지할 수 있는 VIP티켓 같은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예전에는 개관멤버를 신라 골품제도의 최상 신분인 '성골', 개관 멤버들이 회의라도 하면 고구려 귀족회의인 '재가회의'에 빗대어 말하곤 했다.
그만큼 개관멤버들은 개관 초기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내는 어려움을 극복해야 했고, 말 그대로 개고생을 감수하고 모인 멤버들이라 나중에 어느 정도 기관이 자리를 잡으면 그 정도의 대우 아닌 '대우'를 받는 것이 보통이었다. 나 역시 내가 일군 이 복지관에서 좋은 사람들과 함께 오랫동안 일할 수 있다면 개관의 어려움은 거뜬히 이겨낼 것이라 생각했다.
말 그대로 뼈를 묻을 생각으로 열정페이 기본 장착 후 그렇게 첫 출근을 시작했다.
이때만 해도 새벽별을 보면서 퇴근한다는 말을 실제 실천한다는 게 상상이 안되던 시절이었지만, 출근 한 달이 채 안된 시점부터 나에게 저녁은커녕 '밤'도 보장되지 않는 날이 대부분이었다.
언제까지 이렇게 일해야 할까? 라는 생각을 할 틈도 없이 바쁜 하루하루가 기다리고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와~ 개관 준비는 처음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