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사소한 부탁도 들어주는 편이었지만 이제는 바뀐 나를 보았다.
성격이 그리 온순한 편은 아니다.
그건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한때는 빙판 위를 걷는 기분으로도 살았고 살얼음판을 지르밟으면서 버텨낸 시기도 있었다
또 세상에 존재하기를 원치 않던 시절도 있었고, 이 세상에 나 혼자만 딸랑 남아서 있는 것 같은 기분도 충분히 경험했다.
이러면서 스스로 울타리를 쳤고 온몸은 가시 돋친 장미나 고슴도치처럼 항상 날카로움이 따라다녔다.
그렇지만 사람의 본성은 숨길수가 없는 것이기 때문에 나는 그런 환경 속에서도 사람들이 무언가를 나에게 부탁을 하면 거절을 잘하지 못했다. 둘러대는 것도 서툴러서 거짓말을 하면 바로 티가 나기 때문에 사람들이 오히려 부탁을 하고서는 내가 둘러대는 모습을 보고서는 멀리 하고는 했다.
그럴 때 나는 또 상처를 받았다. 내가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나를 바로 떠나버리는구나 하고 말이다.
이것은 일종의 트라우마가 되어 버린 것 같았다.
이 트라우마는 솔직히 말하면 지금도 가끔 깨어나기는 한다.
하지만 지금의 나이에서 말하는 내가 아닌 20대의 나의 모습을 아직도 많이 기록해두고 싶기 때문에 이 글을 이어서 작성하려고 한다.
싫고 좋고는 분명했다. 이것은 어릴 때부터 성격이다.
하지만 내가 실다고 무조건 안 할 수도 없고, 좋다고 무조건 다 할 수는 없다.
이것은 현실과 나의 성격과 다름을 인정하는 수밖에 없다.

이것을 나는 어릴 때부터 알았고 내가 원하는 것은 하지 못하게 되는 순간들이 자주 발생하면서 스스로 포기하는 방법도 배웠다.
포기라는 단어는 나쁘게 이야기하면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는 것이지만 이것은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가지 않고 그 어떤 물질적인 것과는 다른 내 마음속 나만의 포기이기 때문에 나만 아프면 된다.
이것이 나의 생각이었고 그러한 의미에서의 포기이다.
그러고 그만큼의 보수도 넉넉히 받았다. 일 년이 다 지나고 연차가 찰수록 이재는 사람들이 점점 알아보기 시작한다. 그전에도 나를 알아보고 인사하고 친해지려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나는 다 거부했던 모양이다.
말로는 아니라도 행동이 그랬나 보다. 그래서 늘 혼자였었다.
팀장이 되고 나서 팀원들의 근태관리부터 스트레스가 말도 아니게 많았다.

나의 일만 잘하면 되는데 왜 이런 것까지 해야 하나? 하다가도 내 목표인 실장의 자리까지 가려면 팀장을 거쳐야 가능하기 때문에 그것을 위해서는 하기 싫어도 완수해야 하는 역할이다.,
말했지만 지각을 하는 팀원들 때문에 미쳐버릴 지경이다. 그만두기는 했지만 그 여파가 크다.
내가 근태에 대해서 너무나도 민감하게 반응을 하기 때문에 팀원들도 그런 부분에 있어서의 스트레스가 적지 않아 있던 모양이다. 난 단 1분의 지각도 지각으로 간주한다.
난 이 회사에 출근을 하려면 새벽 6시에 버스를 타야 한다. 그럼 적어도 화장을 하고 옷을 입고 버스를 타기까지 1시간이 걸리는데 그러면 새벽 5시 정도애는 일어나야 한다. 지각하지 않기 위해서 그렇게 해야만 한다.
새벽시간에는 앉아서도 갈 수 있고 회사에 일찍 도착해서 어제 못했던 일들이나 부족하다고 느낀 나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검토한다. 이것은 습관이 되어버렸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지각을 한다는 것은 다니기 싫어서인가?
아니면 원래 지각을 밥 말아먹듯이 하는 것이 습관인가?
저 사람은 분명 학창 시절에도 지각을 했을 거야.
이런 맘이 나는 무조건 들었다.

예전에는 누군가가 나에게 무엇인가르 부탁하거나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일들에 대해서 이야기르 하더라도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으로도 그 사람의 감정을 조금은 덜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러면서 그들과 친해지고 그들의 고민을 함께 고민하는 시간을 할애했다.
하지만 난 이때부터는 그러지 못했다.
냉정한 세계이고 냉정한 실적 주의. 이것은 나를 바뀌게 만들었다.
나에게 무엇을 물어보면 내가 설명할 수 있는 한계 선에서 적당히 설명했고, 나에게 무엇인가를 부탁하면 부탁을 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명확히 이유를 들어야 했다. 개인적인 사정이라고 이야기를 한다면 그럼 개인적인 부분이고 이야기해 줄 수 없다면 나도 개인적으로 도울 수 없다고 딱 잘라 말하기도 했다.
이런 모습이 하나하나 변해가면서 나는 매우 차가운 심장을 가지게 되었다.
아파서 회사에 오지 못한다고 말해도 그런가 보다 했지 아픈데 몸부터 챙겨라 라는 따뜻한 말한마디 하지 않았다. 지금에 와서는 그러지 말았어야 함을 알지만 그때의 나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나는 그때 그랬다.
아프면 아픈 거고 못 오면 어쩔 수 없다.
이것도 마찬가지다. 난 이 회사를 다니면서 방광염에 걸렸고 약을 복용하거나 가끔은 빈혈로 인해서 쓰러짐이 있어서 응급실도 갔었다. 이것은 부모님이 알지 못한다.
하루는 너무 힘들어서 병원을 가서 링거를 맞았다. 링거를 맞고는 집으로 가지 않고 회사로 바로 가서 일을 했다. 링거를 맞고 나서 바로 일을 했고 핏줄이 약해서 링거를 맞고 나면 항상 피멍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타자를 치고 열심히 일했다.
그러면서 회사에 아파도 나오는 모습을 보여줬던 것 같다. 내가 스스로 나온 것임에도 불구하고 주변에서는 독하다는 말을 많이 했다. 나는 그냥 내가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었고 당시에는 그런 나를 너무 나 스스로 아끼지 않은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말이다)
냉정해지고, 차가워지고, 로봇 같아졌다고 하면 이해하기 쉽겠다.
돈 버는 로봇, 인간미 없는 로봇. 차가운 쇠덩어리 같은 로봇이다.
어쩌다 이런 경우가 있다.
어떤 남자아이가 나에게 어디 사세요?라고 친해지기 위해서 노력하고자 물어본 적이 있다.
그런데 내가 한 말은 " 아 저 어디 살아요 그쪽은요?"가 정상인데, 나는 그러지 않았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그게 왜 궁금하시죠?" " 제가 사는 곳을 왜 말해줘야 하죠?"라고 말이다.
그는 뒷걸음치며"아니 그렇게 화낼 일도 아니고 뭐 그런 식으로 말을 해요"라고 말이다.
난 그때 또 이렇게 말헀다.
"아니. 제가 그냥 묻는 말에만 대답하세요. 제 개인적인 것에 대한 질문은 하지 말라고요"라고 말이다.
아니 그 사람의 입장이 그때는 도무지 이해가 안 갔다.

이런 식이니 주변에 사람이 없을 수밖에......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어느 정도 내 성격을 보고 오히려 더 맘에 들어서 친해진 사람들이 몇몇 생기기 시작했다. 뭐든 확실하게 말하는 게 좋고 솔직해서 좋고, 어영부영 우유부단 하지 않은 것이 좋다고 말이다
그렇게 말해주니 친구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런 친구가 딱 1000명 중에 단 5명 정도 되었다. 충분하다
솔직히 다섯 명도 많다.
난 그렇게 많은 친구들 둔적이 없다.
그 친구들 중에서도 나이가 동갑인 친구 3명 언니 1명 동생 1명 이렇게 다섯 명이다.
자주 쉬는 시간에 모여서 수다를 떨어대고는 했다.
각자의 이야기를 하기 바빴고 나는 그런 이야기를 듣는 것이 좋았고 그들의 생활과 나의 생활을 비교하지 않았다. 그냥 각자의 삶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재미있게 들었던 기억이다.
이것은 문제가 있었다. 듣고 나서 그 다음번에 그 사람이 또 같은 이야기를 해도 아무렇지가 않다.
귀담아듣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된다.
나중에 그에 대한 지적을 받았다.
"야 지난번에 이야기 한 그거 있잖아 거기"라고 이야기하면 다들 "아 거기 왜?"라는 반응이었지만 나는 거기가 어딘데?라는 반응!
이런 부분으로 인해서 친구들이 "야 좀 들어라 들어"라고 하면서 상대방의 이야기르 귀담아듣고 호응해 주는 것에 대한 부분을 지속적으로 나에게 이야기했다. 귀찮아지는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또 내일이 아닌 다른 사람의 일로 내가 같이 고민을 해야 하는 일이 생기면 어쩌지?라는 걱정만 앞섰다. 하지만 그런 것이 아니라 그들은 그냥 일상을 공유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장미가시가 하나둘 잘려 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가득가득한 장미 가시가 다듬어지는 기분?
친구들과 이야기하면서 어떤 특정 장소에서의 에피소드가 나오면 회사를 마치고 간혹 친구들과 그곳에서 놀기도 했다. 그런 식으로 생활을 하면서 나는 좋고 싫음이 분명해지기 시작했고 또 거절과 이해의 폭에 대해서도 나름대로 고민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나는 조금의 가시를 잘라내고, 상대를 위해서도 나를 위해서도 아닌 것은 아니다라고 말하고 맞는 것은 맞다고 의견을 전달하고 우기지 않고 존중하면서 상대의 말에 무조건 동의하는 것도 반대하는 것도 아닌 적당한 리액션과 적당한 내가 할 수 있는 조언을 겸하여 내가 할 수 있는 인간적인 도움을 마음으로 주었다.
어떠한 고민인지에 따라서 상대가 오해를 할 수도 있고 멀어질 수도 있다.
금전적인 부분에 대한 어려움의 고민이라고 한다면 사람들도 나도 마찬가지로 "내가 도울 수 없어서 미안해"
"나도 지금 돈이 없어서"라는 말로 아마 말을 했을 것이다.
아니면 "어? 왜 이걸 나한테 말하지?"라는 생각을 가질 수도 있다.
이처럼 마음을 나누고 고민을 들어주고 함께 이야기 나누는 것은 어떤 주제인가 의도가 어떠한가에 따라서 다 다르다. 나는 그런 머리 아픈 것을 하고 싶지 않아서 인간관계를 맺지 않았다.
하지만 이때 나는 금전적인 부분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이 와서 나에게 고민상담을 하면,
"돈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거야. 나는 도울 수없지만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생겼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할 수 있었다. 돌려 말하지 않았고 내 의견을 전달했다.
이렇게 하나둘씩 나는 말하는 법을 상대를 위로하는 법을 배우게 되면서 성숙해져 갔다.
모든 걸 완벽하게 하고 싶은 나였지만 그렇지 못했던 부분도 컸고, 그렇지만 나는 잔뜩 날카로워져 있는 내 몸을 감싸고 있는 듯한 장미가시들을 하나둘씩 잘라내는 작업을 했던 모양이다.
이때부터는 대화하는 방법, 그리고 거절하는 방법을 나름대로 고민했고 자연스러운 거절과 존중하는 말투를 나름대로 고민하면서 상대방의 기분도 고려하는 방식을 배워보려고 했던 것 같다.
때로는 너무 힘들고 지치고 또 이것마저도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때의 나는 나 스스로부터의 자유로움이 가장 중요했고 나를 다듬어야지 나 자신도 아픔에서 헤어나 올 수 있다고 판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