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도 이타적이에요!

- 꽃마리

by 나우시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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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 봄이 오고 등 뒤에 내려쬐는 햇살이 따끈따끈하게 느껴질 즈음이 되면 마음도 따라서 달뜹니다. 작년 10월쯤 끝이 난 꽃구경이 겨울 내내 꽃에 대한 갈증으로 이어지다 보니, 봄은 어찌 보면 식물들보다 정작 사람들이 꽃피기를 애달프게 기다리는 계절이기도 합니다.

스멀스멀 봄이 오는 낌새가 느껴지고 남녘 어디에서는 발 빠른 꽃쟁이(?)들이 신상 꽃을 찍어 포스팅하기 시작합니다. 마음이 바빠집니다. 야속한 도시의 날씨는 아직도 아침, 저녁으로 차가운 입김을 내뿜고 봄꽃은 아직 더 기다리라고만 합니다. 드디어 3월이 오고 서울 근교의 들과 산에서 ‘너도바람꽃’을 필두로 꽃이 피기 시작하면 마치 오줌 참듯이 간신히 참아온 마음은 ‘꽃이 마려워, 마려워...’ 정신없이 꽃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곤 하지요.


급한 불을 끄듯 봄꽃을 보고 나니 마음이 조금씩 차분해집니다. 이제 여유를 즐기며 살살 동네를 산보하다 보면 어느새 ‘큰개불알풀’, ‘광대나물’, ‘애기똥풀’이 피어나있음을 발견하게 되지요. 바로 이때쯤 도시의 길거리 어디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꽃이 바로 이 ‘꽃마리’가 아닐까 합니다.

꽃마리라는 이름은 이 꽃의 꽃차례 (꽃이 꽃대에 달리는 모양)를 보면 바로 이해가 됩니다. 신기하게도 꽃차례가 돌돌 말린 모양인데 마지막 사진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아래쪽으로부터 차례차례로 펼쳐지면서 꽃이 피어납니다. ‘꽃말이’는 꽃마리가 되는 것입니다.


어느 꽃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꽃이 참으로 어여쁩니다. 하늘색의 꽃잎 (엄밀하게는 화관)은 다섯 갈래로 갈라졌는데 꽃의 안쪽으로 갈수록 색은 옅어져서 멋지고 은은한 그러데이션을 선보입니다. 그 끝 꽃의 안쪽에는 노란색의 돌기(유인색소)가 자리를 잡아 곤충들에게 꿀의 위치를 알리며 그들을 유혹합니다. 그 속에 암술과 5개의 수술이 들어앉아 있네요. 이 하늘색의 꽃잎은 피어난 날부터 차츰 색이 옅어지고 아울러 유인색소도 색이 살짝 바래집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꽃이 처음 피어났을 때의 하늘색과 노란색의 대비효과를 잃어가지요. 동시에 향기나 꿀도 거의 없어져 곤충들이 찾아오지 않게 됩니다. 아마도 꽃가루받이가 끝나면 더 이상 곤충을 유혹할 필요가 없어서 자신의 에너지를 아낌과 동시에 아직 꽃가루받이를 끝내지 못한 다른 꽃들에게 기회를 더 많이 주기 위한 미덕이 아닐까 짐작해 봅니다.


인간이 본래 이기적 존재인가 아니면 이타적 존재인가가 한 때 생물학계에서 뿐만 아니라 사회학, 심리학에서도 큰 관심을 모은 주제였음이 기억납니다. 유전자가 자기 복제 이외에는 그 무엇에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는 사실로부터 ‘이기적 유전자’라는 표현이 나왔다는데, 오해의 소지도 있지만 참으로 멋진 문학적 은유라고 생각합니다. 나도 용기를 내어 문학적인 표현으로 살짝 질문을 던져 봅니다. 유전자는 본래 ‘이기적’이라는데 사람들 중에는 아직도 이타적인 존재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얼핏 보는 것과는 달리 이타적 속성이 인간들에도 꼭 생존에 불리한 것만은 아니라는 작은 증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본래 진화의 과정은 개체의 행복과 불행에는 관심이 없으며, 종 전체의 생존에 이타적 속성이 어느 정도 필요하기 때문에 그러한 속성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해석한다면 당연히 이의를 달 생각은 없습니다. 어쨌거나 이 험한 세상에서 이타적인 인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존경하며 한편으로는 그렇게 사는 것이 정말 쉽지 않겠다는 걱정도 해봅니다. 이제부터 꽃의 세계에서도 이러한 이타성을 발견할 수 있는지 찾아봅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꽃의 이타성’이라는 말 자체가 전적으로 문학적 은유라고 생각하셔야 합니다.

‘인동덩굴’은 필 때는 흰색의 꽃으로 시작했다가 시들어 가면서 점차 노란색으로 변해갑니다. 그러면서도 좀처럼 시들고 낡은 꽃을 떨구지는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꽃으로부터 조금 떨어져서 바라봅니다. 흰색의 꽃만 있는 것보다는 흰색과 노란색이 섞여있으니 좀 더 화려해 보입니다. 그렇다면 곤충들을 유인하기에도 좋겠네요. 처음에는 황록색을 띄다가 날이 가면서 붉은색으로 변하여 두 가지 색의 꽃이 어울린 모습이 전제적으로 매우 화려하게 보이는 ‘병꽃나무’도 이와 비슷한 이유에서 그런 것이 아닐까 추정됩니다. 꽃들은 꽃가루받이라는 자신의 의무를 다한 뒤에도 다른 꽃들을 위해 할 일을 더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들 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꽃도 있습니다. ‘산수국’의 사연을 들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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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국은 마치 나비가 날아오르는 듯한 아름다운 꽃으로 사람들이나 곤충들의 눈을 유혹합니다. 그러나 알고 보면 화려한 나비와 같은 꽃은 암술과 수술이 없어서 씨앗을 맺지 못하는 가짜꽃(무성화)입니다. 이들의 역할은 오직 꽃가루받이를 해 줄 곤충들을 유혹하는 것입니다. 진짜꽃(유성화)들은 가운데 얌전히 들어앉아 있습니다. 가짜꽃의 화려함에 이끌려 엉겁결에 꽃가루받이를 해 준 곤충들 덕분에 본연의 임무를 무사히 마치게 된 이 가짜꽃들은 더 이상 곤충을 유혹할 필요가 없어지지요. 이때 놀랍게도 이 꽃들은 자신의 몸을 뒤집어버립니다. 화사한 얼굴을 감추는 셈입니다. 덕분에 아직 대사를 치르지 못한 다른 꽃들에게 기회가 조금 더 가게 되겠지요. 이쯤 되면 공동체의 번성을 위한 개체들의 희생과 협동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참고로 ‘수국’이나 ‘불두화’는 산수국과 생김새가 비슷하지만 산수국의 유성화 부분을 인위적으로 없애고 화려한 무성화만 남긴 꽃들입니다. 당연히 씨앗을 맺지는 못하겠지만 사람들이 알아서 번식시켜 주니 우리가 특별히 걱정해야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네요.)



식물은 생각(사고)이란 것을 하지 않을까요? ‘생각’이란 것은 무엇일까요? 오로지 인간만이 사고할 수 있다는 믿음이 과연 진실일까요?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을 보면 컴퓨터 과학의 선구적 인물인 앨런 튜링이 소위 ‘튜링테스트’라는 것을 제안하여 시행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기계가 생각하는 것이 가능한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하여 기계의 답이 얼마나 인간다운지를 평가하는 실험이었는데 주어진 질문에 대한 답 중 일부는 인간의 답과 구분하기 어려운 것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AI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게 되면 이런 구분은 점점 더 어려워지겠지요.


‘생각’이 무엇인지에 대한 우리들의 ‘생각’은 매우 편협하고 왜곡되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왜냐하면 생각이라는 것이 궁극적으로는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세계를 해석하고 그에 대한 적절한 대응을 모색하는 과정이라면 ‘생각함’이 왜 인간에게만 고유한 특징이 되는 것인지요? <뇌 없이도 생각할 수 있는가> (파코 칼보 지음, 하인해 옮김, 휴머니스트) 라는 책에서는 식물도 ‘지능을 가진 존재’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네요. 전문가의 연구가 아니더라도, 그저 꽃을 꽤나 오랫동안 보아왔던 일반인인 나도 그들이 가진 생존과 번식의 정교한 장치들에서 때로는 인간의 그것보다 훨씬 더 깊이 있는 ‘사고’의 흔적을 발견하곤 합니다. 여기에 더해 그들이 이타적이라고 말한다면 치기 가득한 논리적 비약이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으나 이것이야말로 아마추어의 만용이며 나 혼자 누리는 사상의 자유(?)입니다.



다시 꽃마리 이야기로 돌아가 봅시다.

이른 봄에 피어나는 꽃 중에서 꽃마리와 그 이름도 크기도 모양도 비슷하여 혼동하기 쉬운 꽃으로는 ‘꽃받이’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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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조금만 자세히 살펴보아도 두 꽃의 생김새가 전혀 다르다는 것을 눈치 챌 수 있습니다. 꽃이 매우 작다는 점과 꽃잎의 색이 하늘색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말이지요. 꽃차례가 돌돌 말리지 않는다는 점, 꽃잎 안쪽의 돌기가 흰색 (꽃마리는 노란색)이라는 점이 꽃마리와의 두드러진 차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런데 이야기하지 않고 넘어가기에는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점이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화관 안쪽의 돌기 모양! 사랑스러운 하트 5개가 보입니다. 이 작은 꽃이 당신을 향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라고 속삭이고 있습니다. 너무나 사랑스러워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것만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나만 꽃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꽃도 나를 이렇게 사랑해 주고 있었네요.

넘치되 무해한 사랑으로 마음이 따스하고 행복한 봄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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