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리뷰
감독 어맨다 킴은 작품 ‘TV 부처(TV Buddha)’를 본 후 백남준을 향한 강렬한 궁금증에 사로잡혀 전세계에 흩어진 그의 기록을 5년 동안 취합하였다고 한다.
다큐멘터리는 음악 학도였던 백남준이 전자 음악으로 전향하고 플럭서스의 핵심 인물이 되는 도입부로 시작한다. 야심차게 준비한 비디오아트 개인전(1963)의 혹평으로 그는 독일을 떠나 뉴욕으로 활동 무대를 옮긴다. 백남준이 맨하튼에서 찬사를 받으며 왕성하게 작품 활동을 펼치는 모습이 사진과 영상, 그의 편지글로 전개된다.
아방가르드 실험 운동이 허용되던 퀼른과 뉴욕의 시대적 분위기를 보는 것도 백남준을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비디오 신디사이저 (1968), 전자 초고속도로 (1974) 등의 작품과 휘트니 회고전 (1982), 과천의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백남준 첫 회고전 (1992)의 전시 모습도 생생히 담겨있다.
그가 B.C(Before Cage)라고까지 일컫는 존 케이지와의 만남은 이 다큐멘터리의 하이라이트다. 백남준은 그 운명적 만남 이후 실험 정신을 더욱 불태우며 확실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한다.
"존 케이지가 현대 음악의 문을 열었다면 백남준은 그 문을 통하여 비상하였다." - 내레이션 중
TV를 표현 매체로 선택한 그의 의도을 추측하면서 영상을 보면 여러 겹으로 쌓여진 이유를 찾을 수 있다. 그는 단짝 친구를 포함한 수많은 한국 사람들의 납북/피살 소식을 들었고, 이데올로기로 인한 색 구분이 팽배하던 당시의 고국을 지켜본다. 그는 인간이 만들어낸 사상의 위험성, '누가' 그 관념과 가치를 만들어 내고 있는가에 대하여 깊이 생각한다. 냉전시대를 겪으며 그 생각은 더욱 커져 간다.
텔레비전이 세상이 나오고, 그 앞에서 열광하는 사람들을 보며 그는 보이지 않는 메시지가 인간을 침윤하는 현상을 목도한다. 그는 TV의 소리와 이미지가 어떻게 '맹신' 속에서 진실처럼 자리 잡는가를 주의깊게 보았다.
백남준은 비디오 아트를 제작하여 텔레비전 모니터로 내보니는 식의 설치 작업을 통하여 스스로도 메시지를 던지기 시작한다. 마치 농담처럼 미디어를 비틀고, 격하하거나 (대량 생산한 TV를 고딕 탑처럼 쌓아 올리기), 격상시키며 (붓다와 조우하는 TV), 여과 없이 쏟아지는 일방적이고 무차별한 소통의 위험성과 폭력성, 허구성을 시사하였다. 마치 이데올로기가 세상을 지배했듯이 미디어가 그 자리를 차지하는 세상을 그는 예견한 것이다.
'백남준의 TV는 존 케이지의 음악적 실험과 다다의 우연성 등 아방가르드 운동을 확장하고 있다. 일상의 오브제인 TV 모니터를 선택한 것도 생각해 보면 뒤샹의 레디메이드 (ready-made)와 맥을 같이한다. 음악은 흐르는 게 아니라 움직이는 것이라며 바이올린을 묶어서 끌고 다니던 그의 초기 행보에서 보여주듯이 예술의 고귀성에 대한 비판 의식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그에게 유머는, 마치 그 자신과 세상을 대하는 방식과도 같아 보였다. 정치, 종교, 예술의 울타리 안에 뿌리박힌 관념을 그는 일순간 작품을 통하여 희화화한다. 그 지점에서 관객은 자신을 반추하게 되고, 사회적 현상을 마주할 수 있는 시선을 갖는다. 부조리극과도 같은 매커니즘이다.
그는 탈영토제국주의라는 본인의 용어처럼 일체의 경계나 장벽을 부정하였고, 철저히 부수고자 했다. 동양과 서양의 교차점에 관심을 두었고, 한국인으로서 남북의 경계가 사라지길 바랐다. 1984년 백남준의 위성 프로젝트《굿모닝 미스터 오웰》 이 나오게 된 동기- 전 세계 TV를 연결하면 다 통할 수 있다- 도 다큐멘터리에서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넥타이를 자르고, 피아노를 부수는 등의 행위예술로 '동양의 문화 테러리스트'로 불릴 때면, 자칭 '문화 깡패' 라 받아치며 선(線)을 넘나들며 선(禪)을 녹이고자 했던 저항적인 작가 정신도 영상 전체에서 찾을 수 있다. 그가 공고히 했던 작품세계를 설명한 글을 한 줄 덧붙인다.
개인적으로 Greene Street의 카페 Space Untitled에서 백남준이 김양수 (1세대 아트 딜러)에게 선물한 Elephant Installation을 종종 보았고, 2000년에 구겐하임에서의 백남준 회고전을 관람하기도 했다. 국립현대미술관에 재설치된 다다익선 《The More, The Better》도 가까이 보았지만 부끄럽게도 나는 백남준을 잘 알지 못했다. 그가 난해하다고만 생각하였다. 이번 다큐의 부제목이 '우리가 몰랐던 백남준의 이야기' 인 것을 보면 세계적인 아티스트 백남준에 대한 일반적인 이해가 얼마나 낮은지 짐작할 수 있다.
"예술가와 기술자의 통합"을 상상한다고 말하며 뉴욕타임스의 사이언스 섹션 읽기를 강조하던 백남준. 천재적이고 열정적인 그를 OTT에서 볼 수 있는 것은 큰 기쁨이다.
2005년 뉴욕의 코리아타운 식당 앞에서 나는 휠체어에 있던 그를 보았다. 빛나던 눈동자, 반갑게 한국어로 인사하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피아니시모(PP, 매우 여리게) 물이 흐른다. 낡은 괘종시계가 시끄럽게 울린다. 테이프 녹화기가 있다. 메조 피아노, 3분마다 3초가량 다음과 같은 소리가 난다. (1) 종소리, 벨소리(불교, 기독교) (3)프랑스 라디오 TV(프랑스 여자 아나운서) (4)쾰른 역의 안내 방송 (6)새소리 (7)이탈리아 여자 아나운서 (알레그로 모데라토…) "짧은 TV(감기약 광고) (10) 독일 TV 뉴스 남자 아나운서 목소리 (11) 종소리, 벨 소리(불교) (12) 젊은 이탈리아 여자 기도 소리 (13) <여러분 행복한 일요일 되세요> ⓒ 백남준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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