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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찬민들레 Oct 30. 2024

커피믹스를 쓸어가는 노인에 대한 고찰.

그 많던 커피믹스는 누가 가져갔을까?


‘노인’이라는 단어는 많은 의미와 이미지를 내포하고 있다.

아쉬운 것은 긍정적인 이미지보다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훨씬 많다는 점이다.

사회복지사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힘든 일 하시네요~ 좋은 일이죠. 심지어는 천국 가시겠어요(?)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그중에서 노인복지관에서 근무한다고 하면 ‘아이고’ 탄식이 먼저 나오기도 한다.

‘노인’이라는 단어가 주는 부정적인 이미지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노인복지관뿐만 아니라 복지현장에서 근무하다 보면 많은 대상자를 만나게 되는데 대부분의 대상자들은 본인이 이미 ‘약자’ 임을 인식하고 있다.

문제는 진짜 ‘약자’가 아님에도 스스로를 그렇게 정의해 버린다는 것에 있다.

실제로 내가 근무했던 노인복지관에 오시는 분들은 진짜 생활이 어렵고 주변의 도움 없이는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 자체가 힘든 대상자도 있었지만 방법을 알려주고 길잡이의 역할을 해 주면 얼마든지 무엇이든 스스로 해결해 나갈 수 있는 역량 있는 대상자도 충분히 있었다.     

스스로가 약자라고 생각할 때 그는 진짜 약자가 된다.

그들이 스스로를 약자라고 생각하게끔 만든 것이 무엇일까?    


1.

실버인력뱅크에서 근무할 때의 일이다.

당시 노인자원봉사업무를 담당하면서 정기적으로 각 봉사단별 간담회를 진행했었는데, 간담회마다 간단한 다과와 커피를 준비해서 필요한 만큼 자유롭게 드시도록 입구에 비치해 놓았다.

간담회 시작 전 커피를 드시면서 단원들과 담소를 나누시고 부드러운 분위기 속에서 간담회를 진행해 나가기 위한 일종의 장치라고나 할까.

커피믹스와 다과를 정갈하게 세팅해 놓고 어르신들이 오시길 기다렸다가 자리에 착석하시도록 안내하다 보면 분명 자리가 다 차지 않았음에도 다과쟁반은 텅텅 비어있다.


어떻게 된 일이지?

다음번에는 조금 더 넉넉히 준비해야겠다.


그다음 간담회에도 역시 더 넉넉하게 커피믹스를 준비했다.

미리 오신 어르신 몇 분과 인사를 나누고 다시 회의실 밖으로 나와보니 또 텅텅 비어버린 쟁반?

부족할 것 없는 인자한 표정과 기품 있는 분위기를 풍기는 어르신들의 가방에는 무엇이 들어있을까 궁금했다. 설마 저 가방이 커피믹스로 가득 차 있는 걸까?     

또 그다음 간담회가 돌아왔을 때 고민되기 시작했다. 지금 쿠팡에서 커피믹스 160p 1박스가 21,360원이니 1봉 가격은 133원.

500원도 하지 않는 커피믹스 한 봉을 치사하게 1인 1봉으로 제한을 둘 것인가. 각 자리에 1봉씩 둘 것인가. 자원봉사 하시는 분들인데 너무 야박하게 대접하는 건 아닌가.

많은 생각이 들어 ‘다음 분들을 위해 드실 만큼만 가져가세요’ 안내문을 부착했지만 단원이 모두 오시기도 전에 쟁반이 텅텅 비는 사태를 막지는 못했다.

비교적 경제적으로 여유롭고 전문직종에 종사하시다 퇴직하신 분들이 대부분인 봉사단이었지만 굳이 커피믹스를 한주먹씩 챙기고 체면을 두고 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2.

비슷한 일은 노인복지관에서 근무하면서 또 있었다.

보통 노인복지관은 어르신들의 교통 편의를 위해 복지관 셔틀버스를 운행한다. 새로 개관하는 복지관이었고, 당시 기관의 위치가 좋은 편이 아닌 데다가 관할 구역이 넓어 셔틀버스는 거의 필수였다.


문제는 셔틀버스의 노선을 정하는 일.

셔틀버스는 개인 자가용이 아니었기 때문에 교통이 불편한 지역 우선, 인구 밀집지역 우선으로 노선이 정해졌는데 1번 노선으로 운행하려 하면 2번 노선이 가까운 어르신들이 반발했고, 절충안을 제시하면 또 3번 지역의 어르신들이 반발하는 통에 모두의 협의를 이끌어 내는 게 쉽지 않았다. (물론 노선을 결정하는 건 이용자 의견이 아니라 관내 교통 관련 부서와의 협의로 이루어진다.)


그러던 중 버럭 소리 지르던 한 어르신

‘우리 같은 노인들이 복지관에 오려면 얼마나 힘든 줄 알아? 버스가 모시러 와야 할 거 아냐?’

그 어르신은 자가용으로 어디나 쌩쌩 잘 다니는 어르신이었다.

결국 셔틀버스 운행은 이해관계가 얽히고설켜 개관 후에도 당분간 운행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셔틀버스가 없어 어르신들이 복지관에 못 오셨을까?

아니었다. 모두가 자동차로, 버스로, 찾아오시며 복지관은 금세 북적였다.

대부분의 노인복지관이 셔틀버스가 있긴 하지만 요즘처럼 젊은 노인, 이름만 노인인 인구가 증가하는데 굳이 셔틀버스가 있어야 할까?





노인에 대한 정의가 다시 내려져야 한다는 의견이 곳곳에서 나오는 만큼, 노인에 대한 이미지 쇄신도 필요한 시점이다.

과거에는 만 65세 이상의 인구를 ‘노인’이라는 인구학적 범주에 포함했고, 노인이라면 신체적으로 쇠약해지고 사회활동 역시 제약이 많아 흔히들 ‘도움이 필요한 계층’, 젊은 계층으로부터 ‘봉양’ 받아야 하는 대상이라는 인식이 대다수였다.


과거엔 정말 그랬지만, 과연 지금도 그럴까?


만 65세 이상의 어르신들을 모아놓으면 할머니 할아버지보다 주변의 아주머니, 아저씨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릴 만큼 외모도, 건강도, 생각도 아직 젊은 분들이 많다.

식상하지만 100세 시대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100세 시대에 고작 65세밖에 되지 않았는데 이들을 과거 평균수명 70세 시대의 ‘노인’의 틀에 가두고, 스스로를 ‘노인’이라 생각하게 만드는 것은 우리 사회가 아닐까?

아직까지는 ‘만 65세 이상’ 인구를 ‘노인’의 범주에 포함하지만 더 이상 단순히 나이가 많다고 노인이 아니다.     

노인을 약자로 만들어 버리는 시선,

그들을 도움이 필요한 자로만 대우하는 우리,

그들에게 커피믹스를 쓸어가는 ‘권리’를 주고,

스스로 할 수 있음에도 못한다 생각하게 만드는 ‘사회적 분위기

65세가 되는 순간 유능함을 무능함으로 치환시켜 버리는 ‘섣부른 정의

이런 것들이 모여 노인을 진짜 ‘무력하고 봉양받아야 하는 뒷방의 노친네로 만드는 것 아닐까.

그로 인한 사회적 낭비의 대가는 결국 우리가 비용으로 지불해야 하는 것이다.     

 

몇 해 전부터 '사회적 약자'라는 말이 사회복지 분야에서 좋은 말, 고급스러운 말로 포장되어 퍼지던 시기가 있었다.

누가 누구를 약자로 정의할 것인가.

우리가 말하는 ’ 약자‘들은 본인들이 약자로 지칭되고 있음을 알고 있을까?

지하철 안에 붙은 ’ 약자와의 동행‘이라는 슬로건을 보고 이토록 시혜적이고 일방적인 슬로건이 또 있을까? 생각했다.


사회가 함부로 약자를 만들어내는 분위기에 휩쓸려 또 다른 누군가를 우리가 정한 약자라는 틀에 가두어 그들의 팔다리를 묶고 날개를 꺾는 일이 더 이상 없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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