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아파서 글을 쓰지 못했다. 한창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릴 때는 안 걸리더니, 뜬금없이 지금 걸려버린 것이었다. 안 그래도 요즘 아픈 학생들이 많아서 옮을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그 생각을 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앓아누워버렸다. 하지만 그래도 걱정해주는 직장 동료들, 눈치보지 않고 병가를 낼 수 있는 업무환경이 있어 다행이었다.
열도 나고 근육통도 있었는데, 무엇보다 인후통이 너무나 심했다. 밤에는 침을 삼킬 때마다 칼을 삼키는 것 같은 통증이 느껴져서 잠을 설치기도 했다.
퇴근하고 항상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는 것이 일과였는데, 아프고나서는 바로 집에 돌아와 쉬기 바빴다. 평소 주말에도 이곳저곳 놀러다니고, 교회도 가며 바쁘게 지냈는데 이번 한주는 정말 집에서 푹 쉬기만 했다. 사실 토요일 쯤 되서는 집 밖을 뛰쳐나가고 싶은 마음이었다. 얼마전 재테크 공부를 해보겠다며 야심차게 산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도 잘 읽히지 않고, 볼만한 OTT 프로그램도 없어 하루종일 먹고 자기만을 반복했다. 아플 때는 또 달고 짠게 얼마나 땡기던지. 평소에는 잘 시켜먹지도 않던 배달음식과 디저트들을 잔뜩 시켜먹기도 했다.
아프고 나니 비로소 건강의 중요성이 몸으로 와닿았다. 내가 좋아하는 책을 읽고,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건강한 몸이 받쳐줘야 하는 것이었다. 아프기 전에는 일을 한다고, 또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한다고 운동은 늘 뒷전이었는데, 다시 운동을 시작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또한 건강한 음식을 챙겨 먹어야겠다는 마음 역시 가지게 됐다. 아팠던 것도 나름 의미가 있었다. 더 나은 나, 더 건강한 나를 위해 노력해야겠다는 다짐도 하게 되었으니.
몸이 아프니 사실 짜증도 많아졌었다. 괜히 남자친구가 신경써주지 않는 것 같아 전화로 투정을 부렸다. 하지만 나의 짜증에 화내지 않고 장난을 치며 달래주는 남자친구의 따스함에, 잔뜩 뿔났던 나의 마음도 금세 녹아버렸다. 이번 주말에도 얼굴을 보지 못해 자신이 얼마나 허전한지 유머를 섞어 상세하게 설명해주는 다정한 사람이 옆에 있어 감사하다. 전화를 받기 전에는 바닥을 치던 기분이, 고작 몇분의 대화로 몽글몽글해졌다.
다음 날에는 내가 전날 부린 투정이 무색하게, 도넛을 잔뜩 사다 안겨주었다.
몸이 어느정도 회복되고, 오랜만에 카페에 가서 책을 읽기로 결심했다. '오사카 시오빵'이 유명한 카페에 가기로 했는데, 평소 소금빵을 좋아하는 편이라 아주 큰 기대를 안고 갔다. 기대했던 대로, 시오빵 전문 카페는 뭔가 달랐다. 바삭하면서도 쫀득한 빵과 버터의 풍미가 라떼와 잘 어울렸다. 카페에서 서분거리며 수다를 떠는 사람들, 친절한 종업원, 좋은 음악, 맛있는 시오빵과 라떼가 새삼 감사하게 느껴졌다. 이렇게 일상이 소중한 거구나. 크게 아팠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일주일 간 격리 생활을 하고 난 후 세상을 바라보니 모든 게 아름답고 소중했던 것 같다.
얼마전 SNS에서, 한 영상을 보게 되었다. 지하철역에서 뭔가 억울한 일을 겪은 듯한 취객이 난동을 부리는 모습이었다. 세상에 대한 원망과 억울함에 분을 이기지 못해 욕설을 내뱉으며 경찰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그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경찰도 어쩔 줄 몰라 하는 상황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던 한 청년이 갑자기 뚜벅뚜벅 걸어와 그 취객을 안아주는 것이었다. 좀전까지도 몸부림을 치던 취객은 자신을 안아주며 온몸으로 '고생 많았어요'하며 위로해주는 청년의 모습에 언제 그랬냐는듯 아이처럼 금세 잠잠해졌다.
삶은 사실 우리가 인식하지 못해서 그렇지, 아름다운 것들로 가득 차 있다. 소중한 가족, 건강한 몸, 좋은 날씨, 주린 배를 채워주는 따뜻한 음식, 일면식도 없는 자신을 위로해주는 지나가던 행인까지.
단 한 순간도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영국에는 이런 속담이 있다고 한다.
"Every cloud has a silver lining." (모든 구름에는 은빛 안감이 있다)
때로는 삶이 너무나 어둡고 막막해 먹구름으로 가득한 것 같더라도, 우리가 그 안에 있는 은빛 안감을 발견할수만 있다면 우리는 삶을 소중하게 여길 수 있다.
그렇다면 나의 일상에 숨어 있는, 그 은빛 안감들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