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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on Dec 17. 2024

버티기, 살아남기, 또 그렇게 살기

나의 20대는 행복하지 않았다. 부러움의 연속

솔직히 말해서 언제로 다시 돌아가고 싶냐고 물으면 고등학교 때라고 하고 싶다.

하지만 지금도 그때도 딱히 굳이 굳이 물으면 그렇지만 다시 돌아가고 싶은 시절이 있냐고 물으면 없다고 말할 것이다.


그냥 태어난 것도 살아가는 것도 다 무의미한 것일 뿐, 그저 현실에 아등바등 대는 꼴이라니..

나 자신에 대한 아둔한 자존심만 가득하고 정작 나에 대한 자존감이 바닥일 때이다.

지금 현재의 시점에서 바람이 되고 싶은 것은 인생을 살다 보니 힘든 경험을 너무도 많이 해봤기 때문에 더는 힘들게 살고 싶지 않아서이다. 그것이 금전이든 인관관계이든 말이다.


이때는 나는 20대이고, 난 그 이야기를 지금 하고 있는 것이다.


나의 20대 초반.

친구들도 떠나고 배신도 당했다. 이제 남은 것은 군대를 다녀온 친구들 또는 군대를 가기 전의 친구들,. 군대에 있는 친구들 뿐이고 사회에서는 어찌 보면 사회부적응자로 회사 생활이 순탄한지 않았다.

회사를 가는 것은 의무사항이고,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에 마음의 여유도 없었고 세상을 그저 비쭐게 쳐다보기 바빴다.

그때의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나도 놀라지 않을 강심장을 가졌다.

내일이 더 급하고 내가 더 힘들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오로지 나에게만 집중했다.

마치면 집, 회사 집, 회사를 반복했고 친구들도 거의 만나지 않고 연락만 가끔 하는 정도이다,

친구들에게는 나의 사건을 말할 수 없다. 다들 아마도 놀랄 것이고 그로 인해 나의 이미지는 아주 바닥을 칠 것이고 때로는 나보다 더 걱정하는 친구, 분노하는 친구가 있을 것이고 나는 그것을 또 듣고 봐야 한다.

그래서 그냥 덮어두는 습관이 생겼다.


어떠한 일이 어떻게 이루어져도 이젠 덤덤하고 그냥 혼자 삼키는 일이 많았다.

힘들어도 혼자 힘들고 기뻐도 혼자 기쁘고 슬퍼도 혼자 슬프다.

사람들은 길거리에서 서로 낄낄대며 웃고 있고 다들 행복해 보인다.

하지만 나는 아니다. 그래서 항상 나는 누구와의  소통도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귀에 항상 이어폰을 꽂고 지냈고 음악을 들으며 그 기분을 릴랙스 했다.

음악을 들을 때는 눈을 감고 천천히 손을 가슴 위로 얹고 마치 누워있는 것처럼 음악에 집중한다.

나는 댄스음악을 듣지 않는 편이다. 지금은 아니지만 그때는 발라드만 들었다.

물론 지금도 댄스음악을 듣지 않는다. 꼭 들어야 한다면 무조건 지드래곤의 음악만 듣는 편이다.


아무튼 나에게 습관이 되어버린 무감각은 꽤나 심각했던 것 같다.

집에 가도 지옥 같았고 회사도 지옥 같았다. 지옥이 이 정도일까?라는 생각도 해봤다.

어두운 20대 이야기를 계속해서 독자들에게 미안하지만 난 내 인생을 되돌아보기 위해서 이 책을 지속적으로 연제하고 있는 것이고 속이고 싶은 맘이 없어서 있는 그대로 나를 적고 있다.

어찌 보면 자서전 같아 보일 수도 있겠다.

지옥 이미지 (구글 이미지 검색)

20대 누구는 그런다 한참이라고 말이다.

지금의 내 나이에서 나도 20대들에게 그렇게  말을 하니 이젠 20대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 수 있다.

그때는 그저 나이를 먹기를 원했고 안정적인 생활과 집에서 독립하는 것만이 살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때 우리 부모님이 내편이 조금만 돠어 주었더라면 심리적인 안정상태가 왔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엄마 아빠도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고 계속 나는 최면을 건다.

진실이던 거짓이던 난 엄마 아빠의 마음을 그렇게 이해하기로 했다. 만일 그렇지 않더라도 상처받지 않는다. 이미 겪었고 이미 상처는 아물기에는 너무 깊다.

원망도 아니다. 그냥 그때의 나에게 따뜻한 말로 "내 딸 힘들었겠다. 살다 보면 그런 일이 있어. 그럴 때 다시 힘을 내면 돼. 아직 너는 젊어. 그러니 너무 힘들어하지 말고 엄마 아빠가 옆에 있으니 괜찮아" 이 말을 나는 듣고 싶었는지 모른다.

결국은 듣지 못했고 사실 지금까지도 듣지 못하고 있다.

부모님의 성향일 수도 있고 표현이 서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성장기에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나는 지금은 매우 잘 알고 있다.


어느 날이었다.

남동생이 이제는 군대를 간다.

군입대를 자진해서 빨리 하겠다고 한다.

집에서 더 이상 남동생과 마주칠 일은 없겠다고 생각했다.

엄마 아빠는 슬픈 모양이다. 그래서  그런지 엄마는 울고, 아빠는 침묵이다.

군대 뭐 죽으러 가는 건가? 머가 저렇게 슬퍼?라고 혼자 생각했다.


군대를 입대하는 날.

집안이 분주하다. 남동생은 머리를 깎고 입대준비를 했고 나는 내남동생의 빡빡머리 군대 스타일을 보지 않았다. 굳이 보고 싶지도 관심도 없었다. 그저 남동생에게 쏠려있는 부모님의 마음이 서운했던 모양이다.

그래서일까? 남동생이 군대를 입대하는 날 나는 같이 가지도 않았고 일부러 밖에서 돌아다니면서 저녁 늦게서야 집에 갔다.

엄마 아빠가 아직 집에 오지 않았다. 그런데 뉴스를 보니 우리 엄마 아빠가 나오고 있다.

이때 군입대하는 인원이 무척 많아서 특종처럼 뉴스에서 보도했던 것 같다.

"아들이 하나뿐인데 군대를 간다고 하니까 마음이 괜히 뒤숭숭하네요"라고 엄마가 인터뷰를 했고, 기자는 물었다." 아버님은 심정이 어떠신가요?" " 남자라면 군대는 가야죠. 건강하기를 바랍니다"라고 짧게 답했다.

그 화면을 나는 집에서 보고 있었다. 신기하기도 하고 그냥 마음이 착잡하다.


인터뷰 요청을 아마도 많은 부모에게 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마도 우리 엄마 아빠가 눈에 띄었고 그만큼 유별나 보였나 보다고 나는 생각했다.

다음날 엄마 아빠가 집으로 왔다.

"야 너는 동생이  군대 가는데 와보지도 않냐?"라고 말한다 엄마가 말이다.

"아니 엄마랑 아빠랑 다 갔는데 굳이? 내가 왜?"라고 말했다.

 엄마는 괜히 말했다 싶은 표정으로 그냥 더 이상 나와 대답을 하지 낳았다.

그렇게 남동생은 군대를 가벼렸고, 이후 이라크 파병의 문제가 나올 때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남동생은 하사관으로 지원했고 엄마 아빠는 군대에 말뚝을 박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충격을 받으신 모양이다.

집에서는 반대를 엄청 한 거 같다. 하지만 나는 알바 아니다.

그래서 뭐 그런가 보다 하고 말았다. 남동생이 전혀 걱정되지 않았다. 왜냐면 엄마 아빠가 지켜주니까 말이다.


이런 나의 삐딱하고도 질투스러운 생각은 정말 어이없게도 어려서가 아니라 사회에 나와서 사회생활을 하면서 시기가 늘었다. 그것도 다른 타인이 아닌 내 가족구성원에게 말이다.

이런 20대를 맞이하는 것은 매우 안타깝다.


결국 우리가 그렇게 소망했던 대학은 남동생이 갔고, 남동생은 학교를 가고 나서 두 달도 안돼서 휴학을 하고 군대를 가버렸다. 그렇게 허무하게 대학이 스톱되었다


난 그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언니도 그때 그 문제로 혼자 울었을지 모르겠다. 배움에 대한 열정은 나보다 언니가  더 많았고 재능도 공부머리는 나보다 더 많다. 이런저런 생각이 맘을 뒤집어 놓았다.


그렇게 남동생의 군대 입대는 끝났고 엄마 아빠는 훈련소 시기가 지나서 자대배치를 받고 나서 자주동생에게 음식을 해서 면회를 갔다. 그것도 강원도 까지 말이다.

남동생은 강원도에서 군대 생활을 했다.

멀고도 먼 길 지금처럼 철도가 잘되어있지도 않은 시절, 운전을 해서 보러 가고 새벽 기차를 타고 보러 가고 지극정성이다.


그건 나는 매우 보기가 좋지 않았다.

그래, 엄마 아빠는 동생이 중요하겠지... 그런데 왜 나 에게느 이렇게 가혹하지?라는 생각만 되풀이했다.

그냥 나의 20대 초반은 그랬다는 거다.


확실한 건 이거다.

1. 난 일만 했다.

2. 친구도 만나지 않는다.

3. 집에 가고 싶지 않지만 갈 곳이 집 밖에 없다.

4. 집에 가면 누구와도 대화를 하지 않았다.

5. 혼자 음악을 들으며 가만히 눈을 감고 있다가 잠이 든다.

6. 그러다가 아침이 오면 또 반복된다.

이것이 나의 일상이었던 20대 초반. 난 여전히 힘들고 지쳐있다.

누군가 그때 나에게 어깨를 빌려주었다면 다독여 주었다면 난 달라졌을까?

후회스러운 20대의 기억이 너무나도 많다.

이번 편에서는 말할 수 없지만 나의 20대는 그냥 어찌 보면 통째로 날아간 기분이다.


슬퍼하기는 이른 20대였다.

포기하기도 이른 20 대였다.

꽃피기 시작할 20대였다.

행복하기도 부족한 20대였다.

친구들과 함박웃음을 지었을 20대였다.

먹고 놀고 쉬는 것을 즐길 수 있는 20대였다.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유일한 20대였다.


난 그런 20대를 보내지 못했다.

그것이 아직도 가슴 깊숙이 남아있다.


현실. 지금 2024년 나는 나의 옛 20대를 적고 있다.

지금 나에게 일명 mz라고 하는 동생들이 많다.

그 동생들이 나에게 언젠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누나 일하는 것도 맘대로 안되고 사람들도 너무 힘들어서 그냥 포기하고 싶어요.

그냥 모든 게 다 힘들어요라고 말이다.

니는 말했다.

"힘들지... 다 힘들지.... 너도 힘들고 나도 힘들고..."

"그렇지만 힘들다고 포기하면 안 돼.. 포기하게 되면 안 좋은 생각만 자꾸 들어서 더 상황이 악화되더라"

" 넌 아직 어리고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더 많아. 지금 포기라는 단어를 입에 담기에는 너무 빨라"

"그러니 조금만 더 열심히 해보고 , 이 길이 아니다 싶으면 과감히 포기하고 다른 길을 찾아봐"

" 그러다 보면 어느덧 너는 성장해 있을 거고, 너에게 맞는 직업을 찾을 수 있을 거야"

" 이건 기회이고 너만 결정할 수 있는 특권이고 너의 자유야"

"하지만 삶을 포기하는 것은 너의 결단이 아니라 그것은 너를 사랑하고 응원해 주는 주변 사람들에게 죄를 짓는 거야" " 네가 사라진다면 나도 슬플 것이고 너 주변에 너를 아끼는 모든 사람들이 다 슬플 거야 "

"누구도 그것을 원하지 않아. 그러니까 힘든 마음은 충분히 공감해. 그럴수록 더 너는 강해질 거야"

" 사람은 각각 다 힘듦의 무게가 달라. 나도 너 나이 때에 많이 힘들었는데, 시간이 지나니까 별거 아니더라"

"지금 이해할 수 없을 거야. 나도 그때 그랬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상관없어., 난 항상 너를 응원한다"

라고 말했다.


그 친구는 "누나 고마워"라는 말을 하면서 웃음을 띠었다.

지금의 나는 어쩌면 좀 더 성숙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말을 하면서도 나 자신을 되돌아봤고 지금의 나는 그렇게 조언해 줄 자격이 있었나?라고 또 되돌아봤다.


어느덧 단단 헤지 고있는 것인가. 단단해지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인가. 나 또한 지금의 마음이 갈대 같다.

이리 흔들 저리 흔들 마음은 추슬러지지 않고 몸은 힘들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생각하며 나는 오늘의 글을 마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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