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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 Sep 04. 2024

바나나 튀김과 망고 아이스크림


 교회에서 기회가 되어, 선교 차 필리핀을 방문하게 되었다. 코로나 19가 퍼지기 직전, 친구와 세부를 온 적은 있었는데 당시에는 관광지만 돌아다녀서 필리핀이라는 나라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관광지를 돌아다니지 않고, 직접 현지 사람들과 부딪쳐보며 그들의 삶을 옆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우리가 간 지역은 빌리지라고 불리는 중산층 주민들이 사는 곳과, 빈민촌이 바로 붙어 있는 지역이었다. 이 두 동네 사이는 벽이 가로막고 있었는데, 빈민가 사람들은 과거 벽 안으로 자유롭게 들어오지도, 빌리지 사람들과 자유롭게 교류하지도 못했다고 한다. 특히 빌리지 사람들의 차별과 혐오가 심했다. 유치원이나 교회 등에 빈민촌 사람들이 있으면, 빌리지 사람들은 바로 그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렸다. 심지어는 빈민촌의 사람들이 넘어오지 못하게 벽 위에 뾰족한 못들을 깔아놓기도 했다.

 빈민촌의 모습은 한국에서는 절대로 볼 수 없던 것이었다. 나무 판자 같은 것들로 얼기설기 대강 지은 집들과, 에어컨도 선풍기도 없이 그 더위를 그저 견뎌내고 있는 사람들. 수도도, 전기도 없어 펌프로 물을 끌어올려 바깥에서 다들 옷을 입고 샤워를 하고 있었다. 길가는 비가 와서 진흙으로 엉망진창이었고, 아이들은 다 헤진 옷을 입고 더러운 물 웅덩이에서 첨벙이며 놀고 있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그곳의 사람들은 밝은 웃음으로 우리를 맞아주었다.

 하루는 빈민촌 출신이며 현재 교회 센터에서 일하고 계신 아주머니께서 우리에게 바나나 튀김을 만들어 주셨다. 한국에서는 먹어볼 수 없는, 달콤하면서도 바삭한 맛이 인상적이었다. 고급 음식도 아니고, 투박하지만 아주머니께서 해주신 바나나 튀김의 맛이 아직도 생각난다.


 빌리지는 깔끔하지만 삭막한 분위기였다. 우선 빌리지가 너무 크고, 사람들이 밖에 잘 있지 않아 인사를 주고 받기도 힘들었다. 큰 마트와 커피숍이 있고, 다양한 가게들도 있었다. 하지만 인간적인 정은 없었다. 차가 돌아다녀서인지 아이들도 뛰놀지 않았고, 어른들도 바쁜 일상에 서로를 지나치기 바빴다. 나는 이 동네가 극단적으로 드러내는 불평등과 빈부격차에 마음이 불편해졌다. 동시에 인간의 이기심과 악한 면모도 보았다. 그래도 희망은 있었다. 이곳에서 지내다 보니, 교회를 통해 빈민촌 사람들과 교류하는 빌리지 사람들도 만나게 됐다. 요한이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는 빌리지 출신으로 현재 삼성에 근무하고 있었다. 그는 내게 자신의 상사가 한국인이라 한국 문화가 익숙하다고 했고, 언젠가는 한국에 방문하고 싶다고 했다. 그와 그의 어머니는 빌리지의 사람인데도, 꾸준히 빈민촌 사람들과 교류하며 생활을 공유하고 있었다.

 하루는 BGC라는 부촌에 다녀오게 되었다. 이곳은 필리핀의 최상위층들이 모인 곳이었다. 분위기는 우리나라의 여의도와 같은 느낌이었다. 높은 건물들과, 다양한 쇼핑거리가 있었다. 이곳에서 식사할 기회가 있었는데, 한 끼 식사와 커피값이 각각 필리핀 사람들의 하루 일당에 준했다. 물론 우리나라 돈으로는 얼마 되지 않지만, 이곳 필리핀 사람들에게는 굉장히 부담스러운 가격이었다. 지금 빈민촌에 있는 사람들은 캔과 가공식품으로 식사를 떼울 때가 많다는데. 위화감이 느껴졌다.


 하루는 빈민촌 근처에서 쿠킹 컨테스트를 했었는데 그곳의 친구들은 고기를 먹을 일이 없다보니 정신없이 고기를 먹고 남은 것들을 남김없이 싸갔었다.

한끼 식사도 제대로 못하는 이 친구들을 생각하니, 오늘 내가 먹은 커피와 식사가 괜히 미안해졌다.


 저녁에는 몰에 가서 기념품들을 사고, 이것저것 쇼핑을 했다. 몰에서 식사도 하고, 망고 아이스크림도 먹었다.


 필리핀에서의 보낸 일주일은 나에게 많은 인상을 주었다. 우리나라보다도 훨씬 심각한 빈부격차가 몸으로 와닿았고, 이곳 사람들이 주었던 따스한 애정이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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