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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우시카 Aug 20. 2024

크랙 정원의 문을 열며...

서울의 아파트에서 살고 있습니다. 


어느 날부터인가 꽃을 보게 되었고, 꽃을 좋아하게 되었고... 이윽고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아름답고 귀한 꽃들을 보러 다니기도 했습니다. 

그 꽃들의 아름다운 순간을 영원히 보존하기 위해 사진을 찍었습니다. 

꽃에 대해 공부도 해보았습니다. 

늘 터무니없이 부족하기만 했습니다. 공부도 사진도... 

꽃이 피어날 때면 보고 싶어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좋은 꽃친구들을 만나 그렇게도 보고 싶어 하던 꽃들을 볼 수도 있었습니다.

가슴 터질 듯한 사랑, 봐야만 풀리는 그리움, 하늘을 날 듯한 행복...

그러나 한편으로는 꽃을 보면 볼수록 목이 말랐습니다. 

꽃은 늘 멀리 있었고, 꽃을 볼 수 있는 시간은 너무나 한정되어 있었습니다.  


어느 날 문득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이 열정과 행복과 모험의 시간들, 그 의미에 대해...

그리고 내 남은 삶 속 지속가능한 꽃과의 관계에 대해... 



한 여름, 햇살 따가운 길을 걷습니다.

도시의 길은 흙을 덮어 만듭니다. 

햇살은 어떠한 자비도 없이 내 등에, 내 눈에 내려 꽂힙니다. 

아스팔트가 발라진 찻길의 갈라진 틈, 조밀하게 짜인 보도블록 사이의 좁은 공간, 시멘트로 메운 아파트의 담장 밑, 가로수가 심긴 자그마한 공간, 맨홀 뚜껑 사이... 견고한 성채라고만 생각했던 그것들 사이에는 이 있었습니다. 크랙 (crack)...

그리고 그 틈을 비집고 식물들이 자라나고 있었습니다. 

뭄을 낮춰 그들을 바라봅니다.

잎이 보이고, 꽃도 보이고, 그들의 삶도 조금씩 보이기 시작합니다. 

장마를 지나면서 그 틈새 정원은 어느새 울창(?)해졌습니다. 

내가 심지도 가꾸지도 않았으나 그들은 그곳에서 피어나고 또 다음 해에도 꽃을 피울 것입니다. 


나는 이렇게 해서 크랙 정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평생 아파트에서 사느라 마당을 가져 보지 못한 도시의 소시민인 내가 마침내 정원을 갖게 되었습니다!

내 크랙 정원의 꽃들은 손이 날랜 경비원 아저씨들, 부지런한 미화원 아저씨들에 의해 

자주 뽑혀 나갈 테지만 결코 소멸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발길에 밟히겠지만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사랑스레 바라보는 눈길은 없지만 조용히 자신의 삶을 살아낼 것입니다.  



이제 나의 크랙 정원을 열어 당신들께 보여드립니다.

나의 크랙 정원에 피어나는 꽃들을 자랑하려 합니다. 

애초부터 크랙 정원의 문은 닫혀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언제나 열린, 모든 이들의 정원이었습니다. 

그 틈새에 피어난 꽃들이 도시의 삭막함을 메워주듯 내 마음의 갈라진 틈도 메워주고 있습니다. 

오늘도 나는 크랙 정원을 거닐며 또 다른 마음으로 살아내야 할 내 삶을 생각해 봅니다. 

세상을 향한 들끓는 열정, 날카로운 시선은 내게서 멀어졌습니다. 

이제 뭉근한 온기, 마음으로만 느낄 수 있는 따스함을 편안한 속옷처럼 장착해 보려 합니다. 

꽃에 대해서든, 타인에 대해서든, 심지어는 허물 많은 나 자신에 대해서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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