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사랑하는 방법
학창 시절에 열심히 외웠던 덕분에 지금도 몇 소절 기억나는 시가 몇 개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김소월’의 ‘진달래꽃’입니다. 물론 이 시는 ‘마야’라는 가수가 록스타일로 부른 가요 ‘진달래꽃’에도 가사로 활용돼서 더욱 잊히지 않는 시가 됐습니다. 학창 시절에는 시험을 위해 구절구절 분석하면서 억지로 외웠지만, 나이 들고 보니 촉촉한 감성으로 세상을 보는 데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함께 감상해 보실까요.
진달래꽃
김소월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寧邊)에 약산(藥山)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김소월 시인은 1922년에 이 시를 발표했다고 하는데, 저는 고교시절 교과서에 실린 이 시를 배우면서 시인이 이 시에 담은 뜻이 영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아니 좋은데, 사랑하는데, 왜 그냥 말없이 보내드린다는 거야?’
‘뭐라고? 나 싫다고 돌아서 가는 사람한테 예쁜 진달래꽃까지 따다가 뿌려준다고?’
‘좋으면 좀 매달려보는 게 정상 아니야? 그래도 싫다고 떠난다면야 돌아설 수밖에 없겠지만, 그래도 그렇지 나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나라고 주문을 외우든가, 그야말로 떠나는 길에 침이나 뱉어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이렇게요.
그런데 나이 들어 진정한 사랑을 알게 되니 시인이 시에 담은 그 심정이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대상이 꼭 연인이 아니더라도, 개, 고양이, 그리고 나무와 꽃, 심지어 풀이더라도 온전히 지켜주고 행복을 빌어주는 게 진정한 사랑이고, 그건 설령 나 싫다고 떠난다 해도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요.
쉬운 예로 요즘 1인가구가 많아지다 보니 외롭다면서 반려견을 키우는 분들이 많은데요. 펫숍에서 인형처럼 예쁜 강아지를 보고 한눈에 반해 사다 기르면서, 강아지가 아프거나 돈이 많이 들거나 어디 갈 때 거추장스럽다고 해서 유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건 강아지를 사랑해서 키운 게 아니라, 정말 일회용 소모품처럼 자기 욕망을 채우기 위해 키웠던 거잖아요. 게다가 그냥 유기하지 않고 학대까지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리고 학대를 넘어 죽이기까지 하지요. 정말 좋아하고 사랑한다면, 최소한 반려견이라는 이름 그대로 가족처럼만 생각해도, 절대 그런 짓은 할 수 없을 겁니다. 평범한 얼굴을 하고 그런 잔인한 짓을 저지르는 사람들과 이 세상을 함께 살고 있다는 게 참 무섭습니다. 지금 제가 동물학대를 예로 들었지만, 이런 동물학대를 경계해야 하는 것은 바로 그런 생명 경시의 잣대가 사람한테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 요즘은 사랑이라는 미명(美名)의 탈을 쓰고 저지르는 악질적인 범죄가 참 많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상대의 행복을 우선으로 생각하고 빌어주던 방식이, 무조건 나의 욕망을 위해 나의 사랑을 쟁취하는 식으로 변질되면서, ‘데이트 폭력’이니, ‘스토킹’이니 하는 섬뜩한 사건들이 툭하면 터지고 있습니다. 나 싫다고 떠나겠다는 사람을 폭력으로 제압해 감금해 놓고 갖은 학대를 한다든지, 또는 나 싫다는 사람을 계속 쫓아다니면서 일상생활을 하지 못하게 괴롭힌다든지, 심지어 나 싫다는 사람 집에 몰래 찾아가서 그 가족까지 살인하는 경우도 있었지요. 한마디로 참 사람 만나기 무서운 세상이 됐습니다.
게다가 요즘 이런 못된 범죄가 젊은 사람들 뿐 아니라, 나이 든 분들 사이에서도 벌어지고 있습니다. 평균수명이 길어지고 노년을 건강하게 보내는 것까지는 좋지만, 나이 들어서도 사랑하는 방법 하나 제대로 알지 못한다면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야말로 그때까지 세상을 헛산 거잖아요.
학창 시절 김소월의 진달래꽃을 배울 때 이 시의 주제는 ‘승화된 이별의 정한(情恨)이다’, ‘이 시는 임과의 이별에서 오는 슬픔의 절제와 인종(忍從)의 자세를 보여 주고 있다’라고 아무 감정 없이 달달 외웠다면, 나이 들면서, 또 사랑의 이름을 뒤집어쓰고 저질러지는 범죄들을 보면서, 정말 사랑하는 사람의 자세는 그렇게 가시는 님의 발길에 진달래꽃을 따다 뿌려주는 게 마땅하다는 걸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아마 종교가 따로 없어도 성경 ‘고린도전서’에 나온 사랑에 대한 구절에 대해선 많이 들어 보셨을 거예요. 바로 이거지요.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물론 성경에는 ‘누가 오른뺨을 치거든 왼뺨마저 돌려 대라’처럼 정말 이해하기 힘들고 실천하기 힘든 말이 많아서 이 ‘사랑’에 대한 말씀도 그렇게 이상적으로만 생각하고 단지 암송하면 멋진 구절 정도로만 여기곤 했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사랑하는 방법을 잘 모르거나, 잘못된 방법으로 사랑한다든지, 또는 사랑이 아닌데 사랑한다고 착각한다든지 하는 사람들도 많아져서, 왜 성경에서 ‘사랑하는 방법’을 그토록 구체적으로 나열했는지, 그 가르침에 새삼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방법에 있어서도 세상을 좀 더 오래 산 시니어들이 젊은이들의 본보기가 돼서 진짜 제대로 사랑하는 방법을 알려줘야, 젊은 세대도 그저 욕망하는 방법이 아니라 진짜 사랑하는 방법으로 사랑하는 대상을 제대로 사랑할 줄 알게 될 거라는 생각을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