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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 Aug 28. 2024

보고픈 마음 호수만 하니

호수1 , 정지용


얼굴 하나야

손바닥 둘로

폭 가리지만


보고 싶은 마음

호수만 하니

눈 감을 밖에



 누군가를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은 호수처럼 크고 넓어서, 작은 손바닥으로 가릴 수 없다.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면 자꾸만 시계를 바라보고, 열리지 않는 문을 애타게 쳐다보기만 하지 않겠는가. 학교에서는 다양한 그리움과 보고 싶은 마음을 간직한 아이들이 있다.


 평소 씩씩하고 성실했고, 수업 태도도 좋아서 모든 선생님들에게 칭찬받는 아이가 있었다. 매년 반장을 할 정도로 리더십이 있고, 학생들의 신임도 받았다. 주변에 좋은 친구들도 많고 마냥 밝아서 걱정이나 슬픔이라곤 없을 줄 알았다. 돌이켜보면 그 아이는 유독 나를 따랐던 것 같다. 롤모델이라며 졸졸 따라오기도 했고, 시덥지 않은 농담을 던지거나 작은 사탕을 주고 가기도 했다.

 어느날 학부모 상담 주간에 찾아오신 아버지가 말했다.


 "애가 담임 선생님이 너무 좋다고. 자기 누나 같다고 그래요."


 누나가 있다는 소식은 들은 적이 없어서,


 "아, 누나가 있었어요? 외동아들인 줄 알았는데. 누나 얘기는 통 안해서요. 누나랑 사이가 좋은가봐요."


 나의 말에 아버지는 말을 잘 잇지 못하셨고, 몇 초간의 정적이 흐르다 어렵게 입을 떼셨다.


 "사실, 애 누나는 북에 있어요. 데리고 오려 했는데, 데리고 오지를 못했어요. 형은 중국에 있고요. 제가 사실은 탈북민이에요, 말투가 조금 그렇죠. 애가 형이랑은 접점이 많이 없었는데, 북에 있을 때 누나랑은 특별히 친했거든요. 남한에 처음 왔을 때는 누나가 그립다고 맨날 울었어요. 누나는 언제 데리고 올 수 있냐고 맨날 물었죠. 지금은 좀 괜찮아졌지만."


 예상치도 못한 이야기에 나는 말을 잇지 못했다. 사실 아버지가 탈북민이라는 소식을 상담 전에는 알지 못했다. 말투가 조금 특이하셔서 외국분이신가 했었는데, 아버님은  조심스레 자신과 그 가족이 탈북민이라는 이야기를 하셨다. 자신의 말투가 이러니 아이의 주변 지인들, 학부모들 앞에도 잘 나서지 못했다고 한다. 전에 있었던 지역에서 탈북민이라는 소문이 났을 때 그 시선이 좋지 못했다고.

 낯선 타지에서 적응하기도 어려운데 중국에서 온 아내와도 사이가 좋지 않아, 아버지에게 희망은 아이뿐이었다. 일하는 동안 아이가 혼자 집에 있을 때가 많은데, 그럼에도 항상 밝고 긍정적인 모습이 기특했다. 하지만 아이가 아플 때나, 힘들어 할 때 옆에 있어줄 수 없는 자신의 모습은 너무나 견디기 어려웠다.

 평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은 대상이 없으셨는지, 아이의 아버지는 눈물을 훌쩍이며 거의 한 시간동안 자신의 삶을 털어놓으셨다.


 씩씩하고 항상 당차보였던 그 아이가 이렇게 큰 아픔을 가지고 있는지 몰랐다. 나를 통해서, 이제는 볼 수 없는 누나를 보고 있었다는 사실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내가 한 작은 행동이나 말들이 이 아이에게는 크게 다가왔겠구나.


 보고픈 마음, 호수같이 큰 그 마음은 가릴래야 가릴 수가 없다. 눈을 감고 보고픈 대상을 떠올리며 묵묵히 견뎌내는 수밖에. 매일밤을 울며 누나를 그리워했을, 또 그리워하고 있을 그 아이가 조금이나마 더 행복하기를 기도하며 글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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