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딸에 대처하는 아빠의 태도
퇴근길, 눈은 꺼끌꺼끌하고 어깨는 천근만근, 하품이 연쇄 터져 나왔다.
온몸이 쑤시고 머리가 지끈거렸다. 회사에서는 업무에 쫓기고, 집에서는 아내 대신 집안일을 해야 했다.
(아내는 회사 큰 행사로 며칠째 야근이다)
그런데 또 뭐? 딸내미 학원 마중?
“아빠, 오늘 학원 꼭 데려와?”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딸의 목소리. 평소라면 “알았어, 딸.” 하고 웃으며 대답했겠지만, 오늘만큼은 정말 가기 싫었다.
“알겠어, 갈게.”
결국 나는 막내를 데리고 학원으로 향했다. 13분. 고작 13분 거리인데 오늘은 왜 이리 멀게 느껴지는지.
‘에이, 뭐 어때. 좋아하는 우리 딸! 얼굴 보면 피곤이 풀리겠지.’
드디어 학원 앞. 학원에서 딸이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딸이 대뜸 하는 소리가 “아빠, 왜 차 안 가져왔어? 나 다리 아픈데.”
어? 이게 무슨 상황이지? 내 귀를 의심했다.
“야, 너 지금 뭐라는 거야? 아빠가 오늘 피곤한데 너 생각해서 데리러 왔는데.”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간신히 삼켰다. ‘진정하자, 이건 분명 사춘기 소녀의 100% 자기중심적인 사고일 거야.’
“그래, 다리가 많이 아프구나. 미안해 아빠가 생각을 못 했네.”
내 말에 딸의 표정이 조금 누그러졌다.
“근데 오늘 저녁 날씨가 참 좋다. 미세먼지도 없고. 우리 딸이랑 걷기 딱 좋은 날씨다.”
“아닌데. 오늘 보건 샘이 미세먼지 최악이라고 했는데.”
“아닌데. 애플리케이션에서 좋음이라고 떴는데.”
딸은 나의 반응에 그리 싫지는 않아 보였다.
집으로 가는 길, 나는 생각에 잠겼다. ‘내가 저 나이 때는 어땠더라?’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불혹의 나이가 되니 옛날 일들이 흐릿해졌다.
같이 온 아들이 누나의 가방을 잡아당겼다.
“아, 진짜! 엄마한테 말할 거야!”
딸의 짜증 섞인 목소리. 하지만 왠지 아까보다는 밝아 보였다.
집에 도착해서 씻고 나오니 딸이 거실에 앉아있었다.
“아빠.”
“응?”
“아까는… 미안. 그냥 기분이 안 좋아서….”
“괜찮아. 아빠도 가끔 그래.”
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네 친구… 어떻게 생각해? 매번 다른 애들 데려오는 거.”
(운동 학원을 함께 다니는 친구가 다른 친구를 데려오는 바람에 혼자 운동하고, 혼자 집에 와야 하는 일이 번번이 지속되고 있었다.)
딸의 눈이 조금 흔들렸다. “그게…. 좀 싫어. 근데 말하기가 어려워서….”
“그래, 그럴 수 있지. 근데 네 마음을 말해보는 건 어때? 친구도 모를 수 있잖아.”
딸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한번… 해볼게.”
그날 밤, 나는 일기장에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학원 마중 나온 날 보고 딸이 심드렁했던 이유는 친구에 대한 속상한 마음을 나에게 하소연한 건 아니었을까?….
오늘의 교훈: 1. 사춘기는 참을성이 필요하다. 2. 아이의 말 뒤에 숨은 진짜 마음이 들어야 한다. 3. 가끔은 내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