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을 먹고 나면
마을엔 시간이 눕는다
진짜 눕는다는 뜻이다
전봇대 그림자 옆에 몸을 뉘고
비닐하우스 위로 흘러가는 구름을 베개 삼아
시간은 그때부터 눈을 감고 작게 숨을 쉰다
수돗가의 양동이가 실줄기로 넘치면
금방 퍼낸 물에서 햇빛이 식는다
표면에 비친 하늘은
동네에서 가장 얌전한 색을 하고 있고
세 개째 파를 썰며 생각한다
‘너무 많나…’ 중얼거린다
그래도 이 정도의
서툼으로는 여름이 자라는데
아무런 상처도 되지 않는다고
텃밭에 심은 깻잎이
멀리서 들려오는 트럭 소리를 실어 나르면
구불구불한 논길에 이야기가 데워진다
흔들리는 잎사귀를 보며
나는 오늘 너에게 편지를 쓰지 않았다는 걸
깨닫는다
잊어버렸다기보다
그리움이 바람에 잠시 묻힌 거라고 생각한다
우체국 앞 벤치에 앉아 있는 노인은
편지봉투처럼 접힌 햇빛 아래
소처럼 시간을 되새김질하며
말라붙은 손끝으로 기억을 턴다
쉬어간다는 말조차 빠르게 들리는 풍경
여기서는 하루가
『백년의 고독』 중간쯤 꽂힌 책갈피처럼
귀퉁이가 해진 하루를 감싸
주머니에 넣고
입고 있는 오늘이라는 옷을 벗어
툇마루에 오후처럼 놓아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