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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없는 작가 Sep 03. 2024

채독

                                                                                                                              

   자금산 기슭에 내려앉은 덕동마을은 어머니의 품같이 편안하다. 오래된 나무와 고택이 어우러져 세월의 흔적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덕동마을은 농재 이언괄 선생이 양동에서 옮겨와 정착하면서 마을의 모습을 갖추었다. 

  고택 사이를 거닐다 덕연관 앞에 섰다. 이곳은 대대로 내려온 고문서, 생활 용구, 농기구 등을 한자리에 모아 놓은 곳이다. 문화마을로 지정되면서 흩어져 버렸을지도 모르는 유물을 주민들이 기꺼이 내놓아 보관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전시관 입구에 부끄러운 듯 돌아앉은 채독이 눈길을 끈다. 채독은 나무 항아리다. 싸리나무의 낭창한 성질을 이용하여 큰 장독처럼 모양을 빚어 안쪽과 바깥쪽에 창호지를 바른다. 채독은 통풍이 잘되어 주로 마른 곡식을 갈무리하거나 옷을 보관하는 데 사용한다.

  내 기억에도 우리 집 마루 가장자리에 늘 채독이 놓여 있었다. 그 채독에는 아버지의 옷이 들어 있었다. 어머니는 일 년에 서너 번 집에 들어오는 아버지를 기다리며 하루가 멀다고 옷을 내어 놓고 바람을 쐬게 했다. 장독대에서 물 한 그릇 떠 놓고 지성을 드리는 것과 같은 마음으로 어머니는 채독을 매만졌다.

  어머니께서 채독에 정성을 쏟았지만, 아버지는 집에 오래 머물지 않고 바람처럼 드나들었다. 아버지가 없는 집에는 소문만이 앞마당과 뒤란을 서성거리며 제집처럼 들락거렸다. 시장 모퉁이 신식 집에서 살림을 차렸다는 둥 사방공사 감독으로 그곳의 여자와 살림을 차렸다는 둥 가는 곳마다 소문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밖에서 들려오는 소문들을 다 가릴 모양으로 어머니는 창호지로 채독을 덧바르고 덧발랐다. 

  소문은 현실이 되어 대문에 들어섰다. 문을 밀치고 아버지와 낮도깨비 같은 여자가 들이닥쳤다. 볼에는 하얀 분을 덕지덕지 발라 분가루가 날렸고,   입술이 튀어나와 붉은 루즈가 더욱 도드라져 보였다. 비로드 치마를 받치고 있는 굽 높은 구두는 도회의 냄새를 풍겼다. 꼿꼿이 턱을 세운 여자 뒤에는 낯선 듯 두리번거리는 사내아이가 멀뚱히 서 있었다. 아버지는 마루에 걸터앉아 물 한 사발 떠오라고 우물가를 향해 소리쳤다.

  어머니의 손놀림이 거칠어졌다. 빨래를 빡빡 치대고, 거품을 내어 헹구기를 반복했다. 많은 소문을 하얗게 삭이던 어머니의 몸이 떨리고 있었다. 평생 눈 감고 귀 막고 어린 자식 건사하고 살면서 덤덤히 견디었던 목울대가 출렁거렸다. 그러면서도 부엌으로 들어가 그을음이 가득한 아궁이에 솔가지를 쑤셔 넣으며 따슨밥을 지었다. 간드러진 웃음소리가 부엌문을 넘어와도 어머니는 솥뚜껑에 흐르는 눈물로 뜸을 들였다. 부뚜막에 쪼그리고 앉아 차린 밥상을 아버지는 어제도 먹은 것처럼 편안히 받았다.

  매일 아침, 아버지는 모시 적삼에 중절모를 쓰고 외출을 했다. 마당에서 놀고 있는 아이를 앞세워 헛기침을 서너 번 하고 대문을 나설 때 모시 적삼을 탁탁 소리 나게 털었다. 밤새 풀 먹고 반듯해진 모시 적삼 사이로 푸른 바람이 아버지를 뒤따랐다. 아이와 뒤서거니 앞서거니 하고 손을 잡았다 놓았다 하며 골목을 끼고 나들이를 했다.

  지루한 장마가 계속되던 어느 여름이었다. 아래채에 머물던 도시여자가 삶은 감자로 늦은 아침을 먹을 때였다. 떠들썩한 소리가 들리고 동네 사람들이 몰려왔다. 아이가 죽었단다. 강에서 멱을 감다 장마로 불어난 물살을 헤쳐 나오지 못해 주검으로 돌아왔다. 엄마를 형님이라고 부르던 여자는 땅을 치며 울었다. 몇 날을 넋을 잃고 방구석에 틀어박혀 아이 이름만 불렀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다 지친 어느 날, 인연의 줄을 놓아버리듯 집을 나갔고, 우리 집안은 오랫동안 정적에 갇혔다. 

  시간은 제 낯을 내지 않고 그저 묵묵히 돌아간다. 선선한 바람이 불 때쯤 어머니에게 좋은 일이 생겼다. 어머니의 배는 채독의 볼록한 허리를 닮아 날마다 불어난 배를 만지며 환하게 웃었다. 달이 차고 우리 집 대문에 금줄이 쳐지고 숯덩이와 드문드문 빨간 고추가 걸렸다. 아이의 울음소리가 유난히 크고 어깨가 넓어 모두가 장군감이라 좋아했다. 사람들은 어머니의 마음이 하늘에 닿아 아들을 우리 집에 보내줬다고 입을 모았다.

  밖으로만 나돌던 아버지가 남동생을 자주 무릎에 앉혔다. 지그시 남동생을 바라보는 눈길이 봄볕처럼 따뜻했다. 아들이 귀한 집안이라 넘어지면 다칠까 걱정했고 찬바람 불면 옷이라도 날릴까 누나들이 바람막이가 되어주었다. 가족 모두의 눈길이 남동생에게 향했다.

  채독의 효험이었던 것일까. 아버지의 옷을 켜켜이 쟁여 놓으며 정성을 쏟은 어머니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 아버지의 바람이 잠잠해졌다. 아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좋아서인지, 마루에 터줏대감으로 놓인 채독을 어루만지며 정성을 다한 어머니의 소망 때문이었는지 아버지는 더는 대문을 열고 떠나지 않았다. 오랫동안 댓돌 위에는 어머니의 낡은 고무신과 아버지의 흰 구두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어머니의 간절함은 애초부터 그곳에 가득 차 있었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흘러내리고 있는 것을 알지 못했을 뿐이다. 우리 집 채독의 사연 못지않은 이야기가 덕동마을에 있다. 긴 겨울을 나기 위해 꽉 채워진 채독을 보며 든든했다는 소리못댁, 봉태기에 종자를 조금씩 보관해 다음 해의 풍년을 바라며 준비했다는 학산댁, 초롱불 아래 자식들 글 읽는 소리에 심지는 타들어 가도 좋기만 했다는 덕산댁의 이야기도 전시관을 채우고 있다. 

  덕연관을 나오니 나지막이 앉은 산자락에 싸리꽃 향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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