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짙은 초록 속에서
수국은 여름을 물들인다
수겹으로 번져가는 꽃잎은
비의 결정을 품은 채
기다린 말이었다
너는
아직 피지 않은 푸름이었다
이미 뜨거운 여름이었다
그늘진 화단 아래 묻힌 의문들
여름은
질문 끝에 피어난다
모진 바람에도 찢기지 않는 건
한번 젖은 것들은
다시 젖지 않기 때문이리라
피어나지 못한 날들의 고요 위에
수국은
가만히 꽃잎을 얹었다
비가 그치고 난 뒤에도
수국은 기억하는 꽃이다
빛나지 않으면서
가장 환하게 물드는 방식으로
자신을 고백한다
차가운 진심은 뿌리에서 오르고
가을에 닿을 수 없어도
무수한 꽃잎에 여름을 새긴다
말라붙은 계절이 돌아오는 것은
막을 수 없겠지만
비가 올 때마다
수국에 써내려간 쪽지를 펼친다
몽실히 피어오른 담장앞에서
다 쓰이지 않은 이야기가
새벽 안개로 피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