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푹 빠진 것이 있는데, 바로 유럽 미술사와 세계사 공부이다. 내년 겨울에 유럽 여행을 계획하고 있어 이왕 가는 거 제대로 준비해보자 하는 것이 그 시작이었다. 프랑스 파리, 스페인 바르셀로나, 이탈리아 로마 세 곳을 2주만에 다 돌아봐야 하기에 각 관광지의 핵심적인 내용들을 다 파악하고 가야겠다는 마음이 컸다. 사실 나는 그동안 여행을 갈 때 그곳의 문화나 역사에 대해서는 전혀 공부해가지 않았었다. 성인이 되고 난 후 일본, 대만, 필리핀 등을 여행했으나 그냥 SNS에서 유명한 관광지를 돌아다니며 인증샷을 찍는 것이 전부였다. 물론 가서 그 문화를 간접적으로 경험하고, 맛있는 음식과 예쁜 사진을 찍는 것도 중요하지만 유명 명소들에 얽힌 이야기나 역사적 사실들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하고 피상적으로만 그 나라를 이해하고 돌아온 것이 꽤나 아쉬웠다. 또 여행을 갈 때면 항상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열심히 공부해가는 대학교 선배에게 나름의 자극을 받은 것도 있었다.
‘아는만큼 보인다’라는 것은 이제 너무나 유명해져서 시시해보이기까지 하는 격언이다.
대학교를 다닐 때, ‘삶과 교육’이라는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그때 교수님은 우리에게 한 나무를 보여주시면서 어떤 생각이 드냐고 물어보셨다. 곳곳에서 다양한 답변들이 나왔고 이에 교수님은 설명을 이어가셨다.
“이 나무를 보고 목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무의 질이 좋고, 결이 아름답네. 잘 다듬으면 튼튼하고 예쁜 테이블이나 의자를 만들 수 있겠어.’ 그 다음에 온 생태운동가는 이렇게 말했죠. ‘이 나무는 숲을 건강하게 유지해주는 소중한 존재야. 이 지역의 생태계를 지탱해주고, 동물들의 터전을 제공해주지. 참 소중한 생명이다.’ 세 번째로 온 화가는 ‘이 나무는 색의 조화가 참 아름답다. 햇빛에 비치는 잎사귀의 색감과 나무의 굵직한 줄기에서 예술적 영감이 떠오르는 것 같아’라고 말했어요. 이처럼 우리는 각자의 분야에 따라, 각자가 지닌 배경지식과 정보대로 사물을 인식하죠. 이 평범해보이는 나무가 목수의 눈에는 가구로, 화가의 눈에는 아름다운 색채로, 생태운동가의 눈에는 소중한 생태계의 일원으로 보이는 것처럼 말이에요. 하지만 어떻게 보면 이는 자신의 시야에만 한정되게 이 나무를 인식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다양한 분야를 접하고, 지식과 교양을 쌓으면 이 나무를 다각도로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게 되죠. 나무에 대해서 다양한 각도에서, 또 깊이 있게 알게 되면 비로소 그 나무를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할 수 있습니다.”
배움의 의미와 가치는 여기에 있는 게 아닐까? 어떠한 학문이나 분야에 대해 진지하게 배우고 알게 되면, 그 학문이나 분야를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거기에서 기쁨이 온다.
적지 않은 비용과 시간을 들여 유럽까지 가는 만큼, 이 도시들을 진심으로 알고 사랑하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그냥 유명한 명소 몇 군데를 아는 것도 없이 둘러보고, 사진이나 찍고 오기에는 너무나 아쉬울 것 같았다. 유튜브로 여행 정보와 역사를 정리하고, 서점에 가서 루브르 박물관, 오르세 박물관 설명 서적 등을 샀다. 서점의 여행 코너를 이렇게 진지하게, 오래 고심하면서 바라본 적은 처음이었다. 사고 싶은 책이 너무 많아서 어떤 책이 가장 좋을까, 어떤 책이 이 도시를 가장 잘 담고 있을까를 고민하며 몇 개의 책을 집었다. 여행을 가기까지는 4개월 정도의 시간이 남았으니 파리, 바르셀로나, 로마 이 세 도시를 완벽하게 파악하고 비행기에 오르고자 했다.
마음에 드는 책 세 권을 꼭 껴안고 평소 좋아하던 카페로 향했다. 가을 시즌으로 무화과를 넣은 디저트들이 많았다. 무화과의 부드러우면서도 달콤한 그 맛을 좋아하기에, 메뉴를 고르면서부터도 설레는 마음이 컸다. 저녁을 먹지 않았어서 무화과 그릭 토스트와 커피를 주문했다. 부드러운 그릭 요거트와 달달한 무화과, 쌉쌀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먹으니 한껏 기분이 좋아졌다. 이곳은 평소 북토크, 음악 공연 등 문화 행사를 많이 하는 카페여서 책들을 많이 전시해두었고, 그러다보니 노트북을 두드리기보다는 책을 읽으며 커피를 즐기는 사람이 많았다. 나는 그러한 이 곳의 분위기와, 제철과일과 요거트, 언제든 꺼내 읽을 수 있는 책이 있는 이 공간을 참 좋아한다.
앉아서 루브르 박물관 주요 작품들을 정리해둔 책을 읽는데, 서양 미술사에 대해서 더욱 알고 싶다는 생각이 커졌다. 미술 역시 문학 작품과 마찬가지로 인생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기도 하고, 부조리한 세태를 풍자하기도 했다. 그림에는 문외한이었는데, 설명과 함께 다양한 작품을 접하게 되니 그동안 이름만 알았던 다양한 미술 작품들을 깊이 알 수 있었다. 책에서 설명하는 다양한 작가들의 삶, 인생 이야기들도 꽤나 흥미로웠다. 바람둥이였던 피카소, 우을증을 앓았던 고흐, 부르주아들의 삶을 맹렬히 비판한 에두아르 마네까지. 이들의 삶을 통해 당시 유럽인들의 문화, 생활 양식 등을 간접적으로 접하고 이해할 수 있었고, 내년에는 이들의 작품을 직접 두 눈으로 마주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전에는 몰랐던 완전히 새로운 분야에 발을 담근다는 것이 이렇게 설레는 일일줄 몰랐다.
비록 2주간의 짧은 여행이지만 여행을 준비하면서, 또 실제로 유럽에 가서 많은 것들을 보고 실제로 경험함으로써 느끼고 배우는 것은 정말 값질 것이다. 평소 전혀 알지 못했던 유럽의 역사와 미술사에 대해 알게되고 견문을 넓힐 수 있다는 것이 참 감사하다. 유럽에 갈 기회가 없었다면 이러한 분야에 발을 들일 생각조차 안했을 것이다. 먼 타지에 살고 있는 한 사람일 뿐이지만, 이 세 도시를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 (사실 이미 너무나 아끼고 사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