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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 Aug 27. 2024

프로슈토 오픈 샌드위치


 작은 것도 귀하게 여기는 행복한 사람들의 삶의 기술을 '음미하기(savoring)'한다. 음미하기란 소소한 현재의 즐거움을 만끽하는 마음의 습관을 의미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랑게르한스 섬의 오후>가 유명해지면서 우리 사회에서 자주 인용되기 시작한 소확행이라는 단어는 이 음미하기의 중요성을 환기시킨다. 갓 구운 빵을 손으로 찢어 먹는 것, 정결한 면 냄새가 풍기는 하얀 셔츠를 머리에서부터 뒤집어쓸 때의 기분, 겨울밤 부스럭 소리를 내며 이불 속으로 들어오는 고양이의 감촉 등 소소하게 음미할 것들은 이처럼 우리 일상 곳곳에 있다.     최인철, <굿 라이프>

                                                     


 돌이켜보면 나의 삶은 감사할 일들로 가득 차 있다. 이를 일부러 인식하고 기록하려고 노력하기 전에는 잘 몰랐는데, 내 곁에는 소중한 것들이 참 많았다.


 퇴근하고 새로운 카페에 와서 프로슈토 오픈 샌드위치와, 레몬 마들렌, 아이스 라떼를 먹었다. 그냥 인터넷으로 갈 만한 곳을 찾아보다가 한번 가볼까 하고 들어와 본 곳인데, 공간이 아기자기하고 예뻐서 참 좋았다. 적당히 소란스럽지 않은 음악과, 운영하고 있는 분들의 감각과 개성이 담긴 인테리어들, 바질페스토와 썬드라이토마토가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는 오픈 샌드위치. 나는 퇴근하고 새로운 카페를 찾아가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데, 이렇게 완벽한 공간을 찾으면 그 기쁨이 배가 된다. 오늘도 별일 없이 무사히 퇴근하고, 카페에 와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좋아하는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음에 감사하다.

 카페에 앉아서, 소중한 사람들에게 연락을 하기도 했다. 소소하게 일상을 공유하고, 또 걱정과 위로를 주고받을 수 있는 친구들이 있다는 점에서, 고요하고 은밀한 기쁨이 밀려온다. 어제는 아파서 출근을 못했는데, 출근하자마자 괜찮냐며 조심스레 물어주는 직장 동료들이 있음에도 감사하다. 최근에는 큰 슬픔을 겪은 친구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 에그타르트를 샀다. 내가 시험을 치며 여러모로 힘들 때 묵묵히 옆에서 응원해주었던 친구였다.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작은 선물도, 누군가 옆에 있으며 함께 기도하고 있음을 전달할 수 있는 효과적인 매개체이다. 나의 위로가 따뜻하게 와닿았으면 좋겠다. 누군가에게 따뜻한 위로의 말과 선물을 건넬 수 있음에도 감사하다.


 오늘은 혼자서의 여행을 계획해보았다. 한글날 연휴에 마침 남자친구도 일이 있다 해서, 동료 국어선생님이 추천해준 파주 북스테이를 혼자 가보기로 했다. 혼자서는 처음 가보는 여행인데, 가서 여유롭고 고요하게 시간을 보낼 것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가슴이 설렌다. 조용히 책을 읽으며 하루를 온전히 보내고, 또 근처 도서관과 박물관을 구경하며 1박 2일을 알차게 채워봐야겠다.


 요즘에는 교회에서 하고 있던 '청각장애인 자막 봉사'를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타자가 빠른 편은 아니지만, 작게라도 헌신해서 불편함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랬다. 기도로 예배가 끝나고 감사하다는 몸짓을 해주시는 집사님께 오히려 내가 더 감사했다. 작고 보잘것 없는 나인데도 이렇게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진심으로 기뻤기 때문이다.


  미국에 있는 동생은 종종 자신의 일상을 사진으로 보내주곤 한다. 먼 곳에 있지만 서로 삶을 나눌 수 있는 소중한 가족이 있음에 감사하다.


 내 삶은 이렇게 감사할 일들로 가득 차 있는데, 불평불만하거나 때로는 우울해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어느 날은 내가 우울한 기분에 축 쳐져서, '나 요즘 좀 우울해'라고 친구들에게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때 친구들이 '너도 걱정이 있어?'라며 정말 놀란듯한 표정으로 물었다. 친구들에게는 내가 걱정과 우울이 없어보였나보다. 순간 '어, 왜 저렇게 생각하지?' 싶었지만 이내 '아, 내가 평소에 하루를 기쁨으로 살고 감사로 사는 게 보였나보다'하고 내심 기분이 좋아졌다.


 우리의 기분은 우리가 선택하는 것이라고 한다. 내가 우울하기로 선택하면 정말 우울해지고, 기뻐하기로 선택하면 정말 기뻐진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의 마음가짐을 바꾸는 것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슬픔과 괴로움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사소한 것부터 감사하는 마음으로 바라본다면, 또 하루를 음미하며 살아간다면 어제보다는 오늘 조금이나마 행복해지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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