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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견해

by 어니스트 정

대체 공휴일 아침, 김현우는 침대에서 겨우 눈을 떴다. 평소라면 시계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일어나 아이들 도시락을 준비하고, 회사로 향할 준비를 했을 시간이다. 오늘은 대체 공휴일. 잠시나마 일상의 긴장에서 벗어날 수 있는 날이다.


“여보, 오늘 날씨 좋은데 나들이 가자.”


아내 수진의 목소리에 김현우는 눈살을 찌푸렸다. 한 달 전, 수진이 그토록 원하던 새 차를 사주면서 가계부에는 빨간불이 들어왔다. 매달 나가는 대출금에 차 할부금까지 더해져 숨이 턱 막혔다. 김현우는 천 원 한 장도 아끼며 지내고 있는데, 아내는 전혀 개의치 않는 행동을 하는 것 같았다.

“나들이? 요즘 형편이 어떤지 생각 안 해?”

김현우의 말에 담긴 신경질적인 톤은 숨길 수 없었다. 수진의 표정이 굳었다.


“그래, 차 사준 것 때문에 우리는 이제 집 밖에도 못 나가는 거야? 그럼 차 취소해! 어차피 네가 원해서 산 것도 아니잖아!”


수진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김현우는 그 말에 더욱 화가 났다. 수진이 간절히 원했던 차였고,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필요하다고 설득했던 것은 수진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마치 자신의 결정이 아니었던 것처럼 말하고 있었다.


“엄마, 무슨 일이야?” 큰딸 지은이가 방에서 나오며 물었다.

수진은 아이들을 향해 말했지만, 분명 김현우에게 들리게 하려는 의도였다.

“아빠가 차 샀다고 숨도 못 쉬게 하잖아.”

아이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부모를 번갈아 쳐다봤다. 김현우는 진절머리가 났다. 아내는 자신이 절약한다고 말하면서도, 자기가 원하는 화장품, 옷, 헤어스타일에는 돈을 아끼지 않았다. 얼마 전에는 딸과 함께 미용실에 가서 둘이 합쳐 47만 원을 써버렸다. ‘일 년에 한 번’이라는 말은 매번 하는 변명일 뿐이었다.

“난 가정 형편에 맞게 살자는 건데, 당신은 그게 그렇게 어려워?”

김현우의 말에 수진의 눈이 커졌다.


“가정 형편? 당신 월급만으로 사는 것도 아니잖아! 나도 일해서 돈 벌어오고 있어. 아니, 당신보다 더 많이 벌어오고 있는데!”

수진이 팀장으로 승진한 이후, 그녀의 연봉은 김현우보다 높았다. 사실 이 점이 김현우의 자존심을 살짝 건드리고 있었지만, 그는 표면적으로는 아내의 성공을 축하했다.

“내 말은 그게 아니라…. 아이들 학원비, 생활비, 대출금 생각하면 지금처럼 써대면 어떻게 감당해?”

수진은 코웃음을 쳤다. “내가 언제 막 써대? 딱 필요한 것만 사고 있어. 당신은 너무 구두쇠처럼 굴어서 문제야. 이렇게 삭막하게 살 거면 뭐 하러 돈을 벌어?”


더 이상 집에 있다간 싸움이 커질 것 같아 김현우는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아파트 지하 헬스장으로 향했다. 그러나 아침의 속상함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러닝머신 위에서 20분째 달리고 있는데도, 머릿속은 여전히 복잡했다. 김현우는 집안 가계를 맡고 있었다. 수진에게 몇 번이나 가계부를 맡아보라고 권했지만, 그녀는 매번 거절했다. ‘빠듯한 살림에 고민하기 싫다.’라는 이유였다. 하지만 정작 돈 쓰는 일은 주저하지 않았다.


‘어떻게 이럴 수 있지?’


김현우는 절약하고 또 절약하려고 노력하는데, 수진은 그런 의식이 전혀 없는 것 같았다. 친구들 생일에는 선물을 사야 하고, 아이들 학원은 모두 보내야 한다고 고집했다. 빚은 언제 갚을 수 있을지 점점 걱정됐다.

방학만 되면 여행을 가야 한다는 수진의 주장도 이해할 수 없었다. “아이들에게 산 경험을 주기 위해서”라는 논리였지만, 김현우는 동의할 수 없었다. 집안 형편에 맞게 움직이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헬스장에서 나오자, 수진이 집을 나간 뒤였다. 메모 한 장 없이 사라진 아내를 생각하며, 김현우는 한숨을 내쉬었다. 거실에는 빨랫감들이 널브러져 있고, 싱크대에는 아침 식사 후 설거짓감이 가득했다. 평소라면 정리부터 했겠지만, 오늘은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


그는 냉장고를 열고 간단히 점심을 차렸다. 민우와 지은은 각자 친구 집에 놀러 갔다고 메시지를 보냈다. 조용한 집에서 혼자 밥을 먹으며, 김현우는 자신의 결혼 생활을 돌아보았다.

처음부터 이렇게 갈등이 많았던 것은 아니었다. 수진과는 대학 동아리에서 만나 연애 끝에 결혼했다. 처음에는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관계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아이들이 태어나면서, 두 사람의 가치관 차이가 점점 드러나기 시작했다. 특히 돈에 관한 문제에서는 더욱 그랬다.


김현우는 안정을 중요시했다. 미래를 위해 저축하고, 필요한 것만 구입하는 것이 그의 방식이었다. 반면 수진은 현재의 행복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돈은 필요할 때 쓰기 위해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두 사람의 갈등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아이들 교육 방식, 집안일 분담, 심지어 여가 시간 활용 방법까지 의견 차이가 있었다. 김현우는 조용히 책을 읽거나 혼자 산책하는 것을 좋아했지만, 수진은 친구들과 만나거나 활동적인 것을 선호했다.


‘우리는 왜 이리 다른 걸까?’


김현우는 식탁에 앉아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수진이 돌아왔다. 그녀는 무거운 표정으로 들어와 김현우를 힐끗 바라보았다.

“애들은?”

“친구 집에 놀러 갔어.”

짧은 대화 후, 수진은 곧장 침실로 향했다. 김현우는 그녀를 따라가지 않았다.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

저녁이 되자 아이들이 돌아왔다. 김현우는 파스타와 피자를 만들어 저녁 식사를 준비했다. 요리는 그의 소소한 취미이자 스트레스 해소법이었다.

“아빠 요리 진짜 맛있어!” 둘째 민우가 파스타를 게걸스럽게 먹으며 말했다.

“그래? 요리는 엄마보다 아빠지?” 김현우는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지은이가 눈을 흘겼다. “또 시작이야. 엄마 없을 때 이런 말하지만, 아빠.”

김현우는 웃음을 터뜨렸다. 아이들과 있을 때는 모든 고민이 잠시 잊히는 것 같았다.

사실 김현우는 아내보다 요리를 자주 했다. 예전에 장거리 출근을 할 때부터 아이들 아침을 챙기는 습관이 지금까지 이어졌다. 최근에 회사가 집 근처로 옮겨졌을 때, 김현우는 수진에게 이제 아침은 그녀가 맡아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수진은 “아침에 도저히 못 일어나겠다.”라며 거절했다.


‘약속해 놓고선….’


김현우는 어이가 없었다. 분명 회사가 가까워지면 자신이 아침을 맡겠다고 약속했으면서, 인제 와서 편함과 익숙함을 핑계로 약속을 지키지 않는 수진이 못마땅했다. 그러면서 문득 ‘이제 더 이상 잘해줄 필요가 없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에 아이들을 챙기느라 여러 번 회사에 지각한 적도 있었다. 그런 자신의 고충을 알지 못하는 아내가 밉기도 했다.

저녁 식사 후, 김현우는 설거지를 했다. 수진은 여전히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아이들은 각자 방에서 숙제하거나 스마트폰을 했다.


설거지를 마치고 거실로 나온 김현우는 TV를 켰다. 무심코 채널을 돌리다가 어떤 다큐멘터리에 시선이 멈췄다. 부부 관계에 관한 이야기였다.

“부부는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만나 하나의 가정을 이루는 것입니다. 당연히 가치관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죠. 중요한 것은 그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입니다.”

화면 속 심리 상담사의 말이 김현우의 마음을 건드렸다. 그동안 자신은 수진의 가치관을 존중했던가? 아니면 자신의 방식만이 옳다고 고집했던 것은 아닐까?


돈에 관한 견해가 다른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수진의 방식이 완전히 잘못된 것은 아니었다. 그녀의 말대로 삶의 질과 경험도 중요한 부분이었다.

김현우는 침실 문을 바라보았다. 아내와 대화해야 했다. 이대로 둘 사이의 갈등이 깊어지는 것은 아이들에게도 좋지 않을 것이다.

조심스럽게 침실 문을 열자, 수진은 침대에 누워 책을 읽고 있었다. 그녀는 김현우가 들어오자 책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수진아, 우리 얘기 좀 할까?”


수진은 책을 내려놓았다. 그녀의 눈은 약간 붉어져 있었다. 울었던 모양이었다.

“나… 미안해. 아침에 너무 신경질적으로 반응했어.”

김현우의 사과에 수진은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도 미안해. 네가 얼마나 가계를 걱정하는지 알면서도, 내 욕심만 내세웠어.”

두 사람은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서로의 입장과 생각을 솔직하게 이야기하면서, 조금씩 서로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김현우는 수진이 팀장으로 승진한 후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 상사가 불도저식으로 일을 벌이는 바람에 매일 밤늦게까지 일해야 했고, 그 스트레스를 쇼핑이나 미용으로 풀고 있었다.


수진도 김현우가 회사에서 겪는 어려움과 가계를 책임지는 부담감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두 사람은 앞으로 어떻게 가계를 운영할지, 집안일을 어떻게 분담할지에 대해 새로운 합의를 이루었다.

“그래도 아이들에게는 가끔 좋은 경험을 줄 필요가 있어. 돈이 전부는 아니잖아.”

수진의 말에 김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 다음 방학에는 작은 여행이라도 가자. 내가 좀 무조건 반대만 했던 것 같아.”

수진은 처음으로 그날 밤 미소를 지었다. “고마워. 우리 서로 조금씩 양보하면서 살아가자.”

김현우는 아내의 손을 잡았다. 결혼 생활은 끊임없는 타협과 이해의 과정이다. 오늘 그들의 대화가 새로운 시작이 될 수 있을까? 그는 그렇게 믿고 싶었다.


밤늦게, 아이들이 모두 잠든 후 김현우는 혼자 거실 소파에 앉아 생각했다. 가정과 직장, 두 세계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대화를 통해 약간의 희망을 찾은 것 같았다.

'집안이 편안해야 직장 일도 잘할 텐데….'

작은 변화라도 시작되길 바라며, 김현우는 침실로 향했다.


내일은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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