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
"여보, 오늘 우리도 한번 뛰어볼까?"
저녁 식사 후 아내와 걷던 길. 요즘 부쩍 눈에 띄는 러너들을 보며 문득 던진 말이었다. 일주일에 2~3번, 1시간씩 걷기만 했다. 작년에 왼쪽 무릎에 물을 뺀 뒤로 달리기는 꿈도 꾸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했다. 걸을 때마다 경쾌하게 달려가는 사람들을 보면 자꾸만 '나도 한번...' 하는 마음이 솟아났다.
아내가 흔쾌히 좋다고 했다. 그날 저녁, 아내가 한 발작하고 반보 앞에서 뛰었다. 나는 그 뒤를 따랐다. 숨이 찼다. 무릎이 자꾸 신경 쓰였다. 체력이 나보다 더 낫구나, 생각했다. 힘이 들어 숨을 헐떡이며 겨우 몸을 끌고 운동을 마쳤다. 등짝이 땀에 흥건히 젖었다. 첫날 샤워하고 꿀잠을 잤다.
아침이 왔다. 왼쪽 무릎이 신경 쓰였다. 그런데 의외였다. 더 가벼웠다. 원래 아침에 일어나면 불편감이 있었는데, 오늘 아침 오히려 불편감이 사라졌다. 무릎이 안 좋다는 핑계로 운동을 게을리해서 무릎의 근육이 발달하지 않아서 그런 건가 싶었다. 아무튼 러닝으로 인한 무릎의 불편함이 없어서 다행이었다.
이튿날부터 유튜브를 뒤졌다. '초보 러너' 지침들을 찾았다. 처음부터 욕심 내지 말기, 옆 사람과 대화할 정도 속도 맞추기, 무릎에 부담되지 않도록 발 착지 유의 사항, 준비 전후 스트레칭. 첫날 아내가 나보다 잘 달렸기에 내 체력에 조금 실망했는데 옆 사람과 대화할 정도의 속도를 맞추는 게 좋다는 내용을 보고 욕심 내지 않고 내 페이스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러닝의 장점에 대해도 찾아봤다. 고강도 운동이 심장과 뇌를 자극하여 건강에 좋다는 이야기였다. 러닝이 심폐지구력에 좋다는 이야기는 들어봤어도 뇌를 자극하여 건강에 좋다는 사실이 새로웠다.
둘째 날 유튜브로 조사한 내용을 적용하여 준비 운동으로 몸을 끌어올려 주었다. 빨리 러닝 하기보다는 내 페이스를 유지하되 오늘은 어제보다 좀 더 긴 거리를 러닝 해 보자고 마음먹었다. 오늘은 혼자 러닝 했다. 아내와 달렸던 어제보다 2km 더 쉬지 않고 러닝 했다. 어제는 1.5km 뛰고 걸었다면 오늘은 약 3.5km를 러닝 했다.
혼자 뛰면서 어릴 적 생각이 났다.
나는 70년대생으로 90년대 초 중학교에 다녔다. 내가 다녔던 시골 중학교는 운동회 때 마라톤이 있었다. 특히 아프지 않고선 모두 반강제적으로 뛰어야 했다. 힘들었던 기억, 혼자 뛰었던 기억, 꿈속에서도 나올 정도로 하기 싫었던 기억, 비가 부슬부슬 오는 것을 맞으며 뛰었던 기억. 마라톤의 기억은 그때 당시 별로 좋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달랐다. 안 좋았던 기억이라기보다 내가 중학교 때부터 러닝을 했던 기억이었다. 러닝의 생초보가 아니라 중 3학년 동안 운동회 때마다 마라톤에 참여했던 기억이었다. 그 기억을 하니 러닝에 대한 '근자감(근본 없는 자신감)'이 들면서 피식 웃었다.
일주일에 3번 정도 5km를 뛰려고 노력한다. 얼마 되지 않았지만, 러닝의 장점을 몇 가지 꼽자면.
첫째, 성취감이다.
사실 난 운동 신경이 좋지 않다. 지금 하는 배드민턴이나 배구는 어느 정도의 운동 신경이 필요하다. 민첩성, 순발력 등이 필요하다. 그런데 난 그걸 잘 못한다. 아들과 딸이 배드민턴 경기를 하는 걸 봐도 운동 신경이 누가 있고 없는 걸 알 수 있다. 딸은 배드민턴 학원을 다니지만, 아들은 학원에 다니지 않는다. 그런데 운동 신경이 있는 아들은 배우지 않았지만 누나보다 곧 잘 친다.
그런데 러닝은 운동 신경이 필요하기는 하겠지만 여타 다른 운동보다는 그리 필요하지 않은 것 같다. 지구력 인내심 등이 더 요구되기 때문에 나 같이 운동 신경이 없는 사람이 해도 늘지 않는 실력으로 죄책감을 가지지 않을 수 있다. 배드민턴 레슨을 받을 때 매번 같은 자세 실수로 레슨 선생님에게 꾸중을 듣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러닝은 지속해서 하면 내 체력이 꾸준히 향상되는 걸 느낄 수 있다. 러닝을 시작하고 일주일 요즘은 5km를 쉬지 않고 뛴다.
둘째, 대칭 운동이다.
지인 중 중대형 병원의 방사선치료사가 있다. 운동 부상으로 오는 환자 중 골프, 테니스, 배드민턴 등 한 방향으로 운동을 하는 환자들이 많다고 했다. 한쪽을 사용하다 보면 한쪽 근육만 발달하여 비대칭적으로 발달하고 관절에 무리로 병원엘 많이 찾는다고 하였다. 그런데 러닝은 대칭 운동이다. 무릎의 부상을 신경 쓸 수도 있겠지만 자신의 체력에 비례한 속도와 발 착지 등을 유념하여 뛴다면 부상을 방지할 수 있을 것 같다.
셋째, 꿀잠을 잔다.
러닝을 하고 자면 밤에 깨지 않고 잠을 잔다. 예전에 새벽 4~5시경에 한 번씩 일어나 화장실을 다녀왔는데, 아침까지 푹 자게 된다.
오늘도 이 글을 쓴 후 달릴 것이다. 무리하게 달리지 않는다. 내 페이스를 유지한다. 조금씩 성장한다. 아프면 쉰다. 이 러닝 철학으로 러닝을 오래오래 유지하고 싶다.
중학교 때 비 맞으며 뛰던 그 소년이 다시 달린다. 그때는 싫었지만, 지금은 감사하다. 그 경험이 지금 내게 '근거 없는 자신감'을 선물했으니까. 내일도 모레도 나는 뛸 것이다. 내 페이스로, 내 호흡으로, 내 삶을 축복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