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을 옮기자고 생각했다. 더 이상은 너무 힘들었다.
아주 어릴 때 왕따를 당한 것이 커서도 남아있다.
그래서 그 트라우마는 아무리 환경이 바뀐다고 해도 마음의 상처로 남아있는 듯하다
난 중고등학교에는 좋은 기억들이 많다 하지만 여전히 초등학교 그때의 국민학교 시절의 아픔. 그리고 중학교에서 선생님에 대한 믿음의 아픔등을 겪고 그것들은 어느새 커가면서도 상처로 고스란히 남아있다.
그래서 이와 유사한 상황이 발생하면 방어태세를 갖추고 또 아예 대화를 단절해버리거나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거나 무시해 버리는 습관이 몸에 배였다. 아마도 이것은 나를 보호하기 위한 나만의 방법이었을 것이다.
이때 21살,,, 가장 많이 들었던 말들이 이런 말이다.
"넌 왜 다 경계해?"
" 네가 뭐 그리 잘났어?"
"너 정말 싹수없다"
"넌 왜 마음을 쉽게 안 열어?"
"넌 왜 너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아?"
" 내가 귀찮니?"
"넌 너무 이기적이야"
" 넌 네가 제일 중요하지?"
누구도 나를 지켜주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심지어 가족도 말이다.
그래서 나는 마음의 문을 닫고 지낸 것이고 거짓 웃음을 지으며 사람들과 어울리려고 노력헀다.,
그런데 그 노력이 나에게는 너무 힘든 하나의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고요를 선택했고, 혼자만의 시간을 그냥 좋아했다.
시끌벅적했던 시절은 이미 나에게 없다. 지금의 나는 매우 힘들고 지치고 나에게만 오는 이 모든 불행을 감당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일상을 보냈기 때문이다.
빨리 벗어나고 싶다. 이런 생각을 자주 했다.
없어지고 싶다.라는 생각도 해버렸다. 참으로 어리석지만 그런 생각을 줄곧 하면서 이 세상이 아닌 저세상은 어떨까?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하루 이틀 지나고 일 년 이년이 지나다 보니. 어느새 나는 만신창이가 되어있었다.
나의 감정 쓰레기통은 나 자신이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그래서 결심했다. 회사를 옮기기로 말이다.
이때 당시에는 회사를 이직한다고 생각하면 인터넷으로 지원서도 넣지만 그것보다도 "벼룩시장" 같은 공짜 신문에 일자리항목의 일을 봐야 하는 시기였다.
나는 그냥 옮기는 게 목적이었다.
그리고 결심했다. 다음에 옮기는 곳이 어떤 곳이든 나는 그곳에서는 최고가 되리라라고 말이다.
한 곳이 눈에 들어온다. 말했지만 난 이때 21살이었고, 그냥 눈에 들어오는 곳을 선택하고 가는 그런 대책 없는 성격이었다. 면접을 또 봐야 한다는 스트레스 외에는 크게 없었다.
꽤 멀었다. 집에서 버스를 타고1시간 20분을 가야 하는 곳이다.
이때 도 휴대폰이 많이 남는 장사였나 보다.
이때는 핸드폰의 모든 번호가 010이 아니었다.
011.017.016 이렇게 통신사에 따라서 번호가 달랐다. 그리고 휴대폰 맨 마지막 번호를 잘 찾아주는 휴대폰 매장이 기계도 많이 팔았다.
이때 ms dos 시절이고, 예를 들면 이런 거다.
011.(중간번호는 임의적으로 생성) 끝번호 이게 중요하다.
끝번호를 0111.0112.0113.0114.0000.9999. 뭐 이런 쉬운 번호를 찾아서 매장에서 잡아놓는 시스템이 있었다, 난 타자속도가 굉장히 빠른 편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곳에 취업을 하고 좋다고 하는 모든 번호는 다 잡아 놓았다. 그것을 하는데 그곳에서 몇 년 일한 언니보다 이틀 만에 많은 숫자를 확보했다.
손님들은 하나둘씩 소문을 듣고 저 가게 가면 좋은 번호가 많다는 소문으로 기계를 구입하는 일이 많아졌고, 이 매장은 내가 들어오고 한 달도 안돼서 부산전체 휴대폰 매장의 1등 판매점으로 인센티브 및 많은 프로모션을 본사로부터 지원받기 시작했다.
먼저 나오는 기종은 무조건 먼저 확보할 수 있는 것과 기계대수에 따른 프로모션을 비롯해서 매장에 떨어지는 인센티브를 엄청 많이 받았다.
이때 휴대폰 매장의 사장님이 나에게 매우 잘해주셨다. 항상 나의 안부를 살피고 웬만하면 내 부탁은 다 들어주셨다. 언니들도 그런 내가 이쁜 모양이다. 항상 칭찬을 해주었다.
"네가 오고 나서 우리가 너무 평온하고 너무 좋아"
"항상 우리는 눈치 보기 바빴는데 너는 너 할 말 다 하니까 언니들이 너무 자랑스럽다"
여자들에게 이런 말을 사회에서 처음 들어본다.
"언니 그런 게 어딨 어요 다 같이 잘하니까 그런 거죠, 근데 언니. 언니도 할 말 있으면 사장님한테 해요!"
"나는 먹여 살려야 하는 가족들이 있어서 너와 상황이 달라" " 대신 언니가 못하는 말을 네가 다 해주잖아"
라고 말을 했었다.
이 언니는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너무나 친절하고 너무나 상냥하며 사려가 깊은 그런 여성이었다.
이때 나는 핸드폰 가게들이 돈을 많이 버는 구조를 파악했다. 하지만 관심은 크게 없었고, 월급 이외에 사장님이 남몰래 주는 짭짤한 보너스가 맘에 들었다.
아무에게도 주지 않고 나에게만 줬던 사장님. 지금도 고맙게 생각한다. 하지만 한편으로 언니들에게 미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난 내가 일한 대가라고 생각하고 당당히 감사하다고 하고 받았다.
이제 더는 숨지 않기로 했으며, 떳떳하기로 했으며, 기왕이면 일할 거 잘리든 말든 소신을 가지고 일하자고 생각한 나였다. 하는 일에 있어서는 최고가 되어인정받자고 다짐했던 나.
이곳에서 나는 그런 인정을 받았고, 이곳에서의 히스토리가 좀 더 있다. 나머지 히스토리는 다음 편에서 마무리될 수 있을 듯하다
느낀 점을 말하고 싶다면,
아직 20대라면 여기저기 회사를 옮기라는 것은 아니지만 나에게 맞는 직장이 어딘지 모르기 때문에 힘들 수 있다. 요즘 취업난도 심해서 다들 힘들어한다. 그런데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첫째, 경기가 좋지 않아서 취업이 힘들다 (이건 공감한다. 왜냐하면 경기가 안 좋다는 것은 기업의 자금의 흐름이 원활하지 않은 것이니 직원을 채용할만한 여력이 안된다)
둘째. 취직할 때가 없다. (이건 인정할 수 없다. 왜냐하면 취직 꼭 회사가 아니라고 해도 아르바이트도 취직이고 커피숍에 일하는 것도 취직 편의점도 취직이다)
다만 우리의 취업이라는 잣대가 대학을 졸업하고 전공을 살릴 수 있으며 토익이나 토픽 점수가 높은 대기업 및 중견기업에 타깃이 되어있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에 그것을 만족하고 더불어 자신이 원하는 연봉까지도 맞아야 취업할 곳이 있다고 말하는 현실도 있기 때문에 이 말은 맞지 않다.
"내가 원하는 곳의 일자리가 없어"가 맞는 말이 아닌가 싶다.
셋째, 피하지 말라. 일단은 해봐라. 말하고 싶다. 20대라면 앞길이 창창하다 요즘 20대도 창업을 한다고 하는데 이 분야를 잘 알고 있는 지금의 나로 말하자면 창업을 하는 데는 많은 노력과 공부가 필요하다. 그것은 아마도 이것저것 일을 해보면 경험이 누적되고 그 경험 속에서 배우는 것이 생길 것이다. 어떤 곳이라도 좋으니 일단 일을 해보고 그곳에서의 경험과 느낌 중에 좋은 것들만 기록해 두고 천천히 창업을 해도 좋다는 거다.
이런 말들을 지금의 나로서는 할 수 있지만 이때 21살의 나는 그냥 말괄량이 소녀로 다시 돌아갔다.
여기서는 이렇게 입지를 다졌고, 나는 또 내일을 위해서 이곳에서 열심히 일을 하고 있다.
많은 이야기가 이곳에서 있다 이곳을 나는 거의 3년을 다녔기 때문이다.
이곳에서의 일은 다사다난하다고 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