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괴롭히는 여유 없는 마음.
찬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하고 옷차림이 두툼해질 때마다 생각나는 털실내화가 있다.
예전 시골에서 신던 털 고무신처럼, 신발 안에 복슬복슬 털이 가득한 보온 실내화.
아이들이 신으면 너무나 귀엽고, 어르신들이 신으면 정감 있는 바로 그 털실내화.
개관 준비를 하면서 오히려 개관 후보다 더 바쁘고 정신없는 시간을 보냈다.
정식으로 운영하기 전에 모든 사업의 체계뿐만 아니라 그동안 당연히 있었고, 있어야 하는 물품들까지 준비하고 챙겨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당연한 것들은 있을 때는 존재감이 없지만 없는 것을 깨닫는 순간 그 불편은 어마무시하게 다가온다.
마치, 엄마와 함께 살 때 냉장고에 당연히 있던 김치가, 자취를 시작하고부터 사라진 것처럼.
내가 다니던 복지관은 1층은 사무실과 상담실, 물리치료실, 주간보호센터가 있었고 2층은 전체가 프로그램실로 구성되어 있었다. 다양한 평생교육프로그램을 진행하기 위한 강당, 강의실, 컴퓨터실, 체육실 등이 있었는데 아직 준공도 떨어지지 않은 상태의 '건물' 그 자체였던 복지관을 '이용'할 수 있는 기관으로 만드는 것이 우리의 몫이었다.
어떤 프로그램을 어느 강의실로 배정할지, 용도에 맞게 강의실을 배정하고 책상과 의자부터 하다못해 화이트보드에 쓸 보드마카까지 모두 준비해 놓는 것부터가 개관준비의 시작이었다.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 방법과 과정을 고민하는 것은 그동안의 경험과 나름의 노하우로 밑그림이 그려졌는데 개관준비는 처음이라, 설마 이것까지 해야 하나? 하는 그 ’설마‘까지 고민해야 했기에 내겐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었다.
문제는 그 ’설마‘에 대한 고민 자체가 문제가 일어나기 전까진 생각조차 들지 않을 만큼 사소한 것이라는 점이다.
복지관 개관을 코앞에 둔 어느 가을날이었다.
각 복지관마다 주력 사업이 있는데 (온전히 나의 주관적인 의견이지만) 종합사회복지관에서는 '사례관리사업'이, 장애인복지관에서는 '치료프로그램과 취업지원프로그램‘이 그리고 노인복지관에서는 '평생교육프로그램'이 주력사업이다.
그리고 개관 전 반드시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는 것 또한 평생교육프로그램이다.
사례관리나, 지역사회 봉사단 운영은 기관을 운영하면서 대상자를 발굴하고 관리하면 되는 것이지만, 교육 프로그램은 프로그램 자체가 운영되어야 회원이 참여가능하기 때문에 복지관 회원 모집과 동시에 프로그램이 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이는, 개관 전 모든 프로그램 세팅이 완벽히 이루어져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복지관 개관 일주일 전.
모든 준비를 마치고 이제 어르신들만 오시면 된다며 마지막 점검을 할 때였다.
제일 큰 강당에서는 주로 여가나 건강 관련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는데 라인댄스, 노래교실이 대표적이었다.
문제는 강당 출입 시 외부에서 신던 신발은 벗어야만 한다는 것.
직원들은 주로 사무실 실내화를 신고 생활했기 때문에 대강당 출입 시 신발을 벗는 하나의 '절차'가 없어서 외부에서 신었던 신발을 신고 오시는 어르신들을 위한 실내화를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실내화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건 개관 직전.
요즘 같으면 주문 당일에 수령까지 할 수 있지만 그때만 해도 적어도 2~3일은 걸리는 시대였는데 다른 일들이 너무 바빠 기억 저 편으로 실내화 주문을 미뤄두었다가 결국 개관 3일 전 부랴부랴 실내화 주문을 넣었다.
하지만 옵션이 하나 붙었다.
앞으로 날씨가 추워지기 때문에 일반 실내화보다는 털실내화를 준비해 놓아야 하는 긴급한 상황.
또 급하게 보송보송 털이 가득한 실내화를 찾아 주문을 넣기 직전.
또 하나의 옵션이 붙었다.
기관 내에서 사용하는 실내화이기 때문에 분실 방지를 위해 기관명을 새겨야 한다는 것.
기관 로고와 이름을 인쇄하는데 뭐 그리 오래 걸릴까 싶지만, 시간제한이 생긴다면 매우 어려운 일이다.
더구나 적지 않은 수량으로 빠르게 기관명을 새겨놓고 배송까지 원하는 날짜에 받는 건 거의 불가능했다.
개관준비로 주 7일 근무에 매일 밤을 새우던 그때, 안 그래도 안절부절 전전긍긍하는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이 돌발상황은 나의 조급증에 불을 붙였고, 털 실내화 하나가 뭐라고 온 신경이 날카로워지기 시작했다.
그즈음 늘 그랬듯 열두 시가 넘어 새벽 2시가 되어가는 시간. 너무 늦은 시간이라 아무리 업체를 찾아도 배송일정을 조율할 수 없고, 실내화에 대한 문의를 할 수도 없는 시간이 되어서야 퇴근길에 올랐다.
'아 몰라. 지금 내가 사무실에 남아있어도 해결할 수 없어 그냥 집에나 가야지.'
하지만 집에 도착해서도 내내 내 머릿속에는 온통 털실내화 생각.
누워서 휴대폰으로 검색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털실내화는 결국 찾을 수 없었다.
그냥 이 상황이, 세세하고 꼼꼼하게 챙기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완벽하게 준비했다 생각했던 오만함이 나를 짓누르고 괴롭혔다. 결국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며 겨우 잠자리에 들었지만 제대로 잠들 수 없어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퇴근한 지 4시간이 지난 새벽 6시쯤, 다시 출근길에 올랐다.
캄캄한 복지관 불을 켜고 사무실에 앉자마자 또다시 털실내화 지옥에 빠져버렸다.
겨우겨우 시내를 뒤져 찾아낸 실내화 업체에서 털이 보송보송하고 세탁해도 지워지지 않는 로고를 새길 수 있는 곳에서 날짜에 맞게 받을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눈물이 아니라 웃음이 날 뿐이다.
진짜, 정말로, 털실내화가 뭐라고.
그렇게 몇 날 며칠을 밤을 새우고 퇴근하고서도 잠 못 들고 눈물로 밤을 지새우며 전전긍긍했는지.
설사 프로그램 시작 날짜에 맞춰 오지 못하더라도 10월이면 발이 꽁꽁 얼 정도의 추위는 아니었기에 조금 더 여유를 가지고 찾아봐도 될 일이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조급하고 세상이 무너지는 것처럼 가슴이 두근거렸을까.
내가 그만큼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건 아닐까.
그즈음의 나의 일기장을 다시 펼쳐보면 하루하루가 너무 숨 가쁘다.
(사실 일기를 쓸 겨를도 없어 업무다이어리로 겨우 추억할 뿐이다.)
분단위로 일정이 정해져 있고, 그날 그날 해야 할 일들이 날짜별로 빼곡하다.
그때의 내가 느꼈던 털실내화의 무게는 단순히 털실내화가 아니라 그동안 내가 감당해야 했던 자리와 역할에 대한 부담감이었다.
나만 그렇게 정신없이 힘들고 바쁘게 움직이는 게 아니라 당시의 모든 동료들이 함께 고생했기 때문에 정신 바짝 차리고 기관에 누가 되면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정말 이를 악물고 버텼던 하루하루.
문제는 그렇게 바쁘고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고 나면 다음날 또다시 그만큼 처리해야 할 일과 준비해야 할 일이 쌓이기 때문에 동료는 물론이고 나를 돌아볼 정신조차 없었던 시기였다.
스스로에게 여유가 없다 보니 다른 이를 돌아볼 겨를은 당연히 없었고, 더 나아가 대상자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버겁고 그들에게도 날카로워져 있었다.
사실 나를 다스리는 기술도 업무능력만큼 그때의 내게 꼭 필요한 자질이었는데 그 부분까지 준비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10년이 넘게 지난 지금, 그때의 내가 이해되지 않는 사건이 많고 좋았던 만큼 지독히 힘들었던 시간으로 기억된다.
한걸음 더 떨어져 생각하고, 물러나 돌아보면 그렇게 전전긍긍하지 않아도 되고, 날카롭지 않아도 되는데...
여유 없고 날카로운, 신경질적인 것은 그만큼 모자라다는 것을 반증하는 행위임을 그때는 왜 몰랐을까.
그때로 돌아간다면 매사 날카롭고 예민했던 내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맡은 사업에는 철저하되, 여유로운 마음을 잃지 않도록 노력할 것.
코 앞의 과업에만 열중하다가 놓친 더 소중한 무언가를 되돌아볼 것.
두 눈을 가리는 좁은 시야는 결국 나의 성장을 방해한다는 것.
물론, 그때로 되돌아갈 수 없고, 간다고 해도 여전히 조급하고 정신없고 예민할 것이다.
하지만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선택하고 포기해야 할 것과 지켜내야 하는 것을 구분할 수 있다면 좀 더 신나게 일하고 여유롭게 그 시절을 보낼 수 있지 않았을까.
지금도 한걸음 떨어져서 고민하고 생각하고자 노력하지만 여전히 어려운 일이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