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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 그릭요거트 볼

by 가을

요즘 운동을 시작했다. 야심차게 pt 30회를 끊고, 최근 3주 정도 열심히 헬스장에 다니다보니 전처럼 카페에 앉아서 사색할 만한 시간이 없었다. 학기말이라 업무가 바쁘기도 하고, 2월에 갈 유럽 여행을 계획하기도 하고, 미뤄 둔 연말 약속도 잡다보니 더더욱 그랬다.


하지만 오늘따라 운동이 가기 싫었다. 피곤하기도 했고, 오늘은 평소 좋아하던 카페에 가서 책이나 읽고 글을 좀 끄적여야지 하는 생각이었다. 이렇게 갑자기 일정을 변경해 카페에 오니, 뭔가 오랜만에 일탈을 한 것 같아 기분이 좋기도 하다. 카페에서는 아메리카노와, 딸기 그릭요거트를 시켰다. 시큼하면서도 달달하고, 꾸덕한 요거트가 입 안에서 녹는다.

노트북 앞에 앉아 요즘 무슨 일이 있었을까, 하고 되돌아 본다. 생각해보니 어제 간만에 남자친구랑 두시간 반 동안 통화를 했다. 평소 짧게만 통화를 하는 편인데, 어제는 유독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보니 길어졌다. 2시간 반 동안의 통화에 온갖 희노애락이 다 담겨 있었다.


초반에는 오늘 있던 일을 나누고, 장난스런 농담을 주고 받는 것으로 시작했다. 우리는 같은 교회 모임에 속해 있기에 꽤 공통 관심사가 많은 편이다.


"아, 그런데 그 분이 이렇게 행동하신 건 나는 좀 그랬어."


남자친구가 이렇게 이야기하자, 나는 그 분이 그렇게 행동한 것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크게 받아들이지 말고 넘어가라,는 식으로 이야기했다. 하지만 남자친구는 그런 내 모습에 서운했는지, 혹은 이해받지 못한다고 느꼈는지 계속해서 자신의 주장을 펼쳤고 나는 '좋은 이야기만 하고 싶다'며 대화를 일축해버렸다. 그 뒤로 물론 분위기는 잠시 냉전이 됐고.


하지만 전화하면서도 의문이었다. 나는 남자친구의 그 말에 왜 이렇게 과민반응한걸까? 내가 생각해도 과민반응이었다. 그냥 '그러게, 나도 좀 별로였어'라고 할 수 있었는데. 나는 가끔씩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이 올라오면, 왜 그런지 곰곰이 생각해보는 버릇이 있다. 내 감정을 이렇게 머리로 이해하려 들고 이유를 찾는 게 좋은 건지 아닌 건지는 잘 모르겠으나.


생각해보면, 나도 그 상황에서 그 분의 행동이 정말 이해가 가지 않고 싫었다. '아, 왜 그렇게 하지. 정말 이해가 안가'라는 마음을 남자친구처럼 나도 가지고 있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 분에 대해서 나쁘게 생각하는 건 좋지 않아, 나름의 사정이 있겠지'라는 마음이 있었기에 이를 꾹꾹 억눌렀던 것 같다. 그런데 저녁에 남자친구가 다시 그분에 대해 안 좋게 이야기하니, 겨우 억눌러 놓았던 그 미운 감정이 다시 올라와 짜증이 났던 게 아닐까.


심리학에서 아주 유명한 '투사'라는 개념이 있다. 자신이 누군가의 행동에 과하게 반응한다면, 상대방의 모습에서 자기가 싫어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결국 그 사람 때문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문제이다.


누군가를 미워하고, 짜증나 하는 내 모습이 누구보다도 싫은데, 그러한 모습을 가장 가까운 남자친구에게서 보게 되니 괜히 화가 났던 것 같다. 그 당시에 불쾌한 감정이 다시 올라왔던 것 같기도 하고.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뭐 어쨌든 결론은, 우리 둘 다 그 사람을 미워하지 말자,로 끝이 났다.

그 과정에서 내가 느끼고 생각한 것들을 다 털어놓았다. 나도 사실은 그 사람이 미웠어, 그래서 오빠한테 더 화냈던 것 같아, 하고.


그래서 조금은 서로를, 또 나 자신을 알게 된 것 같기도 하다.

이렇게 삶 속에서 무언가를 배워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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