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 속의 별
류시화
돌의 내부가 암흑이라고 믿는 사람은
돌을 부딪쳐 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돌 속에 별이 갇혀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다
돌이 노래할 줄 모른다고 여기는 사람은
저물녘 강의 물살이 부르는 돌들의 노래를
들어 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그 노래를 들으며 울어 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돌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물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아직 모르는 사람이다
돌이 차갑다고 말하는 사람은
돌에서 울음을 꺼내 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그 냉정이 한때 불이었다는 것을 잊은 사람이다
돌이 무표정하다고 무시하는 사람은
돌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중학교 선생님이라니, 힘들지 않으세요?"
"어휴, 전 돈을 아무리 줘도 학교 선생님은 못할 것 같아요."
"요즘 뉴스에 안 좋은 소식들이 많던데··· 그 학교는 괜찮은가봐요."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류시화 시인의 '돌 속의 별'을 낭송해주고 싶다. 막상 학교에서 아이들을 만나고, 그 삶을 들여다보면 사람들이 말하는 철없기만 하고, 예의도 없으며, 막무가내인 중학생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얼마나 그 속이 깊고 많은 고민을 안고 있는지. 얼마나 천진난만하고 순수하며, 열정적인지. 자신의 상처를 들키기 싫어 날을 세우고 있지만, 그 속은 얼마나 곪아 있는지. 얼마나 사소한 것에 기뻐하고 즐거워하는지. 반복된 좌절에 얼마나 무력감을 느끼고 있는지.
나는 '북한군도 무서워한다는 중학교 2학년'의 담임 교사이다. 처음 중학교에 발령받았을 때, 사실 나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나는 체구도 작고 카리스마도 없는데, 아이들을 잘 제어할 수 있을까? 너무 통제가 안되면 어떡하지. 한창 교권 침해에 대한 소식이 많을 때라 더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막상 학교에 와보니, 아이들은 '소문으로만 듣던' 그 중학생의 모습이 아니었다. 물론 그런 전형적인 중학생도 있기는 했지만, 실제로 아이들은 그보다 훨씬 더 다채로웠다.
돌의 내부가 암흑뿐일 것이라고 쉽게 말하고 단정지어버리는 이들은, 그 돌이 품고 있는 별을 보지 못한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자신들을 어른들이 어떻게 바라보는지 단숨에 알아챈다. 자신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그 내면을 알아채는 순간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기 마련이다. 중학생들은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있고 이기적이야, 통제 불가능이야, 라고 쉽게 단정지어버린다면 아이들의 밝고 아름다운 모습, 천진난만하고 순수한 모습을 발견할 수 없다. 내가 그런 편견에 빠져있었다면, '선생님 생각 나서 가져왔어요'라며 내미는 네 잎 클로버를 받아볼 수 없었을 것이다.
돌이 노래할 줄 모른다고 여기는 사람은 저물녘 강의 물살이 부르는 돌들의 노래를 들어 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 노래를 들으며 울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중학교 2학년이라면 통상,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않고 방 속에만 틀어박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학교에서 아이들을 만나보면, 아이들이 얼마나 자기 이야기를 하지 못해 안달인지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다보면, 아이들은 더 많은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는다.
"선생님, 중간고사 점수 보고 호적에서 파일 뻔했어요. 이제 이00이 아니라 강00할까봐요."
"선생님, 엄마 생일선물 사려고 돈 모으는 중인데 뭐 사드릴까요? 고민이에요."
"선생님, NCT가 컴백해서 이번 주말에 콘서트 갈거에요."
이런 소소하고도 즐거운 일상 이야기를 듣다보면, 나도 학생 때로 돌아간 것 같아 괜히 기분이 즐거워진다. 사소한 것에도 기뻐하고 까르르 웃는 학생들의 무구함과 순수함이 부럽다.
하지만 가끔은 심오하면서도 내밀한 이야기를 꺼내기도 한다.
"선생님, 저희 엄마는 집을 나갔어요. 제 번호도 차단했던데요."
이런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일상 이야기하듯 말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 그 모습이 서글프다. 겉으로는 태연한 척하지만 그 속의 많은 아픔들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 나면, 종일 나의 마음도 괜히 울적해진다.
돌이 차갑다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돌의 그 냉정이 한때 불이었다는 것을 잊은 사람이다. 유난히 선생님들에게, 다른 학생들에게 차가운 아이가 있다. 혼자 있는게 마음이 쓰여 상담을 할 때 물어보니, '전 진심으로 혼자 있는 게 더 좋아요. 굳이 친구를 사귀고 싶지 않아요.' 처음에는 원래 이 학생이 내향적이고 친구를 좋아하지 않는구나 싶었다. 하지만 부모님과 상담을 해보니, 초등학교 시절 친했던 친구가 자신에게 말도 없이 하루아침에 떠나버린 것에 대한 상처가 있어 그 뒤로 친구를 만들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모든 개개인의 삶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다양한 환경에 영향을 받고, 다양한 경험을 하며 계속해서 변화한다. 인간은 누구나 양면적이기에 선하기만 하지 않고, 또 악하기만 하지 않다. 모든 이들의 행동과 말에는 지난날의 습관과 경험에서 빚어진 나름의 이유가 있다.
사람들은 '자신은 복잡하게 좋은 사람이고, 타인은 단순하게 나쁜 사람이다'라고 쉽게 판단한다던데, 이러한 인식의 틀이 우리 아이들을 바라보는 데까지 적용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이제는 돌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게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