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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우시카 Sep 08. 2024

똥차, 꽃 그리고 개미

                        - 큰개미자리










4월도 이제 그 끝을 향해 부지런히 가고 있습니다. 2월 말부터 시작된 꽃몸살도 차츰 갈아 앉아가고, 이제는 꽃을 보려면 제법 멀리까지 가야 합니다. 쉬운 일이 아니지요. 이런 때는 그저 조용히 집안에 앉아 마음을 다스립니다.  



며칠 전 자동차 검사를 받았는데 몇 군데 문제가 있다고 하여 어쩔 수 없이 자동차 정비소로 갑니다. 10년 넘게 타고 다닌 내 차, 마치 내 몸처럼 익숙하고 편해서 누가 뭐라 해도 나는 이 차가 세상에서 제일 좋은 차라고 생각하고 있었답니다. 그런데 고장이라니... 정비소에서 여러 가지 검사를 해보시더니 그리 심각한 것은 아니고 잠시 기다리면 수리해 주시겠다고 합니다. 휴우~~ 정말 다행입니다. 이제 기다림의 시간, 습관처럼 근처의 땅바닥을 바라보며 어슬렁거려 봅니다. 꽃이 눈에 띄네요. 습관처럼 쪼그리고 앉아서 들여다봅니다. 어머나, 가까이서 보니 너무도 어여쁜 꽃이네요. 집이 멀지 않은 곳이었기에 바쁘게 뛰어가서 카메라를 가지고 나옵니다. 


수리를 위해 대기 중인 자동차들 밑으로 카메라를 들이대며 끙끙거리니 정비공 아저씨들이 궁금해하기도 하고 일하는 데 방해가 되어서인지 귀찮아하시기도 합니다. 그래, 이곳에 꽃이 피었다면 근처에도 분명 씨를 날렸을 터인즉 조금 더 찾아보자! 멀리 갈 것도 없습니다. 이곳저곳에 꽃이 피어있네요. 크랙 정원에 딱 맞는 꽃입니다. 흥분을 가라앉혀 봅니다. 작은 그 꽃을 들여다보는 사이 자동차도 수리가 끝났네요.  



집으로 돌아와서 이 꽃의 이름을 검색해 봅니다.

개미자리 속의 식물인 건 확실한데 ‘개미자리’인지 ‘큰개미자리’인지는 구분하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가장 확실한 동정(identification) 포인트는 종자 겉 부분의 돌기(있으면 개미자리, 없으면 큰개미자리)라는데 종자를 관찰해 보지 못한 나로서는 자신할 수가 없었지만 다른 자료 검색을 통해 일단은 큰개미자리로 이름을 정해 봅니다. ‘큰’과 ‘개미’, 잘 어울리는 조합은 아니네요.  


우리나라의 풀꽃 이름에는 ‘개미’가 들어간 것들이 몇 개 있습니다. <국가생물종목록>을 살펴보니 개미난초, 개미자리, 개미취 종류, 개미탑 등의 식물이 있네요. ‘개미’라는 접두어가 붙은 이유는 식물체 자체가 작은 경우, 또는 식물 전체의 크기와는 상관없이 꽃이 매우 작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실제로 본 적은 없는 개미난초의 경우도 찾아보니 꽃이 유난히 작은 것임을 짐작해 볼 수 있네요. 그러나 문제는 개미취입니다. 개미취는 키가 1m가 넘을 만큼 크고 꽃도 결코 작지 않습니다. 오죽하면 개미취 중 잎과 꽃이 작은 ‘좀개미취’가 따로 있을까요? 그렇다면 왜 이름에 ‘개미’가 들어가 있을까? 아하, 꽃줄기에 솜털이 개미처럼 붙어있어서 그런 이름이 지어졌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개미라는 글자를 가지고 있다 해서 식물이 다 작은 것은 아니네요. 이제 막 꽃과의 사랑에 빠져 그 이름을 알고자 하는 초보자들에게는 이런 것이 국명(일반적으로 불리는 이름)의 문제라면 문제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일관성이 부족하다고 해야 할까요? 물론 많은 꽃들을 만나고 그 이름을 익히고 또 공부하다 보면 큰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니 너무 부정적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국명 이외에도 식물들에게는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이름, 학명이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이 꽃을 보며 갑자기 ‘사기나 맥시마’라고 불러준다면 참으로 재미없고 삭막하게만 들릴 것입니다. 학명은 필요에 의해 붙여진 이름일 뿐 일반인이 사랑하는 꽃을 바라보며 불러주는 이름이 되기는 어렵습니다. 물론 학명이 전혀 불필요하다거나 그 중요성을 무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학명에 대해서도 조금만 알고 나면 때로 꽃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받기도 합니다. 

참고로 개미취, 벌개미취, 미역취 등 ‘취’가 붙은 식물들은 나물로 먹을 수 있는 것들입니다. 


자, 고민이 깊어집니다. 기본적으로는 꽃이나 식물체가 작을 때나 식물의 구조 중 일부가 개미를 연상시키는 경우 개미라는 이름이 붙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도 해봅니다. 작은 것이 개미만은 아닐 텐데 왜 꼭 개미라는 이름이 들어가야만 했을까?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면 또 다른 가지 가능성도 생각해 봅니다. 식물이 이처럼 작고 땅에 붙어 꽃이 피다 보니 벌이나 나비 등 비교적 큰 곤충들보다는 개미들에 의한 꽃가루받이가 이루어졌고, 그 결과 개미들이 사는 곳에 많이 피어난다는 의미로도 이런 이름이 붙지 않았을까 상상해 봅니다. 실제로 큰개미자리가 꽃을 피운 그곳에는 개미들이 바글바글, 부지런히 꽃을 드나들고 있었습니다.



이제 나름대로 정리해 봅니다. 개미처럼 작으며 개미들이 많이 있는 곳에서 살고 있는 꽃, 큰개미자리입니다.

한편 ‘자리’는 식물의 모습이 돗자리나 방석처럼 퍼진 형태를 가졌다는 의미입니다. 


생각이 난 김에 개미자리와 그 이름과 매우 비슷하게 느껴지는 꽃, ‘벼룩이자리’를 소개해보려 합니다. 


벼룩은 옛 조상님들과 꽤나 친하게(?) 지냈던 모양입니다. 최근에 유행하고 있는 빈대와는 달리 벼룩은 흡혈곤충이고 그렇게 때문에 여러 가지 전염병을 옮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식물에게 이런 해충의 이름을 갖다 붙였다는 것이 의아할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가까이서 부대끼고 살았던 존재이기에 어떤 꽃을 보았을 때 쉽게 연상이 되었을 수도 있겠지요. 벼룩이나 덮을 정도로 작은 잎을 가진 꽃이라는 의미라고 합니다.        

     




위쪽 사진은 아파트 담장 밑에 피어난 모습이고, 아래쪽은 접사 하여 본 사진입니다. 


사물을 확대해서 바라볼 때 우리는 아주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그냥 바라볼 때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으스스한 모습을 볼 수도 있습니다. 만약 조상님들께서 벼룩이를 접사 하여 보셨다면 외계인을 닮은 그 무시무시한 모습에 놀라서 저 꽃처럼 귀여운 아이에게 벼룩이자리라는 이름을 붙여주시지는 않았을 것 같네요. 반대로 확대했을 때에야 비로소 보이는 아름다운 모습도 있습니다. 너무도 작아서 눈길 주기 어려운 저 꽃을 접사해 보면 아래쪽 사진에서 처럼 환상적인 어여쁨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벼룩이자리라니요? '천사의 별꽃'이라 이름 붙여도 모자랄 것 같이 어여쁜 꽃이거늘...



일반적으로 꽃가루받이를 생각하면 나비나 벌을 떠올립니다. 그러나 꽃가루받이에 동원되는 곤충은 이들 이외에도 많습니다. 딱정벌레류, 야행성 박쥐와 나방, 작은 새, 심지어는 파리까지 동원됩니다. 개미도 빠질 수 없습니다. 크랙 정원의 작은 꽃들을 살펴보노라면 개미들이 부지런히 들락거리는 모습, 쪼그리고 앉은 내 발과 손으로 녀석들이 기어 올라오는 경험을 해 볼 수 있습니다. 물론 굳이 권장하지는 않습니다! 

이중 개미와 꽃은 꽃가루받이만이 아니라 다른 인연으로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자, 그러면 개미와 꽃 사이의 길고도 질긴 인연에 대해 간략하게 살펴보도록 합시다. 


여기서 잠시 구차한 변명을 해야겠네요. 나도 때로 구분하지 않고 식물과 꽃이라는 용어를 함께 쓰는 경우가 많은데 엄밀하게 말한다면 ‘꽃’은 속씨식물의 생식기입니다. 그러기에 모든 식물들이 꽃을 피우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문맥 상 어쩔 수 없이 식물과 꽃을 혼용하고 있으니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백악기 이후 지구 환경은 점차 따뜻해집니다. 이 시기 이전 지구의 육지는 주로 고사리와 같은 양치식물과 함께 겉씨식물 중 방울처럼 생긴 열매를 맺는 구과식물(일반적으로는 침엽수라고 하지요.)로 뒤덮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온난화의 결과는 식물의 식생에도 큰 변화를 가져오고 그 결과 약 1억 년 전부터 꽃을 피우는 속씨식물이 폭발적으로 증가합니다. 그 이전 초록만의 세상에 갑자기 형형색색의 꽃들이 피어난 것이지요. 상상해 보십시오. 갖가지 모양과 색깔로 피어난 지구의 모습이 그 이전의 모습과는 얼마나 달랐을지를요. 그런데 바람을 이용해 꽃가루받이를 하는 겉씨식물들과는 달리 속씨식물에게는 꽃가루받이를 해 줄 매개 곤충이 필요합니다. 그 결과 꽃을 따라 수많은 곤충들이 등장하여 꽃과 곤충의 공진화, 다채롭고 화려한 생명의 세계가 펼쳐지게 된 것이지요. 이처럼 꽃과 그에 어울리는 곤충이 함께 번성하게 된 현상을 ‘백악기 육상 혁명’이라고 합니다. 마치 생명의 진화의 역사에 있어서 ‘캄브리아기 대폭발’을 연상시킬 만큼 큰 변화가 일어난 것이지요. 이 혁명기를 지나면서 식물계에서는 속씨식물이 대세를 이루게 됩니다. 나는 가끔 눈을 감고 이 혁명적인 변화를 상상해 봅니다. 찬란한 색채의 향연이 펼쳐지는 대지, 생명의 약동으로 펄떡이는 새로운 지구...... 마치 심청이 아버지가 눈을 뜰 때 받았을 법한 감동이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모든 것의 파괴자 호모 사피엔스가 나타나기까지는 아직 긴 시간이 남았으므로 나는 안전하게 또 완전하게 그 황홀한 상상 속에 빠져들 수 있습니다.  


이처럼 화려하게 등장한 속씨식물과 함께 전성기를 맞이한 또 다른 생명체 중 하나는 아마도 ‘개미’ 일 것입니다. 많은 곤충이 그렇듯 개미 역시 꽃에서 먹이인 꿀을 얻습니다. 그러나 꿀 이외에도 개미는 꽃에서 얻는 것이 더 있습니다. 


꽃의 씨앗에 붙어있는 젤리 상태의 지방, 단백질 등 영양소 덩어리인 ‘엘라이오솜’은 그 풍부한 영양성분 탓에 개미들이 유충의 먹이로 좋아하여 자신의 집으로 가져갑니다. 왜 통째로 가져가는 것일까요? 무겁기도 하고 번거로울 텐데 말이죠. 그 이유는 엘라이오솜은 씨앗으로부터 떼어내면 급격하게 말라서 쓸모가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개미는 씨앗을 통째로 가져가야 하지요. 이렇게 가져간 후 엘라이오솜만 떼어 유충에게 먹이고 남은 씨앗은 쓰레기를 모아두는 공간에 갖다 버립니다. 씨앗은 쓰레기와 함께 버려지고, 쓰레기들은 이렇게 버려진 씨앗이 자라기 좋은 거름이 되기에 거기서 씨앗이 싹터서 다시 꽃이 피어나지요. 대단하지요? 주고받고, 기브 앤 테이크의 효율적이고도 멋진 관계입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의존하는 생명의 기본적 관계 중 한 예입니다. 

이렇게 엘라이오솜과 개미의 관계를 번식에 이용하는 식물들은 꽤 많다고 합니다. 엘라이오솜을 만드는 식물이 최소 11,000종, 최대 23,000종이나 된다고 하니 어찌 보면 엘라이오솜은 속씨식물의 번식에서 가장 일반적인 전략이라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우리 주위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제비꽃, 애기똥풀, 큰개불알풀, 얼레지, 깽깽이풀 등의 꽃도 그런 전략을 쓰는 식물입니다. 


개미자리라는 이름에 대한 생각을 하다 보니 너무 멀리 나간 감이 있네요. 개미자리도 이러한 번식 전략을 구사하는지에 관해서는 확실한 근거를 찾지는 못했습니다만, 개미자리 속의 식물들이 개미들의 먹이원과 서식처의 역할을 한다는 자료는 볼 수가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됩니다.  



탈이 난 자동차 때문에 속상했던 기억은 가물가물, 세상일에는 다 좋은 것만도 또 다 나쁜 것만 있지 않음도 다시 한번 깨닫게 됩니다. 고장이 난 자동차가 아니었다면 백내장으로 뿌연 제 눈이 이렇게 어여쁜 꽃을 발견하기는 꽤나 어려웠겠지요? 이제 자꾸 고장이 나가는 내 몸도 아직은 쓸모가 있을지 누가 알겠습니까? 가능한 아끼고 잘 유지해서 누군가, 어디선가 필요로 할 때 달려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기름 냄새와 쇠붙이 냄새가 어울린 그곳에서의 꽃 탐사, 뜻밖의 즐거움으로 가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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