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차, 꽃 그리고 개미

- 큰개미자리

by 나우시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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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도 이제 그 끝을 향해 부지런히 가고 있습니다. 2월 말부터 시작된 꽃몸살도 차츰 갈아 앉아가고, 이제는 꽃을 보려면 제법 멀리까지 가야 합니다. 쉬운 일이 아니지요. 이런 때는 그저 조용히 집안에 앉아 마음을 다스립니다.


며칠 전 자동차 검사를 받았는데 몇 군데 문제가 있다고 하여 어쩔 수 없이 자동차 정비소로 갑니다. 10년 넘게 타고 다닌 차, 마치 내 몸처럼 익숙하고 편해서 누가 뭐라 해도 나는 이 차가 세상에서 제일 좋은 차라고 생각하고 있었답니다. 그런데 고장이라니 정비소로 가서 여러 가지 검사를 해 봅니다. 다행스럽게도 그리 심각한 것은 아니고 잠시 기다리면 수리를 해주겠다고 하시네요. 이제 기다림의 시간, 습관처럼 근처의 땅바닥을 내려다보며 어슬렁거려 봅니다. 꽃이 눈에 띕니다. 쪼그리고 앉아서 들여다봅니다. 어머나, 가까이서 보니 너무도 어여쁜 꽃이네요. 집이 멀지 않은 곳에 있기에 바쁘게 뛰어가서 카메라를 가지고 나옵니다.

수리를 위해 대기 중인 자동차들 밑으로 카메라를 들이대며 끙끙거리니 정비공 아저씨들이 궁금해 하시기도 하고 일하는 데 방해가 되어서인지 귀찮아하시는 눈치도 보입니다. 그래, 이곳에 꽃이 피었다면 근처에도 분명 씨를 날렸을 터인즉 조금 더 찾아보자! 멀리 갈 것도 없습니다. 이곳저곳에 꽃이 피어있네요. 크랙 정원에 딱 어울리는 꽃입니다. 흥분을 가라앉히고 찬찬히 작은 그 꽃을 들여다보는 사이 어느덧 자동차도 수리가 끝났네요.


집으로 돌아와서 이 꽃의 이름을 검색해 봅니다.

개미자리 속의 식물인 건 확실한데 ‘개미자리’인지 ‘큰개미자리’인지는 구분하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가장 확실한 동정 포인트는 종자 겉 부분의 돌기(있으면 개미자리, 없으면 큰개미자리)라는데 종자를 관찰해 보지 못한 나로서는 자신할 수가 없었지만 다른 자료 검색을 통해 일단은 큰개미자리로 이름을 정해 봅니다. ‘큰’과 ‘개미’, 잘 어울리는 조합은 아니네요.


우리나라의 풀꽃 이름에는 ‘개미’가 들어간 것들이 몇 개 있습니다. <국가생물종목록>을 살펴보니 개미난초, 개미자리, 개미취 종류, 개미탑 등의 식물이 있네요.

‘개미’라는 접두어가 붙은 이유는 식물체 자체가 작기 때문이거나 또는 식물 전체의 크기와는 상관없이 꽃이 매우 작기 때문일 것입니다. 실제로 본 적이 없는 개미난초도 자료를 찾아보니 꽃이 유난히 작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개미취의 경우는 그 이름의 유래가 조금 다릅니다. 개미취는 키가 1m가 넘을 만큼 크고 꽃도 결코 작지 않습니다. 오죽하면 개미취 중 잎과 꽃이 작은 ‘좀개미취’가 따로 있을까요? 자료를 찾아보니 개미취라는 이름은 꽃줄기에 솜털이 개미처럼 붙어있어서 붙여진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개미라는 글자를 가지고 있다 해서 식물이 다 작은 것은 아니네요. 이제 막 꽃과의 사랑에 빠져 그 이름을 알고자 하는 초보자들에게는 이런 것이 국명 (일반적으로 불리는 이름)의 문제라면 문제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일관성이 부족하다고 해야 할까요? 물론 많은 꽃들을 만나고 그 이름을 익히고 또 공부를 하다 보면 큰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니 너무 부정적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국명 이외에도 식물들에게는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이름, 학명이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이 꽃을 보며 갑자기 ‘사기나 맥시마’ (Sagina maxima)라고 부른다면 참으로 재미없고 삭막하게만 들릴 것입니다. 학명은 필요에 의해 엄격한 규약에 따라 붙여진 이름이기에 일반인이 사랑하는 꽃을 바라보며 불러주는 이름이 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물론 학명이 전혀 불필요하다거나 그 중요성을 무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학명에 대해서도 조금만 알고 나면 때로 꽃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받기도 합니다.


참고로 개미취, 벌개미취, 미역취 등 ‘취’가 붙은 식물들은 나물로 먹을 수 있는 것들입니다.

작은 식물 이름에 붙는 접두어들은 다양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는 ‘애기’, ‘좀’, ‘꼬마’ 등이 있고 동물에 빗댄 것에는 ‘벼룩’, ‘병아리’ 등이 있지요. ‘개미’도 그 중 하나일 것입니다. 큰개미자리의 이름도 그 크기와 관련이 있겠네요. 한편 ‘자리’는 식물의 모습이 돗자리나 방석처럼 퍼진 형태임을 나타냅니다.

작은 식물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으니 개미자리와 이름이 비슷하게 느껴지는 꽃, ‘벼룩이자리’라는 샛길로 잠시 빠져 나가봅니다. 벼룩이자리는 따로 소개했으므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려 합니다. 다만 벼룩이자리라는 이름은 ‘벼룩이나 덮을 정도로 작은 잎을 가진 꽃’이라는 의미라고 하네요.

이왕 다시 언급되고 있는 꽃이니 사진으로 한 번 더 보고 가도록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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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쪽 사진은 아파트 담장 밑에 피어난 모습이고, 아래쪽은 접사 하여 본 사진입니다.


사물을 확대해서 바라볼 때 우리는 아주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그냥 바라볼 때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으스스한 모습을 볼 수도 있습니다. 만약 조상님들께서 벼룩이를 접사 하여 보셨다면 외계인을 닮은 그 무시무시한 모습에 놀라서 저 꽃처럼 귀여운 아이에게 벼룩이자리라는 이름을 붙여주시지는 않았을 것 같네요. 반대로 확대했을 때에야 비로소 보이는 아름다운 모습도 있습니다. 너무도 작아서 눈길 주기 어려운 저 꽃을 접사해 보면 아래쪽 사진에서 처럼 환상적인 어여쁨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벼룩이자리라니요? '천사의 별꽃'이라 이름 붙여도 모자랄 것 같이 어여쁜 꽃이거늘...



이제 다시 큰개미자리로 되돌아 나와 나 나름의 공상의 나래를 활짝 펴 보려 합니다. 혹시 개미가 이 식물의 꽃가루받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은 것은 아닐까? 실제로 큰개미자리가 핀 곳에는 개미들이 부지런히 꽃을 드나들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이들의 돈독한 공생 관계가 ‘개미’라는 이름을 선물했을지도 모를 일이라는 추정을 근거로 해서 말입니다.


이 상상의 밑그림은 ‘개미와 꽃의 공생관계’이니, 그 둘 사이의 긴밀하고도 오랜 인연을 설명해 보려고 합니다.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용어 사용에 대해 양해를 구하고자 합니다. 엄밀히 따지면 ‘꽃’은 속씨식물의 생식 기관을 의미하며 모든 식물이 꽃을 피우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독자분들의 이해를 돕고 문맥을 매끄럽게 이어가기 위해, 본문에서는 식물과 꽃이라는 용어를 섞어 사용하고 있으니 이 점 너그러이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백악기 이후 지구 환경은 점차 따뜻해집니다. 이 시기 이전 지구의 육지는 주로 고사리와 같은 양치식물과 함께 겉씨식물 중 방울처럼 생긴 열매를 맺는 구과식물 (일반적으로는 침엽수라고 하지요.)로 뒤덮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온난화의 결과는 식물의 식생에도 큰 변화를 가져오고 그 결과 약 1억 년 전부터 꽃을 피우는 속씨식물 (현화식물)이 폭발적으로 증가합니다. 그 이전 초록만의 세상에 갑자기 형형색색의 꽃들이 피어난 것이지요. 상상해 보십시오. 갖가지 모양과 색깔로 피어난 꽃으로 가득한 지구의 모습이 그 이전의 모습과는 얼마나 달랐을까요?


그런데 바람을 이용해 꽃가루받이를 하는 겉씨식물들과는 달리 속씨식물에게는 꽃가루받이를 해 줄 매개 곤충이 필요합니다. 그 결과 꽃을 따라 수많은 곤충들이 등장하여 꽃과 곤충의 공진화, 다채롭고 화려한 생명의 세계가 펼쳐지게 된 것이지요. 이처럼 꽃과 그에 어울리는 곤충이 함께 번성하게 된 현상을 ‘백악기 육상 혁명’이라고 합니다. 마치 생명 진화의 역사에 있어서의 ‘캄브리아기 대폭발’을 연상시킬 만큼 큰 변화가 일어난 것이지요. 이 혁명기를 지나면서 식물계에서는 속씨식물이 대세를 이루게 됩니다. 나는 가끔 눈을 감고 이 혁명적인 변화를 상상해 봅니다. 찬란한 색채의 향연이 펼쳐지는 대지, 생명의 약동으로 펄떡이는 새로운 지구... 마치 심청이 아버지 심봉사가 눈을 떴을 때 받았을 법한 놀라움과 감동이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모든 것을 파괴하는 존재인 호모 사피엔스가 나타나기까지는 아직 긴 시간이 남아있었을 터이므로 나는 안전하게 또 완전하게 그 황홀한 상상 속에 빠져들 수 있습니다.

이처럼 화려하게 등장한 속씨식물과 함께 전성기를 맞이한 또 다른 생명체 중 하나는 아마도 ‘개미’ 일 것입니다. 많은 곤충이 그렇듯 개미 역시 꽃에서 먹이인 꿀을 얻습니다. 그러나 꿀 이외에도 개미는 꽃에서 얻는 것이 더 있습니다.


꽃의 씨앗에 붙어있는 젤리 상태의 지방, 단백질 등 영양소 덩어리인 ‘엘라이오솜’은 그 풍부한 영양성분 탓에 개미들이 유충의 먹이로 좋아하여 자신의 집으로 씨앗을 가져갑니다. 왜 통째로 가져가는 것일까요? 무겁기도 하고 번거로울 텐데 말이죠. 엘라이오솜을 씨앗으로부터 떼어내면 급격하게 말라서 쓸모가 없어진다는 것이 그 이유입니다. 그래서 개미는 씨앗을 통째로 가져가야 하지요. 이렇게 가져간 후 엘라이오솜만 떼어 유충에게 먹이고 남은 씨앗은 쓰레기를 모아두는 공간에 갖다 버립니다. 씨앗은 쓰레기와 함께 버려지고, 쓰레기들은 이렇게 버려진 씨앗이 자라는 데 좋은 거름이 되기에 거기서 씨앗이 싹터서 다시 꽃이 피어나지요. 대단하지요? 주고받고, 기브 앤 테이크의 효율적이고도 멋진 관계입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의존하는 생명의 기본적 관계의 한 예입니다.

이렇게 엘라이오솜과 개미의 관계를 번식에 이용하는 식물들은 꽤 많다고 합니다. 엘라이오솜을 만드는 식물이 최소 11,000종, 최대 23,000종이나 된다고 하니 어찌 보면 엘라이오솜은 속씨식물의 번식에서 가장 일반적인 전략물질이라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우리 주위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제비꽃, 애기똥풀, 큰개불알풀, 얼레지, 깽깽이풀 등의 꽃도 그런 전략을 쓰는 식물입니다.


터무니없는 상상에 근거하여 긴 설명을 마치기는 했으나 개미와 꽃과의 이런 아름다운 인연은 사실 큰개미자리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큰개미자리의 ‘개미’라는 이름은 식물의 크기가 작고, 그 마디가 개미허리처럼 잘록해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일 뿐, 개미와의 공생관계 때문에 붙여진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실 개미는 효율적인 꽃가루받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문제가 많습니다. 앞에서 길게 설명했듯 개미는 훌륭한 ‘씨앗의 배달부’이기는 하지만 정작 좋은 꽃가루받이 매개자는 아닙니다. 왜냐하면 개미는 자신의 몸을 깨끗하게 유지하기 위해 가슴 뒷부분에 있는 ‘가슴샘’에서 강한 항생 물질을 분비합니다. 이 물질은 개미에게 박테리아나 곰팡이 포자가 붙어 증식하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꽃가루에 닿으면 꽃가루의 활력이 떨어지거나 죽어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 개미는 나비나 벌처럼 털이 많지 않아 꽃가루가 몸에 잘 달라붙지 않습니다. 게다가 날지 못하고 기어 다니기 때문에 다른 나무나 풀로 꽃가루를 옮기기보다는 같은 꽃 속에서만 움직일 확률이 높아 제꽃가루받이가 될 확률도 높습니다. 이런 이유들로 해서 개미는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면 일반적으로 훌륭한 꽃가루받이 곤충은 아닌 것이지요.


기껏 열심히 설명하고 나서 ‘속았지? 큰개미자리와 개미는 공생관계는 아니야!’라고 외치는 꼴이라서 민망합니다만, 따로 개미와 꽃들의 신기한 공생관계를 설명할 마땅한 자리가 없을 것 같아 여기서 설명해 보았습니다.



탈이 난 자동차 때문에 속상했던 기억은 어느새 가물가물해지고, 세상일엔 그저 좋기만 한 것도, 나쁘기만 한 것도 없음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만약 자동차가 고장 나지 않았더라면, 백내장으로 흐릿한 내 눈이 이토록 어여쁜 꽃을 발견하기란 무척이나 어려웠을 테니까요.


생각해 보니 자꾸만 고장이 나가는 내 몸도 아직 어디엔가 쓸모가 있을지 모를 일입니다. 부디 아끼고 잘 보살펴서 누군가, 혹은 어디선가 나를 필요로 할 때 기꺼이 달려갈 수 있기를 소망해 봅니다.

기름 냄새와 쇠붙이 냄새가 뒤섞인 거친 정비소 마당에서의 꽃 탐사. 그 짧은 여정은 뜻밖의 즐거움과 깨달음으로 가득한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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