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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찬민들레 Oct 28. 2024

사명감에 대하여

주어진 임무를 잘 수행하려는 마음가짐.


개관 준비 중인 신규 복지관으로 자리를 옮긴 후, 내 인생은 많은 부분 달라졌다. 

긍정적으로 그리고 부정적으로도.

복지관 규모에 비해 개관멤버 인원이 적었고, 특히나 복지관의 주요 부서인 사업팀 팀원이 고작 부장님 1명, 직원 2명으로 총 3명이 전부였다.

같은 해 2차, 3차 직원 채용이 예정되어 있었다지만 땅을 다지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는 개관멤버로는 턱없이 부족한 인원인건 사실이다.

그래도 여건이 안된다면 노력으로 해 내야지!라는 마음으로 모두들 한마음 한뜻으로 힘을 합쳤다.

검증된 직원들이었던 것만큼, 누구 하나 뒤처지거나 모자람 없이 제 몫을 해 내는 사람들이었다. 


그중 나와 함께 입사한 직원 A.

같은 법인 산하 종합사회복지관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는 직원이었다. 사회복지 경력도, 나이도 나와 비슷했지만 무엇보다 배울 점이 너무너무너무 너무나 많았던 직원이 있었다. (이런 직원을 만난 것도 행운이었다.)

비록, 첫 만남 첫인상은 어려웠지만 :)     

직원 채용이 모두 끝난 후 처음 복지관에서 직원들이 모두 모인 날.

관장님부터 부장님 이하 모두들 처음 보는 날이니 긴장했을 시간이었다. 사무실 물품이 모두 준비되지 않은 상태였고, 의자도 책상도 모자랐다. 회의 테이블에 촘촘히 모여 앉았지만 의자가 부족했다. 나는 뒤쪽에 있던 간이의자를 가져와 내 옆에 있던 A에게 말했다.     


‘선생님, 여기 앉으시면 될 것 같아요’

그랬더니 그녀는 말했다. 단.호.하.게.

‘아뇨, 전 괜찮아요.’     



처음 만나서 아직 통성명도 하기 전에 베푼 호의는 ‘괜찮아요.’ 한마디로 싹둑 잘려버렸다. 

무안했다.

직원은 우리 둘 뿐인데 잘 지낼 수 있을까? 걱정되었고, 살짝 마음이 상한 것도 사실이었다.

서먹한 분위기 사이에 돌아가며 자기소개를 했고, 나도 최선을 다해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앞으로 잘 지내보자며 열심히 해 보겠노라 포부를 밝혔다. 내 뒤를 이어 A도 자리에서 일어나 소개했다. 

‘안녕하세요. A입니다.’     

아니, 저렇게 세상 시크하다고?

내 걱정은 점점 커져서 가슴이 두근두근 떨리는 눈빛을 감추기 힘들 정도였다.     


하지만 이런 시크한 첫인상과는 다르게 그녀는 나보다 더 온화하고 대상자들과 잘 소통하고 업무진행은 명확한 진짜 배울 점 많은 사회복지사였고 나보다 어렸지만 무슨 일이든 의논하고 조언을 구할 수 있을 만큼 능력 있는 직원이었다.     

나는 평생교육프로그램과 일자리사업을, A는 사례관리와 주민조직 업무를 담당했다.

당시, 복지관의 모든 인력이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각자의 업무분장이 나뉘어 있긴 했지만 

다 같이 본인의 업무처럼 일하지 않으면 업무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근무시간에는 각자의 업무를 했지만 밤에는 맡은 사업에서 풀리지 않는 숙제와 고민들을 안고 한자리에 모였다.     

A가 담당하는 사례관리 대상자 중 한 어르신이 있었다.

당시 복지관은 인구는 적고 땅덩이는 넓은 지역에 세워져 

사례관리 대상자 한 가구 한 가구 상담까지 마치고 귀가하려면 반나절은 기본으로 걸렸다. 

논과 논 사이, 띄엄띄엄 세워진 가건물에 사시는 어르신이 계셨는데, 그의 안부나 생사를 확인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복지관이 생기기 전에는 다른 권역의 복지관에서 간헐적으로 안부를 확인하기는 했었지만 깊이 있게 관리하기에는 물리적 거리도 여력도 없어 거의 방치되다시피 한 가구였다.


그 대상자는 미혼으로 가족도 아무도 없는 상태였고, 인지능력 저하로 제대로 된 일자리를 한 번도 가져본 적 없었다. 몸을 씻거나 식사를 챙기는 기본적인 행위도 잘 이루어지지 않는 상태였고, 이로 인하여 본인의 건강문제뿐만 아니라 지역주민의 걱정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전문적인 개입을 하고자 했지만 당사자의 거부로 이마저도 쉽지 않았고, 이 대상자를 어떻게 관리하고 위기상황을 어떻게 해소할지 사례회의가 시작되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아무리 좋은 서비스와 자원이 있어도 ‘본인이 거부’한다면 해 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전문가의 개입도 본인의 ‘개인정보제공동의’에서부터 출발하고, 후원품이라도 전달하려면 이 역시 본인의 동의가 있어야 했는데 당시 케이스는 아무것도 싫다는 제일 어려운 사례 중 하나였다.   

  

‘본인이 싫다는데 어쩔 거야?’     


나는 단순히 안부확인을 위한 우유배달, 기본적인 거주환경 마련을 위한 주거지 개보수, 영양섭취를 위한 도시락 배달 등을 연계하고 이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라고 결론지었다.


하지만 A의 생각은 달랐다. 

내가 하고자 했던 그 모든 것들은 ‘자원연계’에 지나지 않았고, 그 대상자에게 진짜 필요한 것은 스스로 일어날 수 있는 동기부여였던 것이다. 

‘아무것도 싫다’에서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도록 하는 것.

삶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을 바꾸고 행동하게 하는 것부터 개입해야 한다는 그녀의 말은 조심스러웠지만 단호했다.

쉬운 길을 택하고 본인이 싫다는데 ‘어쩔 수 없어’라고 두 눈을 감아버린 내게, 어렵지만 정석의 사회복지의 길을 스스로 선택한 그녀의 행보는 당연하지만 신선한 충격이었다.


특별한 방법은 없었지만 꾸준한 ‘관계 맺기’로 결국 대상자는 그 누구와도 하지 않았던 속마음을 털어놓기 시작했고, 몇 차례의 좌절이 있었지만 A의 조언대로 도움을 받아들이고 스스로 살아가기로 마음먹었다.

대상자의 계속되는 거부에도 포기하지 않고 설득하고, 상담하는 과정에서 지역 내 다양한 기관의 전문가들이 연계되었고, 복지대상자에게 주어지는 제한적 일자리에도 참여하게 되면서 소득활동 참여까지 가능하게 되었다.     


진정한 자립을 이루어낸 셈이다.


이 외에도 내가 사회복지사이자 직장 동료로서의 존경스럽다 생각하게 만드는 일들이 순간순간 자주 있었고 그녀를 보며 많이 배우는 반면 나를 돌아보는 반성의 시간도 많아졌다.

나름 현장 경험이 있다고 생각했고, 다른 분야도 아니고 노인복지 경력이 그녀보다 많았는데 내가 생각하지 못한 부분까지 세심하게 살피는 그녀를 보며, 역시 시간이 문제가 아니라 그 시간을 얼마나 밀도 있게 고민하고 치열하게 보내느냐가 보낸 시간을 의미 있게 만들어 주는구나.. 생각했다. (유독 그때의 직원들이 더욱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그녀뿐만 아니라 우리 복지관에 모인 직원들 모두가 그랬다.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경험을 가지고 그 시간들에 대한 자부심을 가진 직원들이었고, 모두가 스스로의 기준이 또렷하고 사명감 충만한 직원들이었다. 


복지관에 근무하려면 이 정도 사명감은 있어야지.

할 수 있는 일만 하면 어떡해?

할 수 없는 일도 어떻게 하면 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게 우리 일이지.     


마음으로 일하는 진정한 사회복지사였던 그들을, 잰걸음으로 따라가기 바쁜 내 모습이 너무 초라해 보이는 순간도 있었다.

나도 사회복지사로서의 자부심이 있었고, 노력파 중의 노력파였는데 그들 틈에서 더 작아지는 나를 발견한 순간 회의시간이 버거울 때도 있었다. 그들의 열정과 노력을 내가 따라가지 못한다는 자괴감과 마치 회색분자가 된 것 같은 당혹스러움. 

그들 속에서 나도 마음으로 일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스스로 주는 압박감에 괴로울 때도 있었지만 그런 괴로움이 결국 나를 한걸음 더 성장시켰다.     


창작은 모방에서부터 시작된다는 말처럼,

그들처럼 되어야지, 그들처럼 생각해야지, 그들에게 배워야지 했던 사회복지사로서의 자세와 

분명하기 어렵고 힘든 일이지만 해야만 하는 일은 지나치지 않는 뚝심을 그곳에서 배웠고 그 시간들을 지금까지 야금야금 써먹으며 사회복지사로 살아가고 있다.

거창하게 사명감이니 미션과 비전까지 갈 것도 없이 그냥 내 자리에서 내가 맡은 업무와 나의 대상자들의 일상을 간과하지 않고, 나의 역할을 온전히 수행해 내는 것만으로도 책임감 있는 사회복지사, 사명감 충만한 복지관 직원이었다.     


본인에게 맡겨진 업무를 100% 온전히 수행하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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