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흰젖제비꽃
4월에 걸맞지 않게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날이 시작되었습니다. (벌써 며칠 전의 이야기가 되겠네요.) 한껏 따스하게 올라가던 기온이 다시 손이 시릴 만큼 차게 변했다는 것이 조금 억울(?)하기는 했지만 4월에 내리는 비쯤이야 그다지 놀라울 것도 새로운 것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비가 내리기 시작한 이틀째 거센 바람과 함께 진눈깨비가 쏟아지더니 급기야 거실의 창으로 보이는 풍경은 장관이었습니다. 앞산에서 쏟아져 내려오는 구름, 그 구름의 덩어리들이 폭풍 속 열린 창으로 들이치는 바람에 미친 듯 펄럭이는 커튼처럼 잠시 다른 세상을 보여줍니다. 아, 이건 무슨 일일까? 세상사 미친 모습인 걸까, 아니면 어지러운 내 마음속 풍경일까? 잠시 넋을 놓고 바라보았습니다.
그날의 거친 눈발은 겨울에 내렸던 그 눈과는 너무도 다른 것이었습니다. 어느 날 아침 눈을 떴을 때 배 밭 위로 소리 없이, 그러나 좀처럼 그칠 것 같지 않게 내려 온 세상을 덮었던 그 고요했던 눈 말입니다.
오래전 읽었던 한강의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를 찾아듭니다. 그녀의 소설은 그렇게 쉽게 읽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이 책을 끝까지 읽어낼 수 있을까 하는 불안과, 소설을 읽으며 필연적으로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그 감정의 소용돌이를 견딜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 그러나 이상하게도 휘몰아치는 봄의 눈보라를 보며 다른 어느 때보다 다급하게 꺼내 들고 읽기 시작했습니다.
내게 이 소설은 ‘눈’의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었습니다. 끝날 것 같지 않게 내리고 있었던 눈, 그리고 눈에 대한, 그 아스라하면서도 곱디고운 묘사가 소설 속 이야기보다도 더욱 선명하게 가슴을 파고듭니다. 아울러 작년 겨울, 그 어둠 속에서 감동으로 지켜보았던 노벨상의 풍경들을 되짚어 봅니다. 얼마나 큰 위안이었는지요! 조심스럽고 수줍었던 작가의 기자회견이나 연설을 들으며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던 그 밤의 기억도 또렷하게 생각납니다.
그토록 곱고 가슴속 깊이까지 스며드는 눈과는 전혀 닮지 않은, 거칠고 세차게 세상을 마구 때리는 눈... 그 짧은 눈의 광기(狂氣)가 지나간 후 보니 이제 막 나무에 달리고 있던 잎의 새 봉오리들이 우수수 떨어져 아스팔트 위에 널브러져 있었습니다. 채 피지도 못하고 떨어져 버린 그 지난한 준비의 시간들, 잉태의 기다림은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요? 소설 속 학살당한 아이들처럼... 세상은 한 번도 그리고 결코 공정하지도 쉽지도 않았던 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겨울을 지나며 나는 냉소주의자, 비관주의자가 된 것 같습니다.
그러나 다시 봄은 천천히 기운을 회복하여 우리에게로 와주었습니다.
바야흐로 제비꽃의 전성시대입니다. 크랙 정원에서도 가장 자주 보게 되는 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조금만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실 꽃마리와 서양민들레, 냉이의 기세가 강하는 점도 바로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꽃들에 비해 제비꽃은 상대적으로 큰 크기와 다양하고 이름다운 색깔로 눈길을 사로잡은 탓이기도 합니다.
보라색, 연보라색, 그리고 흰색의 제비꽃들...
산이나 들이나 물가에서나 그리고 크랙 정원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는 꽃.
한 송이씩 피어나기도 하지만 자그마한 부케처럼 오종종 모여 피어 더욱 어여쁜 모습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지요.
그러나 이 제비꽃 이야기를 하려면 큰 용기가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국가생물종목록만을 보아도 50종이 넘는 제비꽃들이 기재되어 있습니다. 이들에게 정확한 이름표를 붙인다는 것이 초보 아마추어인 나로서는 단순히 버거운 일이 아니라 불가능한 일이기도 하지요.
가장 흔하게 눈에 띄고 크랙 정원에서도 쉽게 볼 수 있으며 흰색의 꽃이 피어 가장 식별하기 쉬운 제비꽃인 ‘흰젖제비꽃’을 오늘의 주인공으로 뽑은 데에는 이런 사연이 있습니다.
영어명도 Milky-white violet입니다. 우유 빛깔의 제비꽃...
저토록 고운 흰색의 제비꽃, 눈길이 가지 않을 수 없는 꽃입니다.
흰색의 꽃은 대개 같은 종의 꽃에 비해 우아하게 보이기에 더욱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왜 제비꽃일까?
어떤 이들은 이 꽃이 강남 갔던 제비들이 돌아오는 그 시절에 피어나기 때문이라고 하고, 또 다른 이들은 이 꽃의 모양에서 그 이름의 유래를 설명하기도 합니다. 제비꽃의 뒤쪽으로 튀어나온 꿀주머니(거)의 모양이 제비를 닮았다는 뜻에서 유래한 이름이라는 것이지요.
내친김에 제비꽃의 구조를 아주 간단하게 살펴보고 가도록 합니다.
왼쪽의 사진을 보면 2장의 윗꽃잎(상판)과 역시 2장의 옆꽃잎(측판, 곁꽃잎이라고도 합니다.), 그리고 넓적한 모양을 한 혀모양꽃잎(설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자주색의 줄무늬가 선명합니다.
오른쪽의 사진의 옆모습이 보이는 꽃의 뒤쪽으로 삐죽하게 긴 구조물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꿀주머니, 꽃뿔, 거라고 하는 구조입니다. 이 꿀주머니의 모양이 제비를 닮았다고 해서 그 이름에 제비꽃이 되었다는 것이지요. 물 찬 제비처럼 날렵하게 보였던 것일까요?
제비꽃을 오랑캐꽃이라도 합니다.
꽃의 이미지와는 다소 어울리지 않지만 이런 이름의 유래도 비슷하게 전해지네요. 즉 이 꽃이 피는 시기에 오랑캐들이 자주 쳐들어왔기에 오랑캐꽃이며, 또는 꽃의 모양이 오랑캐들의 머리 모양(변발)과 닮아서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는 것이지요. 어릴 적에는 오랑캐라는 발음이 신기하여 오랑캐꽃, 오랑캐꽃이라고 불러 보기도 했습니다.
도심의 크랙 정원에서까지도 이렇듯 다양한 제비꽃을 볼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제비꽃의 적응력과 번식력이 강하다는 징표겠지요. 제비꽃의 번식 전략에 대해서는 두 가지 정도를 이야기하고 지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그 첫 번째는 개미를 이용한 번식전략입니다. 이 이야기는 이미 ‘큰개미자리’ 이야기에서 자세히 설명했으므로 여기서는 간단하게 되짚어 보는 것으로 끝내려 합니다. 즉 씨앗에 엘라이오솜을 붙여 개미를 유혹한다는 것, 개미가 자기 집으로 씨앗을 가져가 엘라이오솜만 떼어 이용한 후 씨앗은 개미집 바깥으로 버린다는 것, 이러한 방법을 통해 곳곳에 자손을 남길 수 있는 것이지요.
두 번째의 전략은 폐쇄화(닫힌 꽃)를 이용한 제꽃가루받이입니다.
제비꽃도 다른 모든 꽃들과 마찬가지로 딴꽃가루받이를 좋아합니다. 유전적 다양성을 얻기 위함이지요. 그러나 이 딴꽃가루받이는 곤충들의 협조가 없으면 불가능합니다. 곤충의 수가 줄어드는 계절이 되거나 혹은 이상고온이나 건조 등 번식이 어려운 여건이 되면 스스로의 힘으로도 꽃가루받이가 가능한 폐쇄화를 피웁니다. 폐쇄화란 말 그대로 봉오리가 열리지 않는 꽃입니다. 닫힌 꽃봉오리 속에서 제 꽃의 꽃가루를 암술머리에 발라 가루받이를 끝내는 방식입니다. 사실 이 방법은 딴꽃가루받이에 비해 수정 확률도 높고, 또 곤충을 유인하는 꿀을 만들 필요가 없기 때문에 에너지 사용의 측면에서도 매우 효율적인 방법입니다만, 유전적으로 열성인자의 발현 가능성이 높으므로 길게 본다면 위험한 방법입니다. 제비꽃은 이 두 가지 방식의 꽃가루받이를 다 이용함으로써 유전적 위험성을 줄이면서 동시에 수정 확률도 확보해 두는 셈이지요. 대단히 영악하고 조심스러운 번식 전략입니다.
위쪽 사진은 이렇듯 영리한 전략을 총동원해서 만든 소중한 씨앗의 모습입니다. 이 터진 씨방 속 씨앗의 모습도 제비꽃을 보는 큰 즐거움 중 하나입니다. 단지 아쉬운 것은 흰젖제비꽃의 폐쇄화의 사진을 찍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올해가 다 가기 전 꼭 찾아내어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아래의 사진은 돌 틈 약간의 흙을 따라 주르륵 피어난 모습입니다. 저토록 열악한 환경에서도 제비꽃은 풍성하게 꽃을 피웁니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제비꽃은 그 종류도 많고, 그 특징을 다 알기도 어려워 내가 구별할 수 있는 것을 꼽아보니 몇 개 되질 않습니다. 그나마 어떤 것들은 자신도 없고요. 그중 비교적 쉽게 크랙 정원에서 볼 수 있는 몇 가지를 소개해 봅니다.
<제비꽃>
<호제비꽃>
<콩제비꽃>
<서울제비꽃>
유난히 변덕이 심한 4월의 봄날입니다.
무슨 이유 때문인지 올해 유난히 알레르기 반응이 심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훨씬 열악한 환경에서도 이런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는데 한 달 가까이 계속되는 감기와 비슷한 증상에다가 천식까지... 우울함에 빠져들려는 자신을 다잡고 또 다잡아 봅니다. 천식이라는 증상은 서있을 경우보다는 누웠을 때 심해지는 터라 잠을 자야 하는 시간이 오면 은근히 두렵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면 수면 부족으로 낮에도 머릿속이 흐릿합니다. 그래도 집안일을 하고, 책을 읽고, 꽃을 보러 산책을 나가고 일상을 지키려 애쓰고 있습니다.
모든 생명들은 다 자기 나름의 어려움과 고통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흔하다고 해서 그 고통의 크기가 작은 것도 아닙니다. 어찌 보면 살아간다는 것은 매 순간이 시련의 연속일지도 모릅니다. 며칠 전의 진눈깨비와 폭풍 같았던 바람은 어쩌면 그런 삶의 어려움을 축약해서 보여준 한 장면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비가 부슬거리며 내리는 날에 찍은 3번의 사진을 들여다봅니다. 꽃줄기에도 잎에도 꽃잎에도 빗방울이 맺혀 있습니다. 연약한 몸체에 비해 빗방울은 버거울 만큼 무거워 보입니다. 시련이 지나치면 간혹 무더기로 쓰러져 버리기도 하지만 그래도 많은 꽃들은 의연히 버티고 서있습니다.
내 눈에 띄어 만나게 된 꽃들은 모두 시련을 이겨내고 꽃을 피워낸 용감한 생명체들임을 생각합니다. 고마운 일입니다. 그 꽃과 내가 만나는 일은 일상에서 경험하는 작은 ‘기적’ 일지도 모릅니다.
다시 읽은 소설에서 특히 나를 감동시켰던 부분은 두 여주인공이 서로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들이었습니다.
인선아...
경하야...
그 깊은 울림이 있는 목소리를 상상합니다.
지쳤으되 따스한 목소리... 세상살이가 너무도 힘이 들 때 서로가 서로를 부르며 찾는 그 목소리...
나도 기적같이 만난 꽃을 조용히 불러봅니다.
흰젖제비꽃, 내 순결한 작은 꽃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