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메타럽 Sep 25. 2024

볼 빨간 사추기(늙으면 어떡하지?)

24. 알고 보면 부드러운 남자

 지금은 터프한 여자들도 많고 여기저기 부드러운 남자 투성이지만, 예전에는 남자는 이래야 하고 여자는 이래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었습니다. 베이비 부머들이 청춘이었던 시절에만 해도 ‘가부장적인 사회’라, 남자는 강해야 한다는 선입견과 편견이 팽배했었지요. 오죽하면 남자는 평생 세 번만 운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었을까요? ‘첫 번째는 태어날 때 울고, 두 번째는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세 번째는 나라가 망했을 때’라고요.. 심지어 어린 남자아이가 넘어져서 아프다고 울 때도 달래주기는커녕, “떼끼, 사내 녀석이 이런 걸로 울면 못써!” 이렇게 혼을 내곤 했었습니다. 그러니 성인 남성은 모름지기 남들 앞에서 절대로 울면 안 되는 사람이었습니다. 오죽하면 1970년대 유행했던 ‘아마도 빗물이겠지’라는 유행가는 가사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 사나이가 그까짓 껏 사랑 때문에 울기는 왜- 울-어

     두 눈에 맺혀있는 이 눈물은 아마도 빗물이겠지

그만큼 남자의 두 눈에 맺힌 눈물은 절대로 눈물이라고 인정할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 남자이기 때문이지요. 남자가 울면 예전에는 ‘남자답지 못한 남자’로 받아들여지던 사회였으니까요.      


 그러다 남성들의 이런 ‘감정 가리기’가 어느 한 광고 카피로 변화의 물살을 타게 됩니다. 그 광고 카피가 바로 ‘나도 알고 보면 부드러운 남자예요’라는 거였습니다. 정작 어떤 상품에 대한 광고였는지, 광고한 상품은 기억에 남지 않았어도, 오로지 이 광고 카피는 살아남았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툭하면 이런저런 상황에서 매력적인 남자라는 것을 홍보하는 용도로 계속 재활용되고 있습니다.  

   

 ‘알고 보면 부드러운 남자’라는 말은 겉으로는 까칠하고 무뚝뚝해 보이지만, 알고 보면 속은 부드러운 남자라는 뜻입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동경하는 유형인 ‘츤데레(ツンデレ)’와 비슷한 말이라고 할 수 있어요. ‘츤데레’는 애니메이션과 미소녀 게임 등에서 주로 묘사되는 인물의 성격 유형 중 하나를 일컫는 일본의 인터넷 유행어입니다. 원래 여성 캐릭터에 많이 쓰이다가 2010년대 들어서는 애니메이션이나 만화에서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사용되면서, 남성 캐릭터에 더 많이 쓰이고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겉으로는 퉁명스럽게 대하지만, 은근히 따뜻하게 챙겨주는 유형을 말합니다. 아마 웹소설 특히 로맨스 장르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아실 텐데, 요즘 웹소설 로맨스 장르의 남자 주인공들은 대개 이런 유형으로 그려지고 있지요. 일종의 내가 바라는 가상연애의 이상형이라고나 할까요.      


 그런데 ‘알고 보면 부드러운 남자’를 자처하는 시니어 가운데는, 유감스럽게도 알고나도 자처하는 바와는 달리 별로 부드럽지 않은 남자인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젊어서 부드럽지 않던 남자가 나이 들어 어느 날 갑자기 부드러운 남자가 되긴 실상 어려운 일이거든요. 사람 성정은 하루아침에 바뀌는 게 아니잖아요. 오죽하면 ‘사람이 갑자기 바뀌면 죽는다’는 얘기도 있을까요. 그래서 그런 가부장적인 가풍이 대대로 아직도 알게 모르게 이어져온 집들은, 며느리를 들이고 나서야 비로소 문제의식을 갖게 되기도 합니다. 


 게다가 우리 사회가 부드러운 남자를 선호하는 사회로 변한 것처럼 보여도, 남자는 섬세하기보다는 대범해야 한다는 편견이 여전히 존재합니다. 혹시 '그럼 대범하면서도 부드러우면 되지 않냐'라고 하시는 분들이 계실까요? 그런 얘기는 아마 여자분들이나 하실 테고, 남자분들은 그러면 '참 남자로 살기 어려운 사회가 됐다'는 얘기를 자조적으로 하실 겁니다.     


 또 부드러운 남자와 심성이 약한 남자를 오해하는 면도 있습니다. 특히 선거 때만 되면 일부러 후보의 부드러운 면을 강조하기 위해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연출해서 홍보하는 데 많이 사용하는데, 눈물을 참지 않고 흘린다고 해서 그걸 부드러운 남자의 상징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나이 들어 갱년기를 맞으면 남성은 상대적으로 여성 호르몬이 많아지게 되고, 그러면 드라마나 영화를 보다가도 눈물이 핑 돌 때가 많아지게 된다고 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다만 그런 상황에서 예전에는 눈물을 빗물이라고 우길 정도로 눈물을 애써 삼켰다면, 지금은 남자가 눈물을 흘려도 흉이 되지 않는 시대가 돼서, 마음 편히 눈물을 흘릴 수 있다는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특히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그야말로 잘리지 않고 직장생활을 하기 위해, 자신의 약점이나 상처들을 내보이지 않기 위해 단단한 껍질로 자신을 감싸고 지내던 분들은, 그 껍질을 벗어야 부드러운 사람인지 아닌지 알 수 있을 텐데요. 문제는 그렇게 산 세월이 길수록, 그 껍질이 단단하게 굳어져서, 벗고 싶어도 벗지 못하게 된다는 거지요. 게다가 그 껍질을 벗으려면 어떤 계기가 있어야 할 텐데, 그런 계기가 쉽게 주어지지 않잖아요.     


 그러니 ‘알고 보면 부드러운 남자’가 되려면, 그런 껍질을 한 겹 한 겹 벗는 노력부터 기울여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나를 옥죄던 껍질을 벗고 부드러운 남자가 되면, 무엇보다 나 자신부터가 가벼운 마음으로 여태와는 다른 제2의 인생을 즐길 수 있게 될 거예요. 사실 슬플 때 꾸역꾸역 참지 말고 눈물을 흘리면서 속시원히 울고 나면 카타르시스를 얻게 되고, 즐거울 때 체면 차리지 않고 깔깔 웃고 즐기면 인생이 훨씬 맛있어지잖아요.  

    

 그리고 ‘알고 보면’이라는 말은 아직 알기 전이라는 말이고, ‘알고나도 부드럽지 않은 남자’도 적지 않으니까, ‘알고 보면 부드러운 남자’ 보다 ‘알고 나니 부드러운 남자’ 면 좋겠습니다. 나아가 남자 여자 가리지 말고 ‘알고 나니 부드러운 사람, '알고 보니 베풀 줄 아는 사람’, ‘알고 보니 마음이 참 따뜻한 사람’으로 주변에 기억되면 더욱 좋겠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