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나랑 놀 거야? 쟤랑 놀 거야?
생애 첫 사회생활이라 할 수 있는 학교생활부터, 우리는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지내는 방법을 배운다.
학교보다 더 일찍 어린이집부터가 시작일까.
학교에서는 '나' 이외의 '타인'의 존재에 대해 배우고 모두가 같지 않고 다름을 인정해야 한다고 교육을 받는다.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서 어울려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이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누누이 보고, 듣고, 배운 내용이지만 다름을 인정하는 건 왜 이리 어려울까
피를 나눈 가족들도 나와 생각, 성향이 다른데 하물며 그동안 살아온 환경까지 다른 타인과는 더더욱 다를 수밖에 없다.
사실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긴 하지만, 그 시절에는 내가 선택적으로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었다.
조금 이야기를 나누어보고 뭔가 다르다 싶거나 나와 맞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과는 자연스럽게 멀어졌고, 굳이 '노력'하면서까지 관계를 이어갈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관계가 1차원적인 생계를 위해 맺어진 것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불편한 관계라고 해서 피할 수 없고, 꼴 보기 싫다고 안 볼 수 없는, 꾸역꾸역 매일을 마주해야 하는 관계.
이보다 더 불편하고 어려운 관계가 또 있을까 싶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보다 더 자주 이런 불편을 느끼며 하루하루 살아간다.
개인사업자가 아닌, 회사원으로서 지금까지 평생을 살아온 나는 직장을 옮길 때마다 이런 관계의 어려움을 뼈저리게 느꼈다.
20년 가까이 직장생활을 해 본 지금이야 그냥 그런가 보다, 나와는 다른가보다 하고 넘길 여유가 생겼지만 초년생시절부터 어찌나 힘들었는지, 유형도 성격도 다양한 이들로부터 다양한 다름을 몸소 체험하며 이제야 그 다름을 인정할 수 있는 여유를 얻었다.
나와는 다른 그들의 이야기.
다시 떠올리자니 웃음부터 나지만 그때는 정말 힘든 시간을 보냈다.
첫 직장이었던 실버인력뱅크에서도 나를 향한 이유 없는 시기 질투와 우리 거 너희꺼를 따지는 편 가르기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노인복지관에 입사했는데, 그렇게 나를 괴롭히던 편 가르기가 이곳에도 있었다. 첫 직장때와 달랐던 점은 다른 팀을 향한 편 가르기가 아니라, 그들의 편 가르기에 동조하지 않는 나에 대한 팀 내의 원망이 부메랑처럼 되돌아왔다는 것이다.
개관멤버로 구성된 복지사업팀은 과장 1명, 나를 포함한 사회복지사 2명, 총 3명이 전부였다. 적은 인원인만큼 우리끼리 똘똘 뭉쳐서 일을 해야 했고, 해내야만 하는 열악한 상황.
같은 복지관에서 근무하지만 그 안에서도 사업팀 vs 행정팀이 나뉠 수밖에 없었고, 하는 일도 맡은 일을 처리하는 방식도 다르기 때문에 원활한 기관 운영이라는 목적은 같지만 그 길로 가기 위한 방법은 다를 수밖에 없었다.
사업팀에서는 어르신들이 오셨을 때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동선으로 프로그램실을 구성하고, 사업운영을 위해 필요한 점을 고민하고 사업을 기획한다. 복지관의 운영 목적 자체가 복지사업이고, 사업운영의 주체가 사업팀이기 때문에 사업팀의 목소리가 많이 반영될 수밖에 없다.
행정팀에서는 기관운영에 필요한 설비, 직원관리, 비품 등을 관리하고 사업이 원활하기 운영될 수 있도록 지원한다. 하지만 사업운영보다 더 중요한 것은 기관운영이 적법한 절차대로, 위반설치물 없이 잘 운영되게 하는 것이다. 행정팀의 일은 적합한 방법과 방식으로 사업이 운영되도록 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충돌이 발생했다.
복지관 운영을 위한 프로그램실을 세팅할 때의 일이다. 한 시간에 한 번씩 프로그램이 바뀌는 강당에, 어르신들의 출입이 원활하도록 문발을 설치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방음기능까지 있었던 문이라 문이 무겁기도 했고 고정이 안되어 어르신들이 문에 밀려 넘어지기라도 한다면, 대리석 바닥에 넘어져 다치기라도 한다면, 정말 큰일이었다. 문발을 설치하고 입퇴장 하실 때마다 문을 고정시키고 프로그램 진행 시에는 닫아 둘 수 있도록 조치했다.
프로그램실마다 달린 문발을 보고 행정팀 시설담당 직원이 눈에 불을 켜고 달려왔다.
'이거 뭐예요? 강의실 문에 문발 설치하면 소방법에 걸려요~ 물어보고 하셔야지.. 이거 다 떼어내야 해요.'
맞는 말이다.
소방법 상 문발을 설치하게 되면 방화문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최대 300만 원의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당시 사업을 담당하는 내 입장에서는 그보다 앞서 안전사고가 우려되었고, 수시로 무거운 문을 열었다 닫았다 들락날락해야 하는 어르신들이 걱정이었다.
비슷한 일은 또 있었다.
이번에는 의자를 구입할 때의 일이다. 강당에서 사용할 의자를 구입했는데 네발 모두 바퀴 달린 의자가 복지관으로 도착했다.
'이거 어르신들 앉으시다가 의자가 뒤로 미끄러지면 엄청 위험할 것 같은데요~'
내가 말했더니 행정팀 구매 담당자가 대답했다.
'아~ 이거 수시로 접었다 폈다 정리해야 하는 거라, 정리하게 편하게 일부러 바퀴 달린 걸로 준비했어요.'
입장이 다르니 같은 고민에 대한 답이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이런 자잘한 일들이 수없이 반복되면서 사업팀 vs행정팀 간 알게 모르게 골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사업팀의 입장에서는
'아니, 행정팀 직원들은 왜 저렇게 융통성이 없어? 누가 불법인 거 모르냐고,,, 그래도 위험한 것보다 낫잖아? 어르신들이 다치기라도 하면 자기들이 책임질 거야?' 라며 불만을 표출했고,
행정팀의 입장에서는 '모든 일에는 절차와 적합한 방식이 있는데 왜 안되는 걸 자꾸 하겠다고 하는 거야? 진짜 말이 안 통하는 사람들이야'
이런 불만들이 점점 쌓이면서 급기야 각 팀의 과장님들이 머리를 맞대고 서로의 입장을 조율하고 각 팀원들을 다독여야만 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었는데 오히려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편 가르기가 시작되었다.
행정팀 과장님과 한바탕 이야기를 나눈 다음 우리 사업팀 과장님은 고작 둘 뿐인 직원들을 회의실로 불러놓고 말했다.
'저기 행정팀 과장이 나한테 뭐라고 한 줄 알아? 사업팀 직원들이랑 일하기 너무 힘들대. 기가 너무 세서 무섭다나? 자기들 생각은 어때? 내가 잘못한 거야?'
순간 나는 당황스러운 표정을 감출 수가 없었다.
아직도 그때 생각을 하면 얼굴이 화끈거린다.
사실 같은 팀원끼리, 동료들끼리 상사 흉도 보고, 다른 팀 흉을 보는 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나라님 없는 곳에서는 흉도 본다는 말처럼, 어느 정도의 하소연 섞인 흉보기는 팀원 간 결속을 강화시키기도 하고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하나의 방법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주체가 한 팀의 관리자라면 다르다. (적어도 내 생각엔)
더구나 그 팀을 책임지는 과장이라면 팀뿐만 아니라 복지관 전체 운영을 고민하는 중간관리자라면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다.
다른 과장이나 관장이 아닌, 본인보다 아랫사람인 팀원들에게 다른 과장 흉을 보면서 너 생각은 어때? 너는?이라고 돌아가면서 '의견청취'를 가장한 '동조'를 강요하는 건 정말 누가 봐도 초등학생들의 편 가르기와 전혀 다르지 않았다.
너, 나랑 놀 거야? 쟤랑 놀 거야?
직원이었던 나는 당시 우리 의견을 반영해 주지 않는 행정팀 직원들이 밉고 답답하기도 했지만 이런 식의 편 가르기에는 절대 끼고 싶지 않았다. 저게 과장이 할 말인가? 아무리 다른 팀이라 해도, 과장의 뒷담화를 팀원에게 하면, 팀원들은 과장을, 중간관리자를, 복지관 전체를 믿고 근무할 수 있을까?
아~ 저 사람이 저렇게 무능한 사람이었구나, 그런데 과장이네? 여기... 괜찮을까? 까지 생각이 가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다른 팀을 깎아내리는데 급급했던 그녀는 막상 본인의 이미지와 인성이 깎이는 것은 눈치채지 못했다.
업무적으로는 정말 꼼꼼하고 배울 점이 많았던 당시 과장님이었지만, 그의 업무능력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직원관리와 언행으로 관리자로서의 능력을 깎아내리기 일쑤였다.
결국 나는 그녀에게 동조하지 않았고 그때부터 그녀는 사사건건 '너는 행정팀 직원이야? 복지팀 직원이야?' 물으며 본인의 편을 들지 않는 나를 향한 불편한 심기를 숨기지 않았다.
지금이었다면 적당히 편도 들어드리고, 살짝 돌려 말하기도 하면서 융통성 있게 직장생활을 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때의 나는 그런 부서장의 모습을 용납할 수 없었다.
이런 식의 감정소모는 사회생활에서 정말 불필요하고 이득 없는 행동임을 서로가 잘 알지만 그녀의 내편 만들기는 고칠 수 없는 '습관'이었고, 나의 융통성 없는 성격도 양보할 수 없는 '고집'이었다.
어딜 가나 이런 사람들이 꼭 한 명은 있었다.
'또라이 보존의 법칙'이 진짜 있는 걸까?
들려오는 바람에 의하면, 그 과장님은 아직도 그렇게 살고 있고, 나 역시도 그런 상사를 여전히 받아들이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다른 이야기지만,,, 첫 직장에서 나를 괴롭혔던 실버인력뱅크의 그 여직원과, 이 복지관의 과장은 같은 학교 출신이었다. 그 학교 졸업생들의 특성은 아니었길 조심스럽게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