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육면체를 모르는 사람에게 설명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그걸 만들어 보여주
깨우침을 주는 짧은 문장들을 우리는 ‘격언’이라 부른다.
영화 브루탈리스트에서 주인공 건축가가 정육면체에 대해 한 말은 결국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보는 것의 힘, 직접 체험의 힘을 강조한 말이다.
서구권에서도 ‘A picture is worth a thousand words’ 라거나, ‘Seeing is believing’ 등과 같은 유사한 표현들이 많이 있는 편이다.
그만큼이나 ‘시각’의 효과는 직관적이고 확실하다. 그런 덕분에 모호한 백 마디 설명보다 한 번 직접 보는 것이 낫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는 것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기술의 발달로 보는 것이 너무도 편리해진 시대가 되니, 또 다른 한 편의 주장이 힘을 얻어 가고 있다.
바보상자라는 별명을 얻었던 텔레비전은 이제 옛말이고, 스마트폰 중독을 불러일으키는 주범으로 비판받는 유튜브, 그마저도 1분 이상 보는 것도 지루해 새롭게 떠오른 ‘쇼츠(shorts)’등의 폐해가 날로 심각해져 저녁 뉴스를 오르내리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아니, 이게 어쩐 일인가?’ 보는 것이 낫다는 수많은 격언의 가르침대로 열심히 보는 것이 이제는 문제라니… 시각적 정보는 그만큼이나 즉각적이고 강력하다 보니 오히려 다른 모든 정보를 압도할 만큼 뇌를 지배해 버리는 것이다.
전자 음악이 한창이던 시기 통기타 하나로 무대를 꾸미는 어쿠스틱 음악이 다시 인기를 얻었듯, 이런 넘쳐나는 영상물의 홍수 속에 색다름을 추구하는 직장인의 취미로 다시금 떠오르는 것이 바로 ‘독서’이다.
독서 또한 엄밀히 말하자면 시각이란 감각 기관을 통해 정보를 취득하는 것이라 ‘보는 행위‘이긴 하지만, ‘영상 보기’에 비하자면 조금 더 능동적 보기라고 할 수 있다.
영상을 시청할 때 우리는 수동적 입장에서 자연스레 주어진 정보를 받아들인다. 이에 반해 글을 읽는 동안 글자라는 기호를 보는 것을 통해, 우리의 머릿속에서는 적극적으로 나만의 영상을 재창조한다.
물론 그에 따라 정보의 입력 시간이 조금 더 오래 걸리긴 하지만 말이다. 아니, 오히려 이런 정보 입력 시간의 지연으로, 더 장기적이고 복합적 기억으로 남는 것이 독서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근래에는 독서를 넘어, 천천히 음미하며 읽기 혹은 마음 수양의 한 방편으로 ‘필사’를 택하는 이들도 늘어나고 있으니, 어찌 된 일인지 점점 과거로 회기 하는 듯 보이기도 한다. 마치 첨단의 과학자들이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과거로 시간여행을 떠나고 있는 것인지 착각이 들 정도이다.
물론 독서나 필사를 추구하는 이들에 비해, 한 밤중의 라면만큼이나 자극적인 영상물 시청파가 압도적인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다. 그만큼이나 독서는 많은 에너지와 집중력이 필요한 정보 취득 방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도의 집중력으로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한편 기술의 발전은 정보의 입력을 넘어 더 적극적인 정보 출력으로 사람들을 이끌고 있다.
과거에는 나의 글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출판이라는 수단 밖에 없었지만, 지금은 수많은 인터넷 게시판과 커뮤니티를 통한 짧은 글뿐 아니라, 바로 여기 브런치를 통해 소설이나 수필, 시 등 종류를 가리지 않는 다양한 글들을 세상에 선보일 수 있게 된 것이다.
독자가 작자가 되었듯, 유튜브 시청자가 유튜브 크리에이터가 방송국을 거치지 않고도 글이 아닌 화려한 영상과 개인 방송까지 가능한 시대이다.
기술의 발달은 우리의 격언을 어떻게 바꾸어 갈 것인가..
‘백견이 불여일독’을 추구하는 사람들, ‘Showing is believing’을 추구하는 사람들.
인간의 뇌에 칩을 이식하는 시대를 넘어, 인간의 뇌 조직을 반도체에 이식하는 기술이 발표되고 있는 시대이니, 정보 입력과 출력은 과연 또 어떻게 변해갈지 궁금해진다.
*사족: 사실 백문을 보는 행위를 통한 입력이라 따진다면, 일견 또한 단순한 보는 행위라기보단 오감을 통한 경험이라 해석해야 더 적절할 것이다.
공상보단 실행, 경우에 따라 “Just do it!”으로 초월 번역이 더 어울릴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