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지나치게 많이 왔던 어느날
얼마전, 11월임에도 불구하고 30cm가 넘는 눈이 내려 대설 주의보가 발령됐다. 이는 경기 남부 지역의 연평균 적설량에 웃도는 수치로, 상당히 기록적인 일임을 알 수 있었다.
기록적인 폭설이 내리기 전날에도 눈은 꽤 많이 내렸다. 학교에서 근무하고 있는 일과 중에 눈이 내리기 시작했는데, 올해 첫눈이었기 때문에 아이들은 꽤 들떠 보였다. 서로 눈싸움을 하고, 눈사람을 만들며 즐거워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고 흐뭇했다. 비록 선생님들은 퇴근길을 걱정했지만, 아무 걱정 없이 천진난만하게 눈을 보며 행복해 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참 예뻤다.
새벽부터 꽤 많은 눈이 내릴 것이라고 예보에서 계속해서 전하던 전날, 나는 그래도 별일 없겠지, 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하지만 다음날 출근을 하려고 보니, 내 예상보다도 더 많은 눈이 쌓여 있었다. 걱정됐던 부모님은 새벽부터 일어나셔서 차를 끌고 가도 되겠냐며 말렸지만, 다니는 버스도 없고 단지 밖 도로는 제설이 잘 되어 있겠지, 하는 생각으로 무모하게 차를 끌고 나갔다.
단지 안은 쌓인 눈이 제대로 치워지지 않아 그야말로 카오스였고, 여기 저기 비상 깜빡이를 킨 채 멈춰있는 차들로 가득했다. 경비사무실 직원분들도 어쩔 도리를 몰라 하셨다. 그래도 단지 안이니까 이렇겠지, 큰 도로는 괜찮겠지 하는 생각으로 겨우겨우 단지 밖으로 나갔다. 하지만 단지 밖으로 나온 순간, 나는 뭔가 크게 잘못되었음을 확신했다. 제설이 잘 되어 있을 줄 알았던 내 예상과는 달리, 제설이 하나도 되어 있지 않았고, 내가 가야 하는 길목에는 차들이 전혀 가지 못하고 눈에 둘러쌓여 멈춰 있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차와 함께 완전히 고립되겠다, 하는 생각에 급하게 골목으로 들어가 아무데나 차를 대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골목은 아예 제설이 안되어 있었고, 골목에서 내 차는 완전히 눈 속에 파묻혀서 앞으로도, 뒤로도 갈 수 없는 상황이 되었었다.
처음에는 이리저리 악셀을 밟아보며 혼자 힘으로 나가보려고 했으나, 도저히 안 되겠다고 판단한 나는 부모님께 SOS를 쳤다. 다행히 집에서 걸어서 5분 정도 되는 거리라 금방 오셨지만, 아무리 부모님께서 함께 노력해봐도 차는 움직이지 않았다. 경비사무소 아저씨께 소금을 좀 빌려오라는 엄마의 말에 나는 경비사무소로 갔고, 눈을 맞으며 찾아온 내가 불쌍해보였는지 ‘딸같으니 가서 도와주겠다’며 경비아저씨도 큰 삽을 들고 함께 나섰다. 세 사람이 붙어서 차를 밀어보며 낑낑대고 있자, 이번에는 길을 가던 아저씨께서 나와 함께 힘을 더해 주셨다. 결국 네 명이 붙어서 차를 밀어보니 차가 드디어 움직였다.
사실 혼자로는 절대 할 수 없던 일을,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해냈다는 사실에 참 감사했다. 결국 그날은 휴교를 해 출근하지 않아도 됐지만, 잘 알지도 못하는 사이인데도 선뜻 나와서 추운 날씨에 함께 도와줬던 경비 아저씨와 지나가던 아저씨, 이른 아침부터 자식을 위해 눈 속에서 고생했던 부모님 모두에게 감사했던 하루로 기억이 남는다.
다음날에는 이제 정상적으로 출근했는데, 학교가 완전히 눈에 뒤덮여 있었다. 여기저기 나무들은 쓰러져 있고, 길은 꽝꽝 얼어 주차를 하기 어려웠다. 이때 차례차례 먼저 온 선생님들부터 함께 눈을 치우기 시작했는데, 다 함께 협력해서 눈을 치우는 이 순간이 참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 하나 마다하지 않고 이런저런 도구를 사용해서 얼음을 깨기 시작하는데, 지금 이 순간도 기억에 남겠구나, 하는 생각이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고, 학교에서 선생님들과 크리스마스 파티를 하며 눈이 많이 왔던 그날을 떠올려본다.
다사다난 했던 11월의 폭설이었지만, 그래도 내 곁에 소중하고 좋은 사람들이 많다는 걸 깨달은 하루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