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내 인생은 나의 것
엄마: 아들아. 어서 일어나서 학교 가야지.
아들: 엄마. 나 학교 가기 싫어요.
엄마: 그러지 말고 어서 일어나.
아들: 엄마 정말 학교 가기 싫어요.
아이들도 싫어하지만 선생님들도 다 저를 싫어한다고요!
엄마: 그래도 가야 한다!
아들: 아이 참, 왜 꼭 학교를 가야 하는데요?
엄마: 넌 지금 쉰 살이고, 학교 교장이잖니!?
이 유머의 웃음 포인트는 바로 나이 든 교장 선생님도 아침에 일어나서 학교 가기 싫어한다는 것입니다. 학창 시절에 부모님께 아침에 깨워달라고 하신 분들 많으실 텐데, 저도 그랬습니다. 그때는 ‘나는 자명종을 맞춰 놓고 자도 못 일어나는데, 부모님은 어쩜 그렇게 잘 일어나서 날 깨워주실까? 어른이 되면 아침에 힘들지 않게 일어날 수 있나?’ 그런 생각도 했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어른이 되어보니 그게 아니었습니다. 일어나기 힘들고, 일어나기 싫어도, 자식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제시간에 일어나는 거였어요. 저도 학창 시절에는 아침에 잘 일어나지 못해서 쩔쩔맸는데, 엄마가 되고 보니 아침에 딸내미를 깨워 아침밥을 먹여 학교에 보내야 한다는 생각에 일찍 일어나게 되더군요. 그러면서 내가 학창 시절에 엄마가 깨워주시는 대로 순순히 잘 일어나서 공부를 했더라면 시험을 더 잘 봤을 거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자식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고 수행하면서 비로소 내 인생에 대한 책임감을 돌아보게 됐다고나 할까요.
그럼 이제 자식들이 다 커서 그런 책임감이 없어진 시기에는 어떤가요? 자유로워져서 좋으신가요? 아니면 그런 책임감이 없어지니까 본인의 생활도 갑자기 느슨해지던가요? 자식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나를 지탱해 오신 분들은 그럴 때 대개 ‘빈 둥지 증후군’을 겪는다고 하지요. 책임감을 가지고 정성을 쏟던 대상이 없어지니까, 목표를 잃고 방황하는 것처럼 괜히 마음이 허하고 외로워진다는 거예요. 이게 당연한 현상인 것 같으면서도 반성할 점이 많습니다. 우선 내 인생에 책임감을 가지고 살아왔다면 ‘빈 둥지 증후군’은 나와는 관계없는 일이 됐을 테니까요. 가령 비행기를 탔을 때도 비상시에 보호자가 먼저 산소호흡기를 낀 다음에 아이에게 산소호흡기를 끼워주라고 하잖아요. 내가 나를 먼저 책임질 수 있는 게 먼저입니다.
더구나 자식으로부터 이유(離乳) 해야 하는 시니어 시기에는 그 누구도 아닌 자신에 대해 책임감을 가져야 합니다. 자식도 성인이 되면 부모에게 독립하는 게 당연하듯이, 부모도 자식이 성인이 되면 마치 젖을 떼듯이 ‘품 안의 자식’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그러지 않으면 소위 ‘캥거루 맘’이 되지요. 다 큰 자식에게는 불필요한, 과도한 신경을 쓰면서, 정작 필요한 스스로에 대한 신경은 쓰지 않는다면 그것처럼 난센스가 없습니다. 게다가 요즘은 자식이 부모를 부양하는 시대도 아니잖아요. 자식 키울 때 내가 자식에 대해 가졌던 책임감처럼, 자식이 나에 대해 책임감을 가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런 상황이 되면 아무리 효자효녀라고 해도 내심 부담을 느끼겠지요. 그래서 더 이상 아침에 자식을 깨워줄 필요가 없어도 나 스스로 제시간에 잠자리에 들어 제시간에 일어나도록 하고, 식사도 혼자 할 때조차 제대로 영양소를 잘 챙겨서 하도록 하고, 운동도 빠뜨리지 않고 꾸준히 하도록 하면서, 건강을 지켜야 합니다. 나에 대한 이런 책임감은 나에 대한 사랑이기도 하거든요.
그리고 살면서 가족 의견에 따르기만 했던 분들은 하도 자신을 뒷전에 밀쳐둬서 자신에 대해 잘 모르게 되어버리기도 하고, 선택과 결정에 어려움을 겪게 되기도 합니다. 살다 보면 ‘오늘 뭐 먹을까’부터 시작해서, 챙겨야 하는 약이나, 외출하기 전 우산을 들고나갈지 그냥 나갈지 등등, 매일 내가 생각하고 선택하거나 판단할 게 참 많잖아요. 그런 걸 귀찮아하거나 힘들다는 생각부터 하지 말고, 나를 위해 기꺼이 즐거운 마음으로 생각하고, 선택하거나 판단하면 좋겠어요. 나 스스로에 대한 책임감을 갖고 내가 원하는 선택과 결정을 할 줄 안다는 건 독립된 인격체로서 참 중요한 일이거든요.
물론 과학기술이 발달하다 보니 요즘은 나보다 더 나를 잘 아는 인공지능이, 내가 생각하고 선택하거나 판단할 수고를 많이 덜어주기도 합니다. 가령 내 취향을 파악해서 ‘이런 게 어때요?’ 하고 제안해주기도 하고, 약 먹을 시간이라고 알려주고, 우산을 들고나가야 할지, 선크림을 챙겨야 할지도 꼼꼼하게 조언해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인공지능에 너무 의지하다 보면,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하거나 판단하는 능력이 점점 퇴화된다고 하지요. 일단 휴대폰을 쓰고부터 지인들 전화번호, 심지어 자기 전화번호도 잘 외우지 못한다는 분들이 많아졌잖아요. 또 문자 보낼 때 내 감정 하나 제대로 글로 표현하기 어렵고 어색해서, 그냥 이모티콘으로 대신하는 분들이 많아졌습니다. 그러니 매일 직접 내가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을 간단하게 적어놓고, 하나씩 실천하면서 지워나가는 수고로운 방법으로, 나를 좀 불편하게 하는 것도 좋겠습니다.
또 남의 시선보다는 내 취향이나 내 느낌을 우선으로 하시길 권합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 보세요. 그야말로 남이 뭐라고 하건, 내가 좋으면 그만입니다. 옷차림만 해도 한 여름에 긴 부츠를 꺼내 신고 다니는 젊은이들도 있습니다. 아마 지금 시니어 되시는 분들 중에는 한 겨울에도 남들이 부츠를 꺼내 신지 않으면 혼자 부츠를 신고 나갈 엄두를 내지 못하는 분들이 적지 않을 거예요. 아마도 어려서부터 남의 이목에 신경을 쓰고 살아야 한다는 교육을 받고 살아서, 지금도 내 취향이나 내 느낌보다 남의 시선에 더 신경이 많이 쓰일 겁니다. 물론 ‘함께 사는 세상에서 어떻게 나만 생각하느냐?’ 할 수도 있지만, 함께 사는 세상에서 남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것과, 남의 시선을 먼저 의식하고 사는 건 완전히 다릅니다. 그건 생활의 중심에 내가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거든요.
더욱이 나에 대한 책임감과 나에 대한 사랑은 자존감으로도 연결됩니다. 나이 들어 자존감은 낮아지는데 자존심만 강해지면 사람들과의 관계가 참 힘들어지게 되잖아요. 나 자신을 좋아하고 아낄 줄 알아야 남도 그렇게 대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나 자신을 책임감 있게 좀 잘 보살펴 주세요. 그렇게 나를 보살펴 줘야 내 마음에 여유가 생기게 됩니다. 마음에 여유가 없으면 아무리 아름다운 것도 아름답다고 느끼질 못하기 때문에, 이 세상을 아름답게 느끼면서 살아가려면 내 마음에 여유부터 챙기셔야 해요.
그 누구의 인생이 아닌 내 인생의 행복을 위해, 더 늦기 전에 다른 누가 아닌 내가, 내 삶의 주인공이 돼서, 내가 기뻐하는 삶을 펼쳐나가려고 노력하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