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옆자리에는 찡찡이가 산다.
직장인들은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업무분장‘의 중요성을.
남의 떡이 더 커보인다고 비슷한 업무강도로 일을 분배하지만 미묘하게 더 일을 많이 하는 사람이 있고, 적게 하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객관적인 판단없이 무조건 내가 너무 일이 많아, 다른 사람일은 다 내가 하고 있어. 라고 생각하는 직원들이 있다.
이는 일반 회사보다 공무원이 되고 나서 더 많이 느낀다.
아무래도 사업이 제한적이고 대민업무의 특성상 모든 주민센터, 구청에서 하는 일이 비슷하기 때문이 아닐까.
갓 임용된 신규 공무원이었을 때의 일이다.
당시 동기와 같은 동에 발령을 받고 같이 민원대 업무를 맡게 되었다. 세부 업무분장이 나눠져 있기는 했지만 주민센터에 내방하는 민원인들을 응대하는 업무였기 때문에 일을 구분하지 않고 대상자가 오는 대로 업무를 처리했다.
동기라고는 하지만 내가 나이도, 사회경험도 더 많았던 터라 아무래도 일처리가 빠르다 보니 어쩌다 점점 더 많은 일을 맡게 되었다. 하지만 복지관에서처럼 숨쉴 틈 없이 바쁠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에 크게 불만없이 일을 처리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혼자만 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그냥 느낌이야, 나도 사람인지라 일이 좀 많아지다보니 마음속에 불만이 조금 꿈틀댄 것 뿐. 우리 팀 모두가 같이 일을 하고 있을거야.'
이렇게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고 일에 몰두했다.
그러던 어느날, 점심시간에 다른 팀 직원이 말했다. 복지팀에 있다가 행정민원 팀으로 옮겨간 직원이었는데 일이 힘들지 않냐고 물었다.
'다 같이 하는 일인데 괜찮아요~' 라는 나의 말에 그녀는 본인이 그 업무를 해 봐서 안다며, '주사님이 너무 일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다른 직원에 비해서.. 힘들면 조정해달라고 말해 보셔도 될 것 같은데.. '
그 말을 듣고 그동안 내가 느꼈던 업무편중이 그냥 내가 가진 불만이 아니었구나 생각했다.
그러다 일이 터졌다.
내가 화장실 가느라 자리를 비운 사이, 민원창구에서 큰 소리가 난 것이다.
민원인은 직원 한명이 없다고 업무를 못보는게 말이 되냐며 얼마나 오랫동안 기다려야 하냐고화를 내는 중이었고, 겨우 화장실만 다녀온 내가 일단 민원인을 진정 시키고 일을 처리 했다.
몇차례 주민센터를 방문했던 적이 있어 낯익은 분이었는데 그동안은 매우 점잖게 일만 보고 가셨는데 그날따라 왜 그랬던 걸까?
어떻게 된 일인지 직원들에게 물었더니,
내가 잠깐 자리를 비운 그 10분 남짓한 시간동안 아무도 민원 응대를 하지 않았다고 했다.
직원이 잠깐 자리를 비웠으니 기다려 달라거나, 다른 사람이 대신 처리해 되는 일이었는데 다들 나몰라라 하고 있었던 것.
이때 정말 머리끝까지 화가 난 나는, 민원부서 업무에 니일 내일이 어디있냐며 진짜 이런식이라면 앞으로는 나도 내 일만 하겠다 선언했고 정말 그렇게 했다.
이후 대기줄이 아무리 길어도 각자의 업무분장대로 일을 처리했고 그러자 또다른 불만이 터져나왔다.
나와 동기였던 옆자리의 직원은 힘에 부친다며 '징징'거리기 시작했고 본인 일이 너무 많다고 투덜댔다.
그동안 하지 않았던 본인의 일을 다른 누군가가 해 왔음을 깨닫지는 못하고 자기 일만 많다고 투덜대는 모습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녀의 만행은 이후에도 계속됐다.
아무리 전화벨이 울려도 전화를 받지 않아 모두 바쁠땐 전화라도 좀 받아달라고 했더니
'어차피 내 업무 아니고 다시 담당자에게 전화를 연결해줘야 하는데, 내가 전화연결원도 아니고.. 전 안받을래요'라고 했다.
관내 여러 단체장을 모시고 워크샵을 가는 차 안에서도 간식과 물을 나눠 드리는 바쁜 직원들을 도와드려야겠다는 내게,
'같이 가 주는게 어딘데 그런거까지 해야해요? 안그래도 일 많은데'라고 불평했다.
그녀는 무슨 일을 맡아도 본인이 제일 힘들고 제일 바쁘고 제일 일을 많이 하는 직원이라며 투털대고 징징대며 나를 질리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어차피 해야할 일이고, 피할 수 없는 일이면 그냥 하면 서로가 좋을 텐데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
내가 안하면 또다른 직원이 해야하고 안그래도 바쁜 다른 직원이 전전긍긍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편한가? 오히려 반문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녀와 내가 몸담은 곳은 바로 공무원 조직.
불평하고 징징대는 찡찡이는 한량처럼 점점 일이 없어졌고, 그런 징징대는 소리가 너무 듣기 싫었던 나는 점점 더 일이 많아졌다.
내가 다른 부서로 발령난 후 새로 오신 그 주민센터의 동장님이 말씀하셨다.
'너는 9급인데 7급처럼 일을 했더라?'
혼자 일을 너무 많이 했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내 자리로 새롭게 발령받아온 다른 주무관은 나를 원망했다.
'주사님..... 그렇게 업무를 다 받으면 어떻해요.. 다음 사람은 어떻하라고...'
너 때문에 내가 이걸 다 떠맡게 됐다는 원망이다.
모두가 기피하는 업무를 내가 맡게 되었을 때 고마워하며 함께 해보자 했던 선임은 내게 말했다.
'여기서 니가 고생을 많이 하긴 했지... 그런데... 지금은 또 내 입장이 난처하네.. 업무를 어떻게 나눠야 할지...하아.....'
너 때문에 새로 온 직원들과의 업무분장이 곤란해졌다는 짜증이다.
이말을 듣고 깨달았다. 어느 곳에서나, 어느 부서에서나 여력이 된다면 나를 희생해서 궂은일을 맡는 것도 좋지만 적당한 정도가 존재한다는 것을.
함께 일할 때는 내가 업무를 더 맡아줘서 고마웠겠지만,
내가 떠나고 난 뒤에는 또 상황이 달라지고 달라진 상황에 따라 모두의 입장도 달라져 오히려 원망을 듣고 나니 알 수 없는 배신감과 모든 것이 부질없다는 허탈감이 동시에 밀려왔다.
찡찡이가 되기는 싫지만, 모두를 위해서 업무를 받는 것에도 적당한 선을 지켰어야 했다.
내가 찡찡이라고 지칭했던 그들은 이미 본능적으로 이 사실을 알고 있었던걸까.
앞으로는 적당한 찡찡이가, 반정도는 불평쟁이가 되어 보는게 낫겠다 싶다.
앞으로는 나도 찡찡이가 되어보겠다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