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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타럽 Sep 25. 2024

볼 빨간 사추기(늙으면 어떡하지?)

33. 오빠 부대, 형 부대

 지금 K컬처가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데요. 이미 20년 전 '겨울연가'라는 K드라마가 일본에서도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 드라마 덕분에 일본의 중장년 여성들이 주인공역을 맡은 ‘욘사마’ 배용준 씨와 ‘지우히메’ 최지우 씨를 보러 비행기를 타고 우리나라에 많이 왔었지요. 그 일본 중장년 여성들로 인해 ‘겨울연가’의 배경이 됐던 남이섬과 춘천, 속초 등을 돌아보는 특별한 여행코스가 생기기도 했습니다. 요즘은 드라마나 영화 배경지가 하나의 관광상품 코스로 많이 개발되고 있지만, 그때만 해도 그런 게 없던 시절이어서 다들 놀라워했습니다. 그때 우리는 그런 일본의 중장년 여성들을 보면서 우선 ‘경제력이 있으니까 저렇게 자기 좋아하는 것에 마음껏 돈을 쓸 수 있구나’ 하는 부러움부터 가졌습니다.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 주부들은 가족을 위해 자신의 개별적인 욕구는 늘 뒷전으로 밀어둬야 하는 처지였거든요. 그다음에는 청춘도 아닌 분들이 팬덤을 형성한 것에 무척 생소함을 느꼈습니다. ‘아니 저 나이에 뭐 한다고, 연예인을 쫓아다니면서 열광을 할까?’ 의아하게 생각했었지요. 심지어 어른답지 못하다고 여기기까지 했습니다. 


 정말 그때는 미처 몰랐습니다. 우리도 그와 비슷하게 변할 줄은요. 다만 그때와 다른 것은, 지금은 우리 문화가 K컬처로 전 세계에 붐을 일으키고 있어서, 굳이 외국으로 발길을 돌리지 않아도 된다는 거지요. 특히 요즘 트로트 가요에 쏟는 시니어들의 열정은 실로 대단합니다. 오죽하면 2022년 5월 국내 음원 서비스 ‘멜론’의 인기곡 투표 ‘최애 수록곡 대전’에서 트로트 가수 임영웅이 BTS(방탄소년단)을 꺾고 우승을 차지하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을까요. 게다가 표 차이가 무려 41만여 표나 됐다고 합니다. 그래서 ‘국내 중장년 팬덤의 대표 주자가 글로벌 팬덤 아이돌 그룹을 꺾은 사건’으로 화제가 되면서 뉴스에 많이 보도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현상에는 당시 ‘멜론’의 투표 방법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멜론은 유료 회원권의 판매를 위한 방법으로, 무료 회원은 하루 1번 투표할 수 있지만, 유료 회원은 하루 5번 투표할 수 있도록 했거든요. 그러니 내가 사랑하는 가수, 내가 좋아하는 가수가 1위를 할 수 있게 하려면, 유료 회원이 되어서 투표를 5번 하는 게 훨씬 유리하기 때문에, 경제력이 있는 중장년 팬들은 이를 적극 활용한 거지요. 그러니 용돈 타서 쓰는 청소년들의 우상보다 중장년 팬들의 우상이 득표에 훨씬 유리했던 겁니다.      


 심지어 요즘은 중장년이 좋아하는 이런 트로트 가수들을 모델로 기용해서 광고하는 상품들은, 갑자기 매출이 껑충 뛰어오를 정도라고 합니다. 젊은 팬들이 자기들이 좋아하는 가수의 생일 이벤트로, 돈을 모아 지하철 광고판에 생일 축하 메시지를 띄운다든지, 소위 ‘굿즈’라고 해서 그 가수들을 모티브로 한 상품들을 사모으는 게 유가 아닌 겁니다. 


 요즘 이렇게 ‘구매 파워’를 가지고 적극적이고 활발하게 활동하는 시니어들을 ‘액티브 시니어’라고 부릅니다. 나이로 따지면 50세에서 74세 정도가 되겠지요. 문득 나는 젊었을 때 시니어인 나의 모습을 어떻게 상상했을까 되돌아봅니다. 솔직히 고백하면 지금의 많은 청춘이 그렇듯이 저도 아주 멀고 먼 미래의 얘기 같아서 관심조차 두지 않았습니다. 제가 방송작가 생활을 시작하던 때는 방송국 작가실에서 주로 펜으로 원고지에 원고를 썼는데, 당시 선생님으로 부르던 4.50대 대선배님들이 현역으로 활동하시는 걸 보면서 '나는 과연 저 선생님들처럼 나이 들어도 작가생활을 할 수 있을까' 잠깐 경이롭게 본 적은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현역으로 일하고 있는 저는, 이미 그 대선배님들이 활동하시던 나이를 넘어섰네요.

     

 요즘은 75세  이상인 분들 중에도 액티브 시니어로 사시는 분들이 점점 늘고 있습니다. 현재 액티브 시니어로 불리는 50세에서 74세 연령층은 지금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30% 이상을 차지하는 거대 그룹입니다. 그래서 이들이 주도하는 시장인 시니어 시장, ‘시니어 비즈니스’가 향후 전망이 밝은 소위 ‘블루 오션’으로 떠오르고 있지요. 그러니까 나이 든 분들에 대한 예전의 이미지와 요즘 액티브 시니어의 이미지는 '상전벽해(桑田碧海)'라고 할 만큼 크게 달라졌습니다. 예전에는 나이 들면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물러나 지내다가 생을 마감하는 게 일반적이었지만, 지금 액티브 시니어는 나이 들어도 활동적이고, 자신의 삶을 즐기는 걸 당연하게 여긴다고 할까요. 아니 오히려 나이 들수록 가족을 위해 살아온 자신 대신 진정한 자아를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자신을 실현하려고 하잖아요. 그래서 나의 삶을 즐기기 위해 좋아하는 취미생활을 하고, 여행을 하고, 한마디로 자신을 위한 투자에 아낌이 없습니다. 보건복지부가 발간한 ‘2020년도 노인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노인의 11.9%가 월평균 9시간을 건강관리, 운동 관련, 문화예술, 정보화, 어학, 인문학 등 학습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아마 모르면 몰라도 앞으로는 이 비율은 점점 더 빨리, 점점 더 커지게 될 겁니다.     


 그러니 나이를 잊고 좋아하는 젊은 가수 공연을 보러 가서 환호하는 오빠 부대, 형 부대 시니어들이, 이젠 주책없는 게 아니라 당연한 게 됐습니다. 아울러 이런 액티브 시니어들이 점점 고령화가 가속화되는 우리 사회를 활기차게 만들어가는 원동력이 될 거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오빠 부대, 형 부대 시니어 여러분 파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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