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일본 드라마 중 ‘Long Vacation’이 있다. 20대 초반에 봤다가 푹 빠져서 여주 중에 하나인 마츠 다카코의 팬이 되기도 했다. 어쨌든 최근 왓챠 멤버십을 가입해서 이런저런 컨텐츠들을 보다가 이 드라마가 검색되어 20여년 만에 정주행을 했다. 드라마 중 내가 생각하는 명대사가 하나 있는데, 여주가 수십번 면접을 봐도 다 떨어지고 되는게 없다고 힘들어하자 남주가 괜찮다며 잠시 쉬어가도 된다고 다독인다. 이때 여주가 다시 힘을 내며 자기는 지금 현재 장기 휴가중이라면서 ’롱 베케이션’을 외친다. 그렇다. 나도 여주처럼 지금 롱 베케이션 중이다!!
항암을 하는 시간 외에 대부분의 시간을 오롯이 나를 위해 쓴다. (미국에 있었으면 아내와 함께 보다 의미있는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항암의 부작용만 적다면 6개월 가량을 온전히 내가 배우고 싶은 것들에 쓸 수 있다. 종이를 펼쳐들고 내가 평소 배우고 싶었던 것들을 하나하나 적어보았다. 그 리스트가 생각보다 많아서 이것들을 모두 다 이룰 수 있을까 의심이 들긴 하지만, 또한 회사 복귀후에도 그 리스트 중에서 몇개나 이어갈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이번 에피소드는 현재 진행중이거나 계획중인 자기계발 리스트들을 소개해 본다.
블로그 글쓰기 (Brunch): 여러가지 하는 것 중 가장 우선순위가 높은 것이다. 생각을 정리해서 발행하는 것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다. 10년전에 300페이지 넘는 IT 기술서를 직접 써서 출판했었다. 거의 6개월간의 작업이였고, 한주에 20페이지 정도를 써 나가야만 출판 일정을 맞출 수 있었다. 회사 출근 전과 후 각각 2시간씩을 최대한 할애해서 매일 미친듯이 써내려갔던 기억이 있다. 책이 출간 되고 초판 20권을 출판사로 받았을때 희열은 아직도 짜릿하다. 그때 이후로 글 쓰는 일을 한동안 멀리했는데, 요즘 ‘사코마 이야기’를 브런치에 쓰는 맛을 들였다. 10개정도 에피소드가 나오니 이후는 습관이 되어 자연스럽게 쓰여진다. 글쓰기에 집중해 본적이 10년만에 처음이다. 마지막 에피소드로 ‘항암 졸업’이라고 제목을 써보는 날을 기대해 본다.
피아노 배우기: 평소에 피아노가 무척이나 배워보고 싶었다. 하지만 바쁜 직장생활로 좀처럼 시간이 나지 않았고, 진입장벽도 높아서 쉽게 시작할 수 없었다. 이번 6개월간 초급딱지를 땔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동네 피아노 학원 문을 무작정 두드렸다. 다행히 성인 파아노 초급생을 받아주었다. 6개월이면 지브리 스튜디오 OST 정도를 칠 수 있다고 유튜브를 보여주신다. 1주일에 한번 1시간 레슨을 등록했다. 피아노를 굳이 배우고 싶은 강한 동기부여 중에 하나는 정재형의 유트브에서 우연해 본 아마하 전자피아노가 너무 좋아보였기 때문이다. 이번에 잘 배워서 암 졸업 선물로 나에게 선물하고 싶다.
기타 배우기: 피아노와 기타 중에 뭐를 배울까 하다가 피아노를 우선 선택했다. 그런데 개인 시간이 생각보다 많이 남아서 둘 다 같이 배우면 되지 싶었다. 기타 연주를 좀 자세히 살펴보니 많은 유튜브 강좌들이 있었고, 레슨보다는 독학으로 가능할 것 같다고 생각들었다. 결국 기타를 하나 샀다. 안 쓰던 왼손 근육들이 깨어나는 느낌이고, 더불어 뇌도 깨어나는 느낌이다. 기타를 이전에도 배워보겠다고 했다가 포기한 가장 큰 이유는 왼손의 굳은살이 잘 형성되지 않고 어지간히 아파서 쉬 포기했었다. 이번에는 다르다. 손가락 골무를 미리 주문해서 고통을 늦추고, 기타의 재미를 먼저 익힐 수 있도록 해 봤다.
그림 그리기 (Procreate): 딸이 몇 년전에 사달라고한 Procreate를 시작했다. 예전에 PC시대에는 Photoshop이 있었다면, iPad시대에는 Procreate가 정답이다. 유투브에 수 많은 강의들과 팁들이 있어서 배우기가 무척이나 쉽다. 목표는 미대생처럼 그림을 잘 그리기 보다는, 내가 표현하고 싶은 이미지들이나 장면들을 감각있게 편집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다. 에피소드 17부터 내가 직접 편집한 이미지들을 커버포토로 사용하고 있고, 프로필 사진도 직접 그려보았다. 툴 사용이 이제는 제법 능숙하다.
3D 모델링하기 (Nomad Sculpt): iPad로 뭐를 더 배울 수 있을까 알아보다가 3D Modeling 세계를 알게되었다. 여러가지 툴들이 있었으며, 이 중 Nomad Sculpt 라는 앱이 가장 직관적인 인터페이스를 가져다 주었다. 바로 결재하여 몇 주째 연습하고 있는데, Procreate와 마찬가지로 여러 강의와 팁들이 존재했다. Procreate는 미술적 감각을 늘릴 수 있다면, 3D Modeling은 창의성과 함께 공학적인 요소가 가미되어 있어서 나의 흥미를 충분히 끌 수 있었다. 더불어 제작된 3D 모델 파일들은 3D Printer를 통해 실제로 만들 수 있으니, 6개월 동안 3D 프린터로 몇몇 모형들을 출력할 생각이다.
중국어 배우기: 업무의 특성상 중국/대만 파트너사들나 직원들을 자주 만났다. 이에 중국어의 필요성을 진작에 느꼈으나 실행하기 어려웠다. 이참에 중국어까지 배울 여력이 있을까 한참 망설이다가 Preply라는 서비스에서 중국어 튜터를 만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다행이도 가성비 좋고 잘 맞는 훌륭한 튜터를 만났고 일주일에 한두번 강의를 배우기 시작했다.
투병일지 쓰기 (Notion): 항암일지를 잘 적기위해 효율적인 노트 앱이 필요했다. 이 또한 iPad를 효율적으로 쓰고자 하다보니 알게된 내용이기도 하다. 어쨌거나 항암일지를 매일 작성하고 있고, 특히나 식단관리를 잘 하고 있다. 이는 나중에 좋은 정보가 되지 않을까 싶다.
골프 연습하기: 잘 맞는 족하수 보조기를 착용한 덕분에 (에피소드 19 참고) 즐겼던 골프를 다시 할 수 있게 되었다. 동네 골프연습장을 3개월 끊고 매일 아침 운동 삼아 다닌다. 다치지 않아도 2개월 이상을 채를 잡지 않으면 골프 스윙이 망가질터인데, 수술한 다리로 이전 스윙을 되찾기 어려웠다. 또한 스윙을 해보면서 알게 되었는데 캐포포트 자리 (에피소드 17 참고)가 팔로우스루를 방해했다. 여러모로 새로운 스윙법을 찾고 있는데, 이전 처럼 즐거칠 수 있도록 연마중이다.
다른 주제로의 블로그 글쓰기: 이것은 아직 생각중인 아이디어인데 실리콘 벨리 테크 기업의 엔지니어링 메니저로써 겪고 느꼈던 여러가지 주제를 가지고 블로그를 써볼까 생각중이다. 또한 한국회사 경험과의 비교도 해볼 수 있겠다. 한편으로는 이 부분 관련된 글들이 넘쳐나서 나의 글들이 도움이 될까 싶기도 하지만, 병가 후 복귀했을때 팀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지원할지에 대해서 나름 고민하고 돌아가면 좋겠다는 생각에 한번 정리해 볼 생각이다.
영상찍고 편집하기 (Capcut): DSLR 카메라로 사진찍는 취미는 예전부터 있어서 계속해서 사진과 영상을 찍어보려 한다. 그와 더불어 DJI Osmo Porket 3를 하나 샀는데 영상을 자주 찍어보려 노력하고 있다. 영상 편집은 Capcut을 새로 배워 편집 연습 중이다. 영상편집은 사진편집과 다르게 많은 부분을 고려해야 했지만, 생각보다 재밌다. 언젠가 유투버가 된다면 혼자 시작은 할 수 있겠다.
SW 구조 이해하기: 매니저 역할을 오래하다 보니 SW Engineering 기술이 많이 녹슬었다. 예전에는 SW Engineer로써 내가 담당하는 영역이 있었고, 그 원리를 이해하기 위해 깊고도 깊게 파 들어갔다. 과장해서 말하자면, 디지털의 0, 1까지 파 내려간 경험도 있다. 그렇게 깊게 이해가 되기 시작하면, 어떤 구현이든, 어떤 디버깅이든, 어떤 구조변경이든 자신있게 할 수 있었다. 매니저가 되면서 그런 부분에 대한 시간할애가 어려워졌고, 팀원들을 통해서 엔지니어링에 대한 갈증을 대리만족하였다. 6개월 동안 깊게도 파면 충분히 만족할만한 이해를 가질 수 있으나, 쉽사리 시작되지 않는걸 보면, 일 외에 다른 분야로 자기계발을 하고 싶나보다.
이외에도, 가죽 공예 배우기, 가구 제작 배우기, 동네 뒷산 매일 오르기 등등 종이에 적인 리스트들은 아직도 남아 있다. 또한 더 배우고 싶은 것들이 앞으로도 늘어날 것이고, 시간은 유한하기에, 항암 컨디션은 들쭉날쭉 하기에 무리하지 않고 유연하게 다양하게 배워보려한다.
이렇게 써 놓으니 공개적으로 저런것들을 배우겠다고 다짐을 한 셈이다. 현재는 하고싶은 일들도 24시간을 꽉 채우니 너무 행복하다. 계속 즐겁고 행복하게 배워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